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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제주 4,3 사건의 슬픈 이야기

어제 못다한 제주 4,3 사건의 슬픈 이야기 좀 더 이어간다. 사건의 도화선이었던 3.1절 발포사건 갈등은 1947년 3.1절 기념대회에서 표출됐다. 소위 제주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오후 2시 45분께 제주읍 관덕정(觀德亭) 앞에서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이날 기념행사를 구경하고 있던 주민들을 향한 미군정 경찰의 총성이었다. 경찰의 총탄에 6명이 죽고 8명이 부상을 당했다. 아기를 업은 여성과 학생들이 등 뒤에서 날아 온 총탄에 피범벅이 된 채 쓰러져 죽어갔다.

경찰은 왜 무고한 이들의 등을 향해 발포했을까? 해방 후 두 번째 맞는 3.1절 기념행사를 서울은 좌익과 우익이 서로 나눠 진행했다.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은 남산공원에서 ‘3.1절 기념 시민 대회’라는 이름으로 개최했고, 우익진영은 ‘기미선언 전국 대회’라는 이름으로 서울운동장에서 열었다. 제주에서는 서울처럼 두 개로 나누지 않고 좌익진영의 제주 민전이 주최하는 하나의 행사로 치러졌다. 진정한 자주독립과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제주읍, 애월면, 조천면 주민 3만 여명이 제주 북국민학교에 모였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에 의해 한반도가 두 개로 쪼개질 위기와 그것으로 인한 전쟁 발발을 걱정하는 3만 여명은 “3.1정신으로 통일 독립을 전취(戰取)하자”고 외쳤다.

제주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제주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다. ‘관덕(觀德)’이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에서 따온 말로,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누정 건물은 『탐라지』에 의하면 조선 세종 30년(1448) 안무사 신숙청이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웠다고 하며, 성종 11년(1480) 목사 양찬이 고친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69년 보수한 것으로 원래의 건축 수법은 17세기 전후의 것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 이다. 건물은 사방이 탁 트이게 뚫려 있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새부리 모양으로 뻗쳐 나온 재료를 기둥 위에 두 개씩 짜 놓았다.

관덕정의 편액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安平大君)의 글씨였으나 화재로 손실되어 현재의 글씨는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의 작품인 것으로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지은 『남사록』에 의해 밝혀졌으며, 지붕 처마가 긴 것이 특징이었는데 1924년 일본인들이 보수하면서 처마 부분을 많이 잘라냈다.  제주 관덕정은 제주도의 대표적 누정 건축으로 건축사 연구의 소중한 자료이며 건물 안쪽 대들보와 그 아래에 그려진 작자를 알 수 없는 벽화도 상당히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관덕정 뒤편에 위치한 북국민학교에 모인 군중들은 오후 2시 행사가 끝나자 가두시위에 나섰다. 이때 행사 구경에 나온 어린아이가 부근에 있던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어 다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친 아이를 그냥 두고 가는 기마대에 화가 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했다.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경찰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날의 죽음은 항의에 대한 과도한 대가였다. 경찰은 발포로 끝내지 않았다. 3.1절 집회를 주도했던 사람들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민심이 들끓었다.

이어 3월 10일부터 22일까지 제주도청을 시발로 민·관 총파업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하고, 시장상인들도 가게 문을 닫고 생계를 포기하면서까지 3.1절 발포에 항의했다. 하지만 미군정은 제주도민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규정하고 당시 미군정 경무부장인 조병옥을 앞세워 강경대응에 나섰다.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민전 간부들을 연행하기 시작해 이듬해 4.3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명을 검속했다. 특히 미군정이 끌어들인 ‘서북청년회(서청)’와 응원경찰대의 횡포와 만행으로 민심은 더 흉흉해 졌다. 서청과 경찰은 좌익척결이라는 명분으로 무수히 많은 학생들과 농민들을 혹독한 고문으로 죽게 했고, 약탈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폭력은 법 위에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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