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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서/쉘 실버스타인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세상이 멈추었다. 덥기도 하지만, 코로나-19 4차 유행으로 거리두기 3단계이다. 그리고 오늘은 일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이다. 24절기의 열 두 번째로 소서와 입추(立秋)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이 시기는 대개 중복 때이며 더위가 얼마나 심한 지 '염소 뿔도 녹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올해 중복은 어제였다. 그래 멀리 갑사까지 가서 보양식을 먹고 왔다. 초대해준 유라시아 문화센터 이상우 교수에게 감사하다.

더위와 코로나-19로 모든 게 멈춘 김에 나도 좀 멈출 생각이다. 세계일보 배연국 논설위원의 글에서 읽었다. 젊은 승려가 치는 종소리는 노승의 종소리보다 맑지 않다고 한다. 그것은 타종 실력이 못해서가 아니라 여유를 잃었기 때문이라 한다. 앞선 종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타종하면 두 음이 섞여 맑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소리도 여유와 휴식이 있어야 맑은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우리가 혹독하게 배우고 있는 것이 멈춤이다.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릴 때 잠시 일상을 멈춰야 하듯이, 삶의 파도가 맹렬하게 밀려오면 좀 멈추어야 한다.

배연국 위원의 글은 나에게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한 좋은 동화인 쉘 실버스타인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를 다시 소환하게 해주었다. 내가 대학시절에 송골매가 결성되기 전 항공대 밴드 활주로에서 배철수가 노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노래 제목이 "이 빠진 동그라미"였다. 가사 내용은 이가 빠진 동그라미가 잃어버린 한 쪽을 찾기 위해 나섰는데 정작 찾고 보니 입이 닫혀 말을 할 수 없어 겨우 찾았던 조각을 내려놓고 다시 길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완벽해 지려는 욕구와 그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돋보이는 이 가사는 위에서 말한 쉘 실버스타인의 책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1964)>로 알려진 작가이다. "이 빠진 동그라미"가 등장하는 책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1976)>에 나온다.

The Missing Piece(1976)/Written by Shel Silverstein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서/쉘 실버스타인

한 조각을 잃어버려 이가 빠진 동그라미
슬픔에 찬 동그라미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길을 떠나네.
데굴데굴 굴러가며 부르는 노래

어디에 있을까 나의 한 조각은
어디에 있을까 나의 한 조각은
에이야 디야, 나 이제 찾아 나섰네
어디로 있을까 나의 한 조각은

어느 날은 뜨거운 햇살아래 헉헉대다가
시원한 소나기로
더위를 씻고
어떤 날은 눈에 꽁꽁 얼었다가
따뜻한 햇살에 다시 몸을 녹이네

한 조각을 잃어버려 이가 빠진 동그라미
데굴데굴 빨리 구를 수 없어
벌레를 만나면
잠시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꽃을 만나면 향기도 맡네.
어떤 때는 풍뎅이를 앞질러 가고

어떤 때는 풍뎅이가
앞질러 가는
나비를 동무 삼는 꿈같이 행복한 나날이라네.
때로는 바다를 가로질러
건너가기도 하며 노래부르네.

"오! 잃어버린 조각을 찾으러 가네.
들판을 지나 바다를 건너
얼씨구 절씨구 에이야 디야
나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으러 가네."

갈대 숲과 정글을 지나
비탈진 산길을 힘겹게 오르기도 하고
데굴데굴 굴러서 산을 내려오기도 하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작은 한 조각을 발견했네.
이 빠진 동그라미 신이 나서 부르는 노래
"마침내 내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았구나.
마침내 찾았네.
얼씨구 절씨구 에이야 디야
내 잃어버린 한쪽을..."

하지만 작은 한 조각이 말하기를.
"잠깐만요" 얼씨구 절씨구는 그만 하고
잠시 제 말을 들어 보세요.

"난 당신의 잃어버린 조각이 아니예요.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니예요.
그저 나 자신일 뿐이죠.
내가 그 누군가의
조각이었는지는 모르나
당신의 것은 분명히 아니랍니다!"

"공연히 성가시게 굴어 미안합니다."
동그라미는 슬프게 말하고
데굴데굴 굴러 길을 떠났습니다.

또 다른 한 조각을 만났으나
그건 너무 작아서 헐렁하고
어떤 조각은 너무 커서 맞지않고
또 다른 한 조각은 너무 날카롭고
어떤 것은 네모가 져서 맞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몸에 맞은 한 조각을
찾은 듯 했으나
떨어지지 않게 꼭 맞는 것은 아니라서
언덕을 오르다가
잃어 버렸네.

어떤 것은
지나치게 꽉 끼어
부서져 버렸네.

이 빠진 동그라미는 데굴데굴 구르며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때로는 뜻하지 않은 이상한 사건도 겪으면서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 거리기도 하고
돌담에 부딪혀 코가 깨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꼭 맞을 듯한
한 조각을 또 만났습니다.

