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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화시비(和是非)'

우리가 ‘나만  옳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그렇다면 누가 옳은가? 아무도 옳지 않다. 그러면 누가 그른가? 아무도 그르지 않다. 각기 각자의 방식으로 옳은 것이다. 장자는 이것을 ‘각자의 옳음에서 비롯하여 각기(各其, 저마다의 사람)의 근거로 시비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하는 인식의 기초인 ‘우리의 앎'은 과연 신뢰할만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각과 지성은 부분성과 편파성으로 인해 사물의 전체를 한꺼번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볼 수 없고, 들리지 않는 것은 들을 수 없다. 그러나 볼 수 없거나 들을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거나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볼 때에 그 사람의 이마와 뒤통수를 동시에 볼 수 없고,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수 없다.

우리의 감성과 지성은 태생적으로 편파적이고 부분적이다. 한계가 있다. 서 있는 건물을 보면서 동시에 무너지는 건물을 볼 수 없다. 양면을 모두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서로 의지해 있고, 이웃해 있다. 밤과 낮은 연속되어 있으나 동시에 볼 수 없다. 이처럼 제한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시비가 발생하는데, 장자는 이를 원숭이들의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비유한다. 때문에 모든 시비와 갈등의 고조는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생각에서 발생한다. 그렇다고 장자는 시비를 중단하라거나 소멸시키라고 하지 않고, 화(和)하라고 한다. 단(斷)도 멸(滅)도 아니고, 시비의 긍정도 부정도 아닌 화를 주장한다. '화하라'는 것은 시비를 잠재워버리거나 잘라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기 앎'에 기초한 시비의 근거가 서로 허구적인 것임을 깨달어서 스스로 풀어지도록(해소되도록)하라는 것이다. 그 말을 줄여서 ‘화시비(和是非)'라 한다. 시비하지만 시비가 없는 것이고, 시비가 없으면서도 각자의 시비가 모두 인정되는 것, 즉 양행(兩行)이다.

이런 '화시비'를 위해서는 자아의 판단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조화에 맡겨 분별지를 쉬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자연의 균형에 맡기는 것, 즉 ‘휴천균(休天鈞)'이다. '천균'은 자연 상태에서 유지되는 균형감각을 지닌 조화로운 마음이다. '천균에 머문다'는 것은 옳다 그르다는 지식의 작용을 그치고, 저절로 그러한 자연의 경지에서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비는 사라지고 마음은 지극히 조화를 얻게 된다.  비슷한 말이 '양행'이다. 대립되는 두 가지 입장을 모두 바라보고 두 입장을 모두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말한다. 양쪽을 모두 수용하는 전체적 사고라 할 수 있다. 둘 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마음이다.

예를 들어,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이성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사람은 비로소 개인적으로 사람이 되고 사회적으로 인간이 된다. 사랑이 없는 이성은 비정한 것이 되고, 이성이 없는 사랑은 몽매와 탐닉이 된다. 이성이 먼저냐 가슴이 먼저냐? 그러나 이성은 땅 위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 그 흙 가슴을 떠날 수 없다. 마치 컴퓨터의 체(體, hard-ware)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그 용(用, soft-ware)이 실릴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떠나는 것은 ‘질 버리고 양’을 취하는 것이며 사용가치를 버리고 교환가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다. 천수보살은 천개의 손을 가진 보살이다. 우리는 많은 손을 갖기 위해 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기술을 익히기도 한다. 많은 손을 구입하기 위하여 돈을 모으기도 하고 많은 손을 부리기 위하여 높은 지위를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천수보살의 천 개의 손에는 천 개의 눈이 박혀 있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이라고 한다. 눈이 달린 손은 맹목(盲目)이 아니다. 생각이 있는 손이다. 그 손들이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다정한 ‘악수'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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