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spoiler)’라는 말이 있다.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을 볼 때 방해가 될 만큼 지나치게 친절한 사전 정보를 뜻하는 단어로, 본래 의미는 ‘망치다’, ‘훼방하다'라는 의미이다. 사실 스포일러를 안다는 건 영화 보기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지름길이 편하고 빠른 것 같아도, 모든 갈림길에 부모가 나타나 내비게이션이 될 수는 없다. 겪을 만큼 겪고, 아플 만큼 아파야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았는데도 모든 것을 알려주고 결정해주는 건 타인의 인생 스포일러 이다. 자신이 걸었던 걸림돌 많은 진창을 피해, 꽃 길만 걷게 해주고 싶은 간절한 엄마의 마음에서 오는 간섭이 아이의 인생에서 스포일러 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어야 하는 기쁨과 고통은 아이 몫이다. 가시 없는 선인장이 없는 것처럼 성장 통 없는 성장도 없다. 무작정 주는 것이 사랑인 걸까? 정말 필요할 때 상대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방식으로 주는 게 사랑일까? 사랑도 때로 아껴 써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삶은 자신의 수고로 살아야 행복하다.
우리는 노력도 안 하고 뭐든 공짜로 받길 원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 괴롭다고 한다. 세상 일이 모두 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갈등이 생기면 타협도 하고, 조정도 하면서 대안을 찾아가며 해결하면 된다. 갈등이 곧 괴로움인 것은 아니다. 괴로움은 감정 낭비이고 에너지 낭비이다. 생각을 바꾸면 된다. 법륜 스님의 말처럼, "오물이라고 버리는 똥도 밭에 가면 귀한 거름이 될 수 있으나, 현실을 오물 같다고 비관할 필요 없다. 물에 빠지면 내친김에 진주 조개를 주울 수도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법륜 스님의 한 마디를 더 공유한다. 스님은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 젊은이들이 취업이 힘들어 지긴 했지만, 위축된 심리 상태를 이겨낼 지각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산업화 세대가 가난하다고 불평만 하지 않고 땀 흘려 일했고, 민주화 세대가 부정의를 불평만 하지 않고 피 흘려 투쟁했듯이, 현재 젊은이들도 기본적 욕구를 챙취하고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정치,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고 이야기 하셨다. 그런데 지금 끼지 학교와 부모의 잘못된 교육 방식이 자립심을 갖기 어렵게 했다는 게 스님의 진단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삶은 자신의 수고로 살아야 한다.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고, 스스로 해내기보다는 생떼를 부려 어려움을 해결한 아이가 모든 걸 자발적으로 이겨 내길 기대할 수는 없다. 방 정소나 설거지조차 스스로 하게 만들지 않고, 성적 이야기만 하고 과보호만 한 업보는 부모와 사회가 받고 있는 것이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어보면, 오히려 혁명가에 가깝다. 그는 철저한 실천가이다. 보통 종교인들처럼 모든 것을 심리 문제로 지환하기 보다는, 강력한 사회구조개혁을 끈질기게 요구하신다. 적어도 우리 사회 정도의 수준이라면, 젊은이들이 자기 소득의 10%만 들이면 조그만 주거공간이라도 마련할 수 있어야 하고, 사교육비 부담 없이도 공교육만으로도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지 않고 '제발 결혼하라'거나 '아이를 낳아라'는 말은 부질 없다." 우리 사회의 경우 "기본권인 주거, 교육, 의료 가운데 의료는 이 정도면 괜찮으나 주거와 교육문제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현안"이라고 강조하신다.
자발적 실직을 택하는 젊은 이들에게 어른들은 아무데나 들어가서 일하라고 말하지만, 아무데나 들어가서는 주거비와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게 문제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에게 가장 부담스런 주거비와 교육비가 줄면, 꼭 월 300만원 이상을 받는 직장에 들어가지 않고, 월 200만원 받고도 생활을 감당할 수 있어서 직장 선택 폭도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말씀은 "생산활동은 기업이 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 아니다"면서 정부가 할 일은 최저 생계비를 보장하는 기본소득제와 같은 것으로 양극화와 불평등의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번 주는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의 탐색보도 '인생 멘토에게 코로나 이루의 길을 묻다' 시리즈를 읽고 있다. 그 첫 인터뷰가 법륜 스님이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진성은 거창고 이상장의 인터뷰이다. 그전에 오늘의 시를 한 편 공유한다.
"도그마로부터 독립하라"는 진성은 거창고 이사장의 인터뷰를 읽고 몇 가지 생각을 공유한다. 그의 아버지 정영창과 와 그의 누나 전덕애는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했던 인물들이다. 그래서 전 이사장도 중심의 골리앗과 싸움을 게속 이어간다고 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코로나-19 사태를 위기로 보기보다 오히려 기존 사고를 뒤집을 기회로 보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그의 사고는 '요즈음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기성세대들과 다르다. "요즘 아이들이 우리 때보다 훨씬 낫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과거와 달라진 것을 잘못됐다고 보는 것은 인류의 고질병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철학은 학생들에 대한 간섭보다는 자율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자율적일 때만 창의성이 발견되고, 자유롭게 스스로 나아가고 멈추고 절제하는 법을 터득할 때에만 진정한 성숙이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역사를 배우고, 소설을 읽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매몰된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함이다. 그런데 자기 지역에 뿌리를 둔 정당인이라면 썩은 똥막대기를 꽂아도 찍어주는 것이나, 자신의 죄악을 가리기 위해 끊임없이 빨갱이를 만들어 선전포고 하는 목사들의 프로파간다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은 목 위에 달고 있는 게 머리가 아니라, '사고 기능이 없는 돌'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라면서, "젊은이들이 그런 어른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자신이 경험했다고 해서 그 경험이 전부인 양 경험 세계에 갇히지 말고, 어른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가 보다 하고 믿지도 말고, 생각과 가치판단에 있어 독립적 인간이 돼야한다"고 강조하셨다. 나도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의 인터뷰 내용 중에 흥미로웠던 주장은 검사, 판사 의사 등 '사'자 돌림이 된 자들에게 스스로 변화해 도덕적인 사람이 되길 기대하기보다는, 그들이 높은 대우를 받는 만큼 사회적으로 욕망과 권한을 제한하고 책임은 더 지도록 법과 제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것이었다. 그가 바라는 인간형은 기성 도그마에서 해방돼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자유인이다.
그 외 두 가지 말씀을 더 기억한다. 몸과 물질만 진화하는 게 아니라, 정신도 진화해야 한다. 이미 옛 성현들이 우리가 자연계에서 배울 것은 경쟁과 약육강식과 적자 생존이 아니라 조화라고 가르쳤음에도 진화는 커녕 퇴화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거다. 그리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사랑을 받으면 행복하지만, 궁극적 행복은 사랑을 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 큰 깨달음이 없다는 말씀이다.
거창고 하면, 강당에 걸린 '직업 선택을 위한 십계명'이 유명하다. 다시 한 번 공유한다.
1. 월급이 적은 쪽으로 가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선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선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춰진 곳은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거창고 교정에는 "NO CROSS NO CROWN"이 걸려 있다고 한다. "십자가 없이 왕관 없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고난 없는 영광 없다는 말이다.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거다. 우연한 기회로 인해 얻어진 것들, 쉽게 얻어진 것들은 쉽게 사라진다.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것들은 그만큼 오래도록 그 영관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리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고 헌신하고 섬기는 십자가를 지자는 가르침이고, 또한 "사람은 자기 인격보다 더 큰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고, 경쟁 사회의 비인간적인 압박으로 부터 자유로운 그래서 행복한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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