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말하는 창조가 '무위의 실천'이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으로 끌려간 한 유대인이 묵상 중에 우주창조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그것이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 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그 무명의 히브리 작가는 ‘창조’라는 단어를 ‘바라’bara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유사한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동사 ‘아사’ 혹은 ‘야짜르’는 각각 ‘만들다’ 혹은 ‘형성 하다’이다. 이 두 단어는 이미 있는 것을 자신의 의도대로 창작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바라’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덜어내다', '군더더기를 떼어 내다’이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라는 성서의 첫 구절의 의미는 ‘시간과 공간이 등장하기 전에, 한 존재가 무질서에서 질서를 잡기 위해, 쓸데없는 것들을 잘라 냈다’라는 의미다. 창조는 ‘안 하기’이다. 배철현 교수의 칼럼에서 배운 거다. 흥미롭다.
'안 하기'는 내 삶을 내가 주인으로 사는 법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주인의식'을 잃게 만드는 사례들은 이렇다. 오래간만에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좀 하려고 가방을 싸 들고 나섰는데, "부모님이 너 요즈음에 공부를 왜 그렇게 게을리 하는 거냐? 다른 데로 빠지지 말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 좀 해라!" 고 말씀 하시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날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당연히 도서관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오래간만에 집안 청소 좀 하려고 빗자루를 찾고 있는데 부인이 빗자루를 들고 나오면서, "청소 좀 하세요" 하며 빗자루를 건넨다.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날 것이다.
주인의식을 말소시켜주는 모든 이야기 속에는 공통의 전제가 들어 있다. 공부이든 청소이든 일을 시키는 사람은 어른이고 상대는 항상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아이이니 잘 감시하고 '신상필벌(信賞必罰)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주인의식은 어떤 과제를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려는 의지를 통해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인들은 아이들에게 칭찬을 하지 않는다. 같은 원리이다. 공정한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보상은 주인의식을 가장 확실하게 제거하는 방법이다. 실제 미국 회사에서는 전문경영자들이 회사의 주인인 대주주를 넘보지 않게 하기 위해 대주주가 모인 이사회에서 경영자들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의 인센티브를 약속하기도 한다. 경영자들을 돈의 노예로 만들어 돈 말고는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주인의식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신자유주의 경영방식이다. 경영자가 이미 돈의 노예가 되어 주인임을 포기한 회사에서 종업원들이 먼저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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