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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감 쩨 야아보르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평소에 우리  사회의 의료 산업에 회의적이고,  과잉 진료와 약 남용을 의심하여, 나는 건강 검진을 무시했었다. 그러다가 마음을 바꾸고  오늘 아침에 건강 검진을 하기로 하고 어제부터 식사를 하지 않고 장 세척제를 4포나 먹었다.  좀 내 몸을 돌보기로 했다. 그러나 힘들다. 그런 경우, 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경구를 소환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라틴어로 하면, "hoc quoque transibit(호크 쿼케 트란시비트)"이다. 이를 영어로 하면  다음과 같다. This too shall pass away. 히브리어로는 '감 쩨 야아보르'라 한다.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린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은 오만해 빠진 자신의 신하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 "왕인 내가 가지고 있는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마술 반지이다. 그 반지는 슬픈 사람을 기쁘게 하고, 기쁜 사람을 슬프게 하는 반지이다. 6개월의 시간을 줄 테니 구해 오너라." 6개월이 거의 다 되어도 그 반지를 찾지 못한 신하는 막판에 한 노인으로부터 반지를 하나를 얻는다. 그 반지에는 히브리어로 '감 쩨 야아보르'의 첫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말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 반지를 받아 들고, 솔로몬 왕은 자신이 가진 모든 권력, 재산 그리고 지혜까지도 덧없는 인생의 한 부분이며, 언젠가는 흙으로 사라지리라는 사실을 깨달었다.

다른 버전이 있다. 본래 이 말은 유대인의 경전 주석서 <미드라쉬(Midrash)>의 ‘다윗 왕의 반지’ 에서 나온 이야기라 한다.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의 세공인을 불러 명령하였다.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그 반지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결코 교만하지 않게 하고,  또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 이에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정작 거기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 끝에 당대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다. 이 때 솔로몬왕자가 세공인에게 일러 준 글귀가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였다.

오만과 교만을 경계하는 가장 좋은 경구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은 교황 대관식에도 사용되었다. 1409년 알렉산더 5세가 교황으로 취임할 때 시작된 특별한 의례이다. 새로 선출된 교황은 성베드로 성당의 성물 안치소에서 특수한 가마를 타고 교황 즉위식을 위해 행진한다. 그 행렬은 곧바로 즉위 장소로 가지 않고 세 번 멈추어 특별한 통과 의식을 거행한다. 이 행렬이 멈출 때마다 행렬 주관자는 새로 선출된 교황 앞에 무릎을 꿇는다. 행렬 주관자의 손에는 아마 천을 매단 지팡이가 들려 있다. 그는 교황에게 다음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다.

Sacnte Pater, sic transit gloria mundi!
(오 거룩한 베드로여, 세상의 영광은 어찌 이리 빨리 사라지는가!)

교황은 이 구절을 세 번 들으면서 생각에 잠긴다. 자신에게 주어진 교황이라는 막강한 권력도 이처럼 순환에 따라 시간과 공간 속에서 덧없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는 것이다. 이 지팡이를 받은 후에야, 교황은 임무를 시작한다. 이 지팡이 이름이 바로 "식 트란시트 글로리아 문디!" 즉 "세상의 영광은 이리 빨리 사라지는가!'이다.

<세계일보> 배연국 논설위원의 글이다. 한 사두(고행자)가 발꿈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한 손에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갠지스강에 머리를 감고 햇볕에 말리고 있는 중이었다. 노끈처럼 꼬인 머리채가 제법 무거워 보여 행인이 한마디 던졌다. "당신은 세상의 무게를 다 벗어던졌지만 긴 머리의 무게는 죽을 때까지 갖고 다니겠군요." 그러자 그가 응수했다. "본래 자기 것은 무겁지 않다네. 자기 것이 아닌 걸 들고 다닐 때 무거운 법이지." "나는 누구입니까?" 어떤 이의 질문에 사두가 말했다. "네가 아닌 것을 하나씩 전부 부정해 나갈 때 최후에 남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너 자신이다."  건강검진을 위해, 어제부터 굶으며 장을 비웠더니 속이 더 편하다. 우린 내려 놓지 못해 힘들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강물은 강을 떠나야 바다에 이른다는 말씀이/나를 오랫동안 따라다닌다."

그만 내려놓으시오/공광규

인생 상담을 하느라 스님과 마주 앉았는데
보이차를 따라놓고는
잔을 들고 있어보라고 한다.
작은 찻잔도 오래 들고 있으니 무겁다.
그만 내려놓으시오.
나는 팔이 시원해졌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떠나야 바다에 이른다는 말씀이
나를 오랫동안 따라다닌다.
도심의 화분에 담긴 꽃과
도랑에 고인 오수를 지나오면서
구름 속에 심은  꽃
구름 속에 고인 강을 생각해 본다.

아는 게 모자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알면서 하지 못하고,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한다. 뭐가 되었든지 무겁거든, 들고 있기 어렵거든 내려놓아야 한다. 버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말하면서.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그리고 오늘에서 비롯되는 내일이다. 하나의 기술을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수천 번의 훈련이 필요하듯이 현재의 모습에 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숨은 힘은 열정이다. 오늘의 고통 없이는 내일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평범한 진리처럼 영광 뒤에는 땀과 눈물의 시간들이 있는 것이다.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게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겨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인생 만사 새옹지마와 같다. 승리의 교만도 절망의 좌절도 다 지나간다.

이어지는 글은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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