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상상력 없는 정치, 얇고 진부한 문화, 빈곤한 지성은 언어의 빈곤에서 나온 것이다. 인문학적인 힘이 없이는 진정한 미래를 열 수 없다."
"그저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박원순 고소인)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나혜석)
언어학자 소쉬르(Saussure)는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를 랑그(langue)와 빠롤(parole)로 구별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매우 어려웠다. 흥미로운 것은 결벽증으로 소쉬르는 책을 한 권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일반언어학 강의』는 제자들이 그의 강의를 듣고 쓴 노트들을 가지고 제자들이 엮은 책이라 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오늘 아침 글의 시작에 인용한 "인간 답게 살고 싶다", "인간으로 살고 싶다" 둘 다 비슷한 말이지만, 누가 그 말을 했느냐 에 따라서 그 문장이 주는 의미는 같지 않다. 그래서 소쉬르는 언어를 랑그와 빠롤로 나누었나 보다. 소쉬르는 인간의 언어 활동에는 개인차에 상관 없이 누구나 똑같이 지니고 있는 추상적이며 잠재적인 부분의 활동과 개인이나 발음 또는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구체적인 부분의 활동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즉 랑그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동일하게 지니고 있는 언어라면, 빠롤은 그 랑그의 실현 물인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해, 랑그는 추상적인 언어체계라면, 빠롤은 구체적인 개인의 입으로 통해 발화된 것이다.
어제 오후에, 한 기자회견을 접하고, 언어를 왜 랑그와 빠롤로 나누어야 하는지 이해를 했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 에 따라 그 의미는 다르다. 같은 말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빠롤은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난 널 사랑해"도 그 말을 한 사람과 그 말을 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오늘 아침 시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쓴, 류근 시인의 것이다. 그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퍼간다는 댓글만 남기고 허락 없이 퍼온 것이다. 이렇게 유언을 해야 하나? 초연결 사회에서 아무나 아무 말을 한다. 어지럽다 그래 오늘 아침 사진은 고결하게 향을 내는 치자 꽃을 공유한다. 격이 보인다. 같은 꽃잎인 데도 다르다. 꽃은 아무 데서나 아무 말이나 하지 말라고 일러준다. 향기가 나지 않는다면.
유언-아들, 딸에게/류근
절대로 남에게 베푸는 사람 되지 말아라.
희생하는 사람 되지 말아라.
깨끗한 사람 되지 말아라.
마음이 따뜻해서 남보다 추워도 된다는 생각하지 말아라.
앞서 나가서 매맞지 말아라.
높은 데 우뚝 서서 조롱 당하지 말아라.
남이 욕하면 같이 욕하고
남이 때리면 같이 때려라.
더 욕하고 더 때려라.
남들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 웃어주지 말아라.
실패하면 슬퍼하고 패배하면 분노해라.
빼앗기지 말아라.
빼앗기면 천배 백배로 복수하고 더 빼앗아라.
비겁해서 행복질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비겁해라.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하느님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큰 교회 다녀라.
세상에 나쁜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부끄러운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양심과 선의는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라.
네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나설 것이라고 생각해라.
너보다 못나고 덜 가진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말아라.
패배자들을 경멸하고 혐오해라.
너에게 기회와 이득이 되는 사람에게 잘 보여라.
항상 그들과 동행해라.
들키지 말아라.
앞에서 못 이기면 뒤에서 찔러라.
지지 말아라.
이기고 짓밟고 넘어서고 보아라.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확실하게 줄을 서라.
중도는 죽는다.
약자를 이용해라.
어디서든 페미니스트를 자처해라.
기회주의자들에게 잘 배워라.
위선자들을 조심하되 위선엔 능해야 한다.
너의 유식과 성찰이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게 해라.
무슨 수를 써서 든 비싼 밥 먹고 비싼 잠 자라.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라.
벗은 거지는 굶고 입은 거지는 먹는다는 말 명심해라.
그러나 겉으로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처세에 도움이 된다.
너보다 힘 센 자들에게 인사 잘 하고 다녀라.
세상이 바뀔 거라는 생각 하지 말아라.
더 좋아질 거라는 생각 하지 말아라.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오직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세상의 정의를 믿지 말고 네 안락의 나침반을 믿어라.
세상에 정의란 없다.
오래 살아라. 명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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