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소설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의 한 장(章)인 "절망보다 중요한 건 절망의 표정 및 몸짓, 그리고 절망 이후의 행동"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에 의하면, 좌절과 절망이 소설에서 중요한 이유는 좌절과 절망은 사람들을 행동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술은 절망 속에 꽃핀다는 것이다. 좌절과 절망이 선사하는 거대한 생산력이 예술이다. 거기서 좌절은 전락(轉落)이기도 하다. 전락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뚝 떨어지는 움직임이다. 이 '전락 이야기'로도 소설이 가능하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 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그 밑바닥에서 빠져 나온다. 그러나 그 빠져 나오는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잘못하면 감동수기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절망 속에 빠져드는 과정은 개성을 가릴 겨를이 없기 때문에 '전락 이야기'는 거의 다 비슷하다. 그래 '전락 이야기'만으로 된 소설은 진부하다. 그러니 소설을 쓰려면, 주인공의 '회복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회복 이야기'는 그들의 개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독특한 이야기를 쓰려면 '전락 이야기'보다 '회복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대죄를 저지른 자가 처벌 앞에 임박한 육체적 고통을 두려워 하는 건 전혀 인간적인 반응이 아니다. 절망의 순간, 육체의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이 더 커서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 않아야 인간적이다. 오이디푸스의 이야기에서 오이디푸스가 그 좋은 예이다. 반면, 사이코패스는 그런 순간에 육체적 고통을 두려워 하며,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그런 마음을 알 것이라고 믿는다. 무슨 말이냐 하면? 김연수의 말을 들어 본다.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하인리히의 재판을 보면서 놀란 것은 악행 자체의 논리적 완결성(치밀하게 준비해 근면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에 비하면, 그 일을 행한 자의 정신적 수준은 너무나 천박하다. 하인리히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했다고 대답한다. 악행의 이유는 그렇게 짧거나 사실상 거의 없다. 정신적 수준이 저열하고, 천박한 사람은 모든 악행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악행의 이유를 모른다. 그러나 선행을 행하려면 수준이 높아야 만 한다. 세 살배기도 악행은 저지를 수 있지만, 선행을 하려면 좀 더 많이 배워야 한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악행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천박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사유의 시선을 높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악이 선만큼이나 대단한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악은 선의 결여일 뿐이다. 선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악행이다. 선을 행하는 건 힘들다. 반면 악을 행하는 논리는 너무나 빈약하거나 논리가 없다. 악은 그저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들의 행위일 뿐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도 선행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윤리적 행위는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부터 시작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와 타인이 서로 다르며,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본심에 가 닿을 수 없다는 전제가 없다면, 선을 행하는 게 어려워진다.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행위를 바라볼 수 없기때문에, 사이코페스는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몰라 타자의 관점에서 사유할 수도 없고, 할 줄도 모른다. 사이코패스는 악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자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처럼 생각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불쌍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그래서 벌어진다.
소설가 김연수는 소설을 쓸 때도 악행의 이야기만으로는 우리가 어떤 이야기의 깊이를 담을 수 없다고 했다. 파괴적인 이야기는 선이 결여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서사적 논리도 없거나 미미하다. 그래 '전락 이야기'보다는 '회복 이야기'에 소설가는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한없이 저열하고 하찮은 인간일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은 이 거다. '전락 이야기'는 대개 비슷하게 전개돼 개성 있게 쓰기 어렵지만, '회복 이야기'는 천차만별이라 서사적으로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복 이야기'는 모두가 오리지널이다.
아침에 이 글을 쓰다 보니, 세상이 조금 보인다. 선을 행하는 건 힘들다. 서사적으로 오리지널한 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고되지만.
삶도 사랑도 물들어가는 것/이석희
누가 그랬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가끔은 이성과 냉정사이
미숙한 감정이 터질 것 같아
가슴 조일때도 있고
감추어둔 감성이 하찮은 갈등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쁜 숨을 쉬기도 한다
특별한 조화의 완벽한 인생
화려한 미래
막연한 동경
누가 그랬다
상처 없는 사랑은 없다고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것이라고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이석희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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