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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이목총명(耳目聰明)

몇일 전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인간 본성의 서판인 본성이 비어 있다면, 적응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무한히 가소적인 점토나 플라스틱이 아니다. 알이 개구리로 자라고, 도토리가 아름드리 굴참나무가 되듯이, 인간도 유기체로서 성장의 방향과 목표를 갖고 있다. 그래서 공자는 <<중용>>에서,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즉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길(道)'이고, 그 길은 우리가 인간으로 품격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는 날들이 그  '길(道)'라고 본다. 그리고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즉 그 '도'를 잘 '다듬고 기르는' 것이(修道가)  교(敎, 工夫 공부)라 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성즉리(性卽理)"라고 보았다. 즉 본성은 인간이 자연으로 갖춘 고유의 생명력으로, 실현해야 할 가능성이며, 자기구원의 완성과 행복으로 이끌 나침반이며, 사회적 참여와 연대를 위한 기초라 보았다. 여기서 나는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덩어리로 헤라클레스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갑갑해 하고 있던 영웅을 칼과 끌로 해방시켜 주었다는 말을 소환한다.

동아시아의 유학은 "이목총명(耳目聰明, 귀와 눈의 감각과 기억력이 좋음)"으로 자기 구원을 강조한다. 서판에 새겨진 글씨를 잘 판독하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이 본성에 합당한 삶의 길로 보았다. 그래 조선의 선비들은 음풍농월(吟風弄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흥취를 자아내어 즐겁게 시를 짓고 논다)을 즐겼다. 자연을 읊조리고, 늘 자연과의 일체감을 노래하며 생활했다. 몇일 전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조선 선비들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중시했다.

장자가 추구하는 인간은 성인(聖人)이다. 여기서 성인은 자기 구원에 이른 사람이다. 그런 성인은 자신을 하늘에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 하늘이 알아서 먹여주고 길러 주는데, 일부러 설치면서 허우적거릴 일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예수는 새들이나 들꽃들을 보라고 하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 하늘에 계산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마태, 6:26-33)고 했다.

장자는 하늘이 준 본래의 재질, 본래의 바탕을 일러 재(才-덕-본성)라 하고, 이를 온전히 지키는 것을 재전(才全)이라 했다. 우리의 본바탕을 온전히 지킨다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마음이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인간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것, 그리하여 본마음을 그대로 지킨다는 뜻이다. 우리의 외부의 조건을, 사철이 바뀌듯이 사물의 변화나 운명으로 생각하고 의연히 받아들일 뿐, 안달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마음, 거울 같은 마음으로 마음의 조화와 평정을 유지하여  트인 마음, 즐거운 마음, 봄날처럼 안온하고 느긋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바로 주어진 재질, 우리의 본바탕을 온전히 지키는 일이 재전(才全)이라는 것이다.

자기 구원의 길로 가는 공부는 와이너리 속의 와인이나, 뒤뜰에 묻은 김장독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익어가야 한다. "물망 물조장"이다. 본성을 잊지 말고, 조장도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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