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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대전문화연대 9월 테마걷기 후기: 계룡시 생태탐방 누리

6년 전 이야기입니다.

대전문화연대 9월 테마걷기는 추석연휴를 앞두고 멀리 가지 않기로 하고, 대전 근교의 걷기 코스를 찾다가 아주 좋은 계룡시 생태누리길을 알게 되었다. 계룡산 국립공원을 마주보고 있는 관암산(갓바위 산- 마치 갓을 쓴 것같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에 있다. 이 길은 행정상으로는 계룡시 신도안면에 위치해 있다. 조선초에 정도전이 이곳으로 도읍지를 삼고 싶어했던 곳이다.  현재 이곳은 사방이 험한 산으로 둘러 쌓인 산세로 빼어난 풍광과 무수한 생태 환경을 자랑하고 있다.

계룡산이라는 말은  무학대사가 한 이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는 계룡산 산세를 "금계포란형에 비룡승천형"이라고 했단다. 여기에서 계룡이라는 말이 나온 듯하다. 별도로 계룡시 이야기는 또 다른 한국의 슬픈 현대사이다.

우리가 걸은 신도안면은 무속신앙의 메카였다. 그러나 지금은 1984년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현재의  계룡대(3군본부) 조성을 위한 '620사업'으로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다. 계룡산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신도안은 '때가 되면 진인이 계룡산에 도읍한다,'는 <정감록>의 영향을 받은 신흥 종교인들이 몰려와 유토피아를 꿈꾸던 곳이었다.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더 활기를 띠었다. 1975년만 해도 상제교, 태을교, 일심교 등 130 여개 신흥종교와 기독교계 교단시설이 자리잡고 있었다.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인 1983년, 3군본부 이전사업으로 '620 사업'이 실시되었다. 620사업은 1983년 6월 20일 결제를 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사업으로 신도안에서 1,136세대 6381명의 민간인과 130여개의 종교단체가 철거되었다.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었더라면, 좋은 관광지가 인기를 얻고 있었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샤머니즘이 남아 있는 곳으로.

우연이 우리는 점심을 먹으려고 차지한 곳이 3군 본부가 한 눈으로 들어오는 곳이었다. 나는  '다시는 먹지 않기로 다짐한' 삼각김밥을 먹으며, 남북분단의 비애가 이곳까지 스며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걷기에 참석한 인원은 네명이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모두들 바뻤던 것 같다. 김교수님, 목계 나, 허정님과 해원님 넷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내 차로 내가 운전해 갔다. 간밤에 새벽까지 와인을 마셨기 때문에 사실은 음주운전이었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길이고, 잘 아는 길이라 별 탈 없이 도착했다. 우리는 대전월드컵 경기장 주차장에서 9시에 만나, 동학사 가는 길로 가다가 동학사 삼거리에서 계룡시로 넘어가는 옛 고개길로 접근하여 괴목정에 차를 주차하고, 계룡대체력단련장(군골프장)을 거쳐 데크로 잘 정돈된 길을 따라 밀목재-관암산 시루봉(시루를 업어 놓은 모양이다.)-동문다리재-다시 괴목정으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를 걸었다. 괴목정에서 출발하는 경우 처음 관암산을 오르는 길이 가파르지만 그 다음부터 능선을 따라 편안한 길이었다. 그 길은 대전시, 공주시, 계계룡시의 경계를 걷는 길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한적하고, 오르고 내려가는 다양한 코스로 전혀 지루함이 없었다. 표지판들도 잘 되어 있었다. 다만 본부교회에서 괴목정까지 다시 오는 길이 따로 만들어져 있지만, 군사시설이라고 기분나쁘게 세워진 철조망을 따라  차로 되돌아 오는 길이 차가 다니는 길가라 시끄러웠다.

나는 그 길을 걷는데, 나비도 많이 만났지만, 거미줄을 쳐놓은 거미들을 여럿 만났다. 거미는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허공에 매달려 살아야 한다. 그리고 제 몸에서 실을 빼내, 거미줄을 친 다음 그 줄에 걸린 벌레들을 먹고 산다. 거미를 영어로 아라크네라고 한다. 감히 신에 도전했던 자수를 잘 노는 한 여인이 그의 오만함에 벌로 바뀐 것이 거미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좀 하고 후기를 마친다.

지혜와 공예의 여신 아테나가 거미로 만들어 버린 아라크네(Arachene) 이야기이다. 인간의 능력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신의 경지를 엿볼 수 없다. 아라크네는 길쌈과 자수의 ‘달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솜씨가 아테나 여신보다 뛰어나다고 실력을 뽐내며 아테나에게 도전한다. 아라크네의 오만함에 화가 난 아테나는 할머니로 변신하여 신을 모독하지 말고 용서를 구하라고 충고했는데, 아라크네가 그녀를 무시하고 쫓아내려 하자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그녀와 시합을 벌인다. 신과 인간 사이의 ‘세기의 자수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여신은 아테네를 놓고 포세이돈과 경쟁하는 장면과 올림포스 신들의 신성한 모습을 짜 넣었다. 더 늦기 전에 아라크네에게 암시를 준 것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라크네의 자수 실력은 놀라웠다. 아테나마저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기술이었다. 아라크네가 아테나를 이긴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신들의 실패와 과오를 나타내는 불경스럽고 비웃는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테나는 그녀의 기술에 감탄했지만, 그 태도는 용서할 수 없었다. 이에 그녀의 직물을 갈기갈기 찢자, 아라크네는 치욕을 참지 못해 목을 맸다. 이때 여신은 자기 몸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짜는 거미로 그녀를 만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목에 메어있던 밧줄은 거미줄이 되었다. 아라크네는 평생 허공에 매달려 실을 잣고 옷감을 짜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Arachne’는 그리스어로 ‘거미’란 뜻이다.

공예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아라크네는 공예의 여신 아테나에게 도전하는 오만을 부리다가 여신에 의해 거미로 변하는 처벌을 받은 것이다. 길쌈하는 재능을 좀 가졌다고 오만하게 굴다가 평생 허공에 매달려 온몸으로 길쌈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오만에 빠진 인간은 이처럼 예외 없이 신의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오만은 신화시대에 인간 영웅들이 잘 걸리는 난치병이었다. 이 난치병 환자들은 바로 신들이 싫어하는 사람들, 즉 호모 테오미세토스(Homo Theomicetos)이다.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신의 처벌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만에 대한 처벌은 부메랑과 같은 것이다. 재산이든, 재능이든, 권력과 명예든 간에 남들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오만에 빠져 추락하는 것은 그것 때문에 상처받은 주변 사람들의 질투와 원한이 복수의 화살로 뭉쳐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

오만의 반대는 겸손이다. 겸손은 비굴과는 구별해야 한다.겸손은 남 앞에서 자신감 없이 굽실거리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이 받을 상처를 미루어 짐작하고 오만을 떨지 않는 것이다. 잘났다고 우쭐대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신들의 벌을 떠올리면, 우리는 겸손할 수 있을 것이다. 탐욕이나 오만과는 거리가 먼 이상형의 모습을 그려본다. 겉으로는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는데 왠지 모르게 고귀한 품격이 은근히 풍겨 나오는 사람.누가 보더라도 큰 인물인데 떠들썩하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머리를 숙이는 사람일 것이다.

늘 걸으면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