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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선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악행이다.

303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2월 9일)

마음 비우고 싶은데, 잘 안되고, 책도 안 읽힌다. 심란(心亂)하다. 마음이 어수선하다는 거다. 언젠가 적어 두었던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장>을 읽으며, 마음을 비웠다. 사진은 점심 식사 후 동네 탄동천을 걷다가 자기를 비운 나무와 하늘을 찍은 것이다.


연탄 한 장/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속보가 없나 살펴보아야 하는 시절이다. 오늘 처음 만난 문장이다. "민주당이 대통령실과 검찰 특활비 등의 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에 계엄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자가 매우 많습니다. 주변에 이런 자가 있으면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밥값 문제로 대화하다가도 칼로 사람을 찌를 수 있습니다. 사이코패스가 너무 많은 나라엔, 평안이 깃들 수 없습니다."

사이코패스의 사전적 정의가, '다른 사람을 향한 감정이 없으며,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과거에 행한 어떤 것에 대해서도 후회가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공감이 타인을 배려하는 인간 다움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은 분명하나, 그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나의 편안함이 행동의 동기가 된다는 점이다.

윤과 그의 권력에 빌붙어 있는 자들은 하찮하고 비열하고 저열한 인간으로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한없이 저열하고 하찮은 인간일 뿐이다 

대죄를 저지른 자가 임박한 육체적 고통을 두려워 하는 건 전혀 인간적 반응이 아니다. 오이디푸스는 인간적이다. 절망의 순간, 육체의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이 더 커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인간적이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는 그런 순간에 육체적 고통을 두려워 하며,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그런 마음을 알 것이라고 믿는다.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하인리히의 재판을 보면서 놀란 것은 악행 자체의 논리적 완결성(치밀하게 준비해 근면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에 비하면, 그 일을 행한 자의 정신적 수준은 너무나 천박하다는 점이었다. 하인리히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때문에 그 일을 했다고 대답한다. 악행의 이유는 그렇게 짧거나 사실상 거의 없다.

악행은 정신적 수준이 저열하고 천박한 사람도 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악행의 이유를 모른다. 그러나 선행을 행하려면 수준이 높아야 만 한다. 세 살배기도 악행은 저지를 수 있지만, 선행을 하려면 좀더 배워야 한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악행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천박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악이 선만큼이나 대단한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악은 선의 결여일 뿐이다. 선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악행이다. 선을 행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악을 행하는 논리는 너무나 빈약하거나 없다. 악은 그저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들의 행위일 뿐이다. 

윤리적 행위는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시작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와 타인이 서로 다르며,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본심에 가 닿을 수 없다는 전제가 없다면 선을 행하는 게 어려워진다.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행위를 바라볼 수도 없기 때문에, 사이코페스는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몰라 타자의 관점에서 사유할 수 없다. 

사이코패스는 악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자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처럼 생각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불쌍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그래서 벌어진다.

소시오패스(sociopath), 즉 반(反) 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며 이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 외 자신을 잘 위장하며 감정 조절이 뛰어나다. 인생을 이겨야 하는 게임이나 도박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들을 이용할 타깃으로 생각한다. 매우 계산적이다. 겉으로는 매력적이고 사교적으로 보일 수 있다. 어릴 때 비정상적으로 잔인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재미 삼아 한다. 자신의 잘못이 발각되면, 거짓으로 후회, 반성을 하거나 동정심에 호소하면서 자신의 순진함을 강조한다. 거짓말을 하는 데 능숙하다. 일반인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들통날 까 봐 긴장하지만, 소시오패스는 양심이란 사전 속 단어이기에 일말의 망설임이 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지적 장애인은 계산하는 데는 문제가 있어도, 감정적으로 자녀를 안아주고 보살피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회적으로 지적 장애인보다 계산과 이성만 발달한 소시오패스가 훨씬 더 위험하다. 소시오패스는 가장 빨리 강자의 위치에 도달하지만, 가장 빨리 내려오게 된다. 히틀러처럼 말이다. 오래 생존하는 이들은 감정이 발달한 이들이다. 오직 지적 능력만 키운 사람은 결국 가장 빠르게 도태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적절한 감정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긴 것도 감수성이 더 발달해서이다. 능력 있고, 못된 인간, 감정에 문제가 있는 인간 즉 그런 독재자들이 힘이 셀 때는 숨죽이고 있지만, 힘이 약해지면 거세게 그들을 제거해왔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세상의 가치가 뒤흔들린다. 사이코패스와 다르다.

