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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매너를 모르면 꼰대 된다'

오늘 아침도 <꼰대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오늘 주제는 '매너를 모르면 꼰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매너는 에티켓과 다르다. 그리고 ‘꼰대’는 꼴이 사나워 볼 수 없는 꼴불견을 말한다. 매너와 에티켓은, 엄밀하게 말하면 그 뜻이 다르다. 에티켓이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사회적인 불문율로써 하나의 규범'라면, 매너는 실제 생활 현장 속에서 그 '에티켓을 바르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다음의 예를 보면, 우리는 금방 이해 할 수 있다. 우리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 ‘노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은 규범으로서 에티켓이고, ‘노크를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하는 방법은 매너에 속한다. 따라서 에티켓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없다. 에티켓에 맞는 행동이라 해도 매너가 좋지 않으면 그 사람의 행동은 예의를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기본적인 '틀'로서의 매너의 기본원칙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는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진정한 매너는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배려심이다. 그 배려심은 자신이 불편을 자초(自招)해야 한다. 가장 먼저, '타인을 배려한다'는 것은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텐데 그리고 고마워할 텐 데'라 생각하고 먼저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이 때 대단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예컨대, 미소 같은 작은 몸짓 하나 또는 인사말 한마디에도 상대방을 편안하게 배려하는 것이다. 편안한 배려는 격식에 따른 의례적인 행동보다도 언제나 한결같은 몸에 배인 자연스럽고 넉넉한 ‘마음 씀씀이'이다.

둘째로 배려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생각해주며 존중하는 일이다. 서로의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좀 더 쉽게 행동할 수 있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 하라'는 황금률이다. 셋째,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조금이라도 나와 ‘다르다'고 생각되면, ‘이상하다'고 생각해 차별한다. 프랑스의 한 정원에서 본 표현처럼, ‘타인을 존중하세요. 그리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당신을 존중하게 하세요.’ 이런 생각이 매너의 원칙이다.

넷째,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관리하고 개방한다. 사실, 상대방의 호감을 얻으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우선 나 자신을 개방한다. ‘내 방식대로 하라'는 강압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게다가 말이나 자세 및 동작 그리고 용모와 복장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다. 즉 내가 보여준 배려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되돌아온다. 사회 속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면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타인을 대하는 자세'에서 남다른 측면이 있다.

종합하면, 좋은 매너는 무엇보다도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좋은 매너는 상대방의 기분과 편리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가 나와 다르게 보이는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 단지 '차이'일뿐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나는 매너의 기본정신을 사자성어로 풀어 ‘역지사지(易地思之)'라 말하고 싶다. 즉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어떨지, 상대방의 처지에서 미루어 생각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매너는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동일하게 대우하자'는 상호호혜(相互互惠)의 원칙, 서로 승리하는 원칙인 것이다.

모든 것을 기계가 다 담당하고 있는 시대에 한 가지 할 수 없는 일이 인간관계를 하는 일이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끼리 관계를 잘 갖기 위해서는 좋은 매너가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매너라고 말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임기응변 적인 대처 능력'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진정한 매너는 인성의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는 인성(人性, 인간성)을 고양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성이란 서양의 존재론처럼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개체 속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 어떤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논어』의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란 말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다. 이 말은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양 사상의 핵심적 사상이 ‘인(仁)’인 것이다. 인이란 기본적으로 인+인, 즉 이인(二人)의 의미이다. 인간을 인간(人間), 즉 인(人)과 인(人)의 관계로 보는 것이다. 동양에서 보는 인간의 됨됨이인 인성은 개별 인간의 내부에 쌓아가는 어떤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으로 본다. 그러므로 인성을 고양한다는 말은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 즉 타자를 키우는 것이다.

신영복의 『강의』라는 책을 보면, 백범 김구가 자주 인용했다는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를 소개하고 있다.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실제 생활에서 건강은 미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신영복은 이 말에 대해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를 추가하고 있다. 신체가 건강한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은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흥미를 주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그러면 ‘마음이 좋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신영복은 이런 등식을 소개하는데,  흥미롭다. “마음이 좋다=마음이 착하다”는 것이고,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일까? 신영복에 의하면, “배려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착하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관계의 배려를 감성적 차원에서 완성해 놓는 것이다. 머리로 이해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무의식 속에 녹아 들어 체화(體化)된 수준이다.

좋은 매너는 한 사람에게 배어 있는 향기와 같다.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극단의 처방이 아니라, 항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다. 그러려면 매너가 몸에 배이기까지, 느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이기까지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매너를 배운다는 것은 '양식이나 방법적인 지식' 이전에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이다. 겉으로만 매너가 좋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지쳐 있다. 조금은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행동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훌륭한 매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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