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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바꾸지 않고 고집하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월 21일)

지난 18일에 오늘은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삶과 죽음에 대한 그 빛나는 이야기"란 부제를 단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읽기를 이어간다. 오늘 아침은 제8장 "죽음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고향"을 읽고 여러 가지 사유를 해본다. 스승 이어령은 인생이란 파노라마가 아니라, 한 커트의 프레임이나, 한 커트, 한 커트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 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일 뿐이라고 말씀하신다.

2022년의 1월도 벌써 거의 다 지나간다. 코로나-19가 잡히지 않아 강요된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세상을 다 잠재우고 있다. 나는 나름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내가 할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건 틈나는 대로 <인문 일기>를 쓰는 일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발산이 되고, 그 양만큼 수렴하는 시간이 요구된다, 그만큼 독서와 관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 그 양만큼 안목과 시선이 높아지고, 세상에 대한 문해력이 늘어난다. 이게 일상의 소소한 기쁨으로 이어진다. 이런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아는 사람은 또 그만큼 세상을 좀 더 여유롭게 바라보게 되고 마음도 평화로워진다. 더 나아가, 사소한 일들이 쌓여서 인생이 되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나 만의 임무를 파악한 후, 일상에서의 초조함과 조급함이 사라졌다.

이게 삶의 성숙이 아닐까? 과거는 해석에 따라 바뀐다. 미래는 결정에 따라 바뀐다. 현재는 지금 행동하기에 따라 바뀐다. 바꾸지 않고 고집하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목표를 잃는 것보다 기준을 잃는 것이 더 큰 위기이다. 인생의 방황은 목표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준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끝없는 성숙(成熟)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고 보내는 시간들이 많다. 우리가 아프지 않고 산다면, 26년은 잠자고, 21년은 일하고, 9년은 먹고 마시지만, 웃는 시간은 겨우 20일 뿐이라 한다. 또한 화내는 데 5년, 기다림에 3년을 소비한다. 기쁨의 시간이 곧 웃는 시간이라고 본다면, 80 평생에 겨우 20일 정도만 기뻐하는 건 삶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화내는 시간을 줄이고, 웃을 수 있다면 삶이 더 아름다울 거다.

제목만 읽고, 이런 저런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읽기로 돌아온다. 스승은 "이익을 내려면 관심 있는 것에서 시작하라"고 하시는 스승에게 기자는 묻는다. "럭셔리한 삶이 무엇일까요?" 스승은 소유로 럭셔리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고 했다.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이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이익을 위해서 한다면 재미가 없다. 반면, 재미있어서 하면 저절로 이익도 된다. 영어 'interest'도 "관심, 재미'라는 뜻도 있지만, '이익, 이자'라는 뜻도 있다. 스승은 글을 쓰는 일이 평생의 'interest'였다 한다. 글을 쓰다면 '3관'이 작동한다고 했다. 그 '3관'이란 관심, 관찰 그리고 관계를 말한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긴다는 거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대화'이다. 대화는 변증법적으로 함께 생각을 낳는 거다. 우리가 혼자 글을 써도 그 과정은 모두 대화이다. 내 안의 주체와 객체를 만들어서 끝없이 묻고 대답하는 거다. 자문자답이지만, 모든 생각의 과정은 대화이다. 또한 모든 텍스트는 다 빌린 텍스트이다. 기존의 텍스트에 반대하거나 동조해서 덧붙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상호성 안에서만 존재한다. 즉, 'inter'의 산물이다.

스승에 의하면,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애야 밥 먹어라'하는 것과 같은 거라 했다.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었다. 이젠 그만 놀고 오라는 부름이라고 보는 이유는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라는 거다.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하는 거도 그런 이치가 아닐까? 죽음은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거다. 그래 스승은 죽음은 낭떠러지가 아니라, 고향이라고 하시는 거다.

어제는 대전와인 스쿨 2기 강의가 시작되었다. 첫 강의 내가 맡았다. 문제는 강의실까지 무려 1시간 반을 걸어서 갔다는 거다. 처음에는 택시를 탈 요양으로 출발했는데, 길에 택시는 없고, 그곳에 가는 버스도 마땅치 않아 걷다가 그만 1시간 반이 걸어 갔다. 원래는 미리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일찍 나간 것인데, 그만 길에서 시간을 다 보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늘 아침 몸의 컨디션이 더 좋다는 거다. 그러니 걷는 것이 몸에는 최고라 생각한다. 나의 관심은 와인이었고, 그래 와인을 많이 관찰했다. 지금 와인과 삶의 관계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아침 사진은 차를 타고 늘 지나가던 길을 걷다 보니 얻게 된 거다. 우리 동네 사인언스 콤플렉스 건물이다. 저렇게 소비는 에너지가 지구를 힘들게 하는 거다. 높고 밝은 세계는 정신의 빈곤을 가리킨다고 믿었다. 도시의 달동네, 꼬챙이를 타고 오르는 나팔꽃의 힘을 생각한다. 그늘 속 민중의 힘일 수 있다.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새벽빛은 어두운 곳을 먼저 찾아온다.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허만하

높은 곳은 어둡다. 맑은 별빛이 뜨는 군청색 밤하늘을 보면 알 수 있다.

골목에서 연탄 냄새가 빠지지 않는 변두리가 있다. 이따금 어두운 얼굴들이 왕래하는 언제나 그늘이 먼저 고이는 마을이다. 평지에 자리하면서도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흙을 담은 스티로폼 폐품 상자에 꼬챙이를 꽂고 나팔꽃 꽃씨를 심는 아름다운 마음씨가 힘처럼 빛나는 곳이다.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정신의 높이를 어둡다고만 할 수 없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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