다음은 <<장자>>의 <인간세>에 나오는 것이다. 제자 안회가 스승인 공자를 찾아와 난폭한 정치때문에 도탄에 빠져 허덕이는 위나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겠다고 한다. 그러자 공자가 말한다. "너는 거기에 가 봤지 처벌이나 받고 말 거다. 원래 그런 일을 할 정도의 훌륭한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먼저 도(道)를 갖추고 나서 남도 갖추게 한다. 너는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하여 아직 불안정한데, 어찌 가능 하겠느냐?" 

그러자 안회는 자신이 그 일을 하려고 얼마나 높은 경지까지 수양을 했는지 구구절절 이야기 하며 스승을 설득하려 애쓴다. 그러자 스승이 한 마디 한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상대방을 감화시킬 수 있겠느냐? 너는 아직도 자기 생각에 갇혀 있다." 여기서 나는 '감화(感化)'라는 말에 방점을 찍고 싶다.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있는 사람이 하는 정의로운 활동은 대개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있는 또 다른 정의로운 사람과의 충돌일 뿐이다. 그러니 충돌만 존재하고 감화력은 생기지 않는다. 

어쨌든 안회는 갈수록 더 이해가 안 되었다. 결국 자신은 도저히 어찌해야  가능한지를 알 수 없으니 방법을 알려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스승이 말한다. "심재(心齋) 하라!" '심재 하라'는 말은 '마음을 재계하라'는 뜻이다. "자기 마음에 출입문을 세우지 말고, 보루도 쌓지 말며, 오직 자신 본바탕의 음성을 듣도록 자신을 준비시키라"는 말이다. 심재의 '재'자는 '재계'이다.  재계(齋戒)는 종교 의식 따위를 치르기 위해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한 일을 멀리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심재는 정신을 청청하게 가다듬는 것을 말한다. 

'심재'의 적합한 번역은 '마음을 굶기다'로 나는 본다. 그냥 비우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행위이다. 이는 제2편에서 말한 '오상아(吾喪我)' 그리고 제6편에 나오는 '좌망(坐忘, 앉아서 잊어버림)'과 함께 <장자>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다 같이 우리의 욕심, 분별심, 이분법적 의식(意識), 일상적 의식, 자기 중심 의식인 보통 마음을 완전히 버리고 이를 추월하는 초이분법적 의식, 빈 마음, 새로운 마음을 갖는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안회는 자기가 인의(仁義)를 갖추었기에, 요즈음 말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기에, 겉으로나마 굽실거려야 할 때는 굽힐 줄 아는 타협심과 유연성도 있고, 필요할 때엔 옛말이나 고사(古事)를 적재적소에(適材適所)에 인용해 쓸 수 있을 만큼 고전에 박식하고 학문적으로도 뛰어나니 더 이상 뭐가 모자라는지 자기는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다고 고백한다. 이런 도덕성, 참신성, 진취성, 두뇌, 학연, 건강, 젊음 등 모든 것을 다 갖추었는데도 아직 모자라다니, 제발 무엇이 모자라는지 가르쳐 달라고 한다.
 
이에 공자는 한마디로 '재(齋)하라'고 한다. '재'란 말은 '굶다'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비우는 것이 아니라, 취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목욕재계(沐浴齋戒)라 할 때처럼 의식으로 하는 재는 물론 술이나 고기, 파, 마늘 등 자극성 음식을 피하는 것이다.
 
안회는 그런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자기는 본래 가난해서 굶기를 밥 먹듯 하나 굶는 것이 정치에 참여할 자격이라면 자기보다 나은 적격자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공자가 말하는 재계란 그런 육체적인, 혹은 의식(儀式)적인 제계가 아니라 바로 '마음의 재(心齋)'라고 못박았다. 여기서 재(齋)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재계(齋戒)'한다고 우리는 말한다.
 
그래서 '심재'의 적합한 번역은 '마음을 굶기다'이다. 그냥 비우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행위이다. 이는 제2편에서 말한 '오상아(吾喪我)' 그리고 제6편에 나오는 '좌망(坐忘, 앉아서 잊어버림)'과 함께 <<장자>>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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