"안녕?"하고 동그라미가 인사하니
"안녕!"하고 그 작은 조각도 인사했습니다.
"너는, 누군가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지?"
"글쎄, 잘 모르겠는데."
"너는 그저 한 조각으로서 너 자신이길 원하니?"
"글쎄, 누군가의 조각일 수도 있고
그저 나 자신일 수도 있지, 뭐."
"음.. 너는 아마 나의 일부가
되고 싶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
"글쎄, 꼭 그렇지는 않아."
"하지만 우린 서로 맞지 않을 거야..."

"글쎄......."
"............."

잘 맞는 것 같아?
응, 아주 잘 맞아.
꼭 맞았네!
정말 꼭 맞는 걸!
마침내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은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은 동그라미는
데굴데굴 굴러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하게 동그랗기 때문에
그 전보다 더 빨리 굴러갔습니다.

너무 빨리 달리게 된 동그라미는
벌레를 만나도 멈춰서 이야기할 수 없었고
꽃을 만나도 향기를 맡을 수 없고
나비와 함께 놀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행복한 노래는
부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은 기쁨의 노래를...
동그라미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침내 찾았구나
마침내 찿았구나
어얼시구 저얼시구
마침내...."

이런! 세상에!
잃어버린 짝을 찾아 완전해져 동그란 동그라미는
이제 입이 열리지 않아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으음." 동그라미는 생각했습니다.
"이게 바로 그런 것이구나."
동그라미는 구르기를 멈췄습니다.

그리고 찾았던 작은 조각을 가만히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굴러갔습니다.

다시 한 조각을 잃어버린 동그라미
천천히 데굴데굴
그러나 즐겁게 노래 부르며 굴러갑니다.

"어디에 있을까 나의 한쪽은.
어디에 있을까 나의 잃어버린 조각은.
에이야 디야 나는 그를 찾아 길떠나네,
잃어버린 나의 한조각을 찾으러."

송골매가 부른 가사도 공유한다.

이 빠진 동그라미/송골매

한 조각을 잃어버려 이가 빠진 동그라미
슬픔에 찬 동그라미 잃어 버린 조각 찾아
떼굴떼굴 길 떠나네

어떤 날은 햇살 아래 어떤 날은 소나기로
어떤 날은 꽁꽁얼다 길 옆에서 잠깐 쉬고
에야디야 굴러 가네

어디 갔나 나의 한 쪽 벌판지나 바다 건너
갈대 무성한 늪 헤치고 비탈진 산길 낑낑올라
둥실둥실 찾아가네
한 조각을 만났으나 너무 작아 헐렁헐렁
다른 조각 찾았으나 너무 커서 울퉁불퉁
이리저리 헤매 누나

저기 저기 소나무에 누워 자는 한 조각이
비틀비틀 다가가서 맞춰보니 내짝일세
얼싸 좋네 찾았구나

기쁨에 찬 동그라미 지난 얘기 하려 다가
아 입이 닫혀 말 못하니 동그라미 생각하네
이런 것이 그렇구나

냇물 가에 쭈그리고 슬퍼하던 동그라미
애써 찾은 한 조각을 살그머니 내려 놓고
떼굴떼굴 길 떠나네

길 떠나네
길 떠나네
길 떠나네
길 떠나네

Dl 빠진 동그라미는 여행이 쉽지 않다.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빨리 구를 수 없었다. 천천히 구르면서 벌레와 이야기를 나누고, 길가에 핀 꽃의 향기를 맡았다. 어떤 날은 딱정벌레와 함께 구르고 나비를 길동무로 삼기도 했다. 드디어 동그라미는 자기 몸에 꼭 맞는 조각을 만났다. 동그라미는 너무 기뻤다. 완전한 동그라미가 된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쉽게 굴러갈 수 있었다. 그런데 떼굴떼굴 정신없이 구르다 보니 벌레와 이야기하기 위해 멈출 수가 없었다. 완전한 동그라미의 삶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 흡사할 수 있다. 우리는 성공과 부라는 완전함을 갖추기 위해 저마다 길을 떠난다. 그것을 손에 쥐기 위해 다들 바쁘게 허둥거린다.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성과 부를 얻은 후에도 우리는 바쁨을 내려놓지 못한다.

송골매의 노래와 동화가 말하는 것은 여유로운 삶을 되찾는 것이다. 동그라미는 구르기를 멈추고 찾았던 조각을 살찍 내려놓는다.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몸으로 천천히 굴러간다. 잃어버린 노래를 되찾는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는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 거머쥐고 순간 속에 영원을 붙잡는다"고 영국 시인 위리엄 블레이크는 말했다. 삶의 속도를 늦춰야 들꽃이 눈에 보이고 꽃향기도 맡을 수 있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휴식을 취한 들판일수록 곡식이 더 풍요롭게 자란다"고 말했다. 인생도 여유와 휴식이 있어야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배연국 논설위원한테 배운 것들이다.

거리두기로 만나지 못하게 하는 기회를 이용해 좀 멈추고 쉬었으면 한다. 괴테는 "행복은 보일락말락 하는 작은 간이역"이라고 했다. '행복의 간이역'은 자그마하기 때문에 바쁘게 서두르면 놀치기 쉽다. 우리 주위에는 행복하기 위해 일한다면서 일하느라 바빠서 행복을 느낄 틈이 없다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내 이야기가 아니다. 배연국 논설위원의 글에서 나온다. 중요한 거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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