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문정희 시인의 칼럼을 읽었다. 그 내용을 좀 공유한다. "바다거북에게 있다는 카벙클(carbuncle)이라는 이빨이 떠올랐다. 카벙클로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온 거북이만이 살아서 큰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알은 그만 모래 속에서 썩어 버리고 만다. 인간에게 카벙클은 언어가 아닐까. 언어로 자신을 깨고 밖으로 나와야 진정한 생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언어를 랑그와 빠롤로 구별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카벙클 이야기 좀 해 본다. 바다의 파도가 가장 높은 날, 그리고 여름 중 가장 뜨거운 날, 어미 거북이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거칠고 드높은 파도를 가르며 23000km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해안으로 돌아온다. 5주에서 6주 전 몸 속에 품기 시작한 알을 낳기 위해서이다. 해안에 도착한 어미 거북이는 미세한 기척도 없는 한밤중에 수십 미터 떨어진 후미진 모래사장에 둥지를 튼다. 이곳은 바닷물이 닿지 않아 알들을 위한 둥지로 안성맞춤이다. 알이 안주할 만큼의 공간이 마련되면 어미 거북이는 50에서 200개의 알을 낳는다. 알을 낳은 뒤엔 곧바로 모래로 둥지를 덮어 놓는다. 세 시간 동안 이 모든 과정을 마친 어미 거북이는 미련 없이 바다를 향해 떠나간다.
2개월쯤 지나면 모래 속에 있던 알들이 깨기 시작한다. 새끼 거북이는 알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무기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 '카벙클(carbuncle)이라고 불리는 '임시치아'가 그것이다. 새끼 거북이는 '카벙클'로 알의 내벽을 깨기 시작한다. 새끼는 무작정 알 안에 안주하고 있다가는 금방 썩어 죽게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안주하고 있는 환경이 나의 멋진 미래와 자유를 억제한다면, 자신만의 카벙클을 만들어 그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의 내면을 깨지 못한다면 새끼 거북이는 자신을 억누르고 규정하며 정의하는 환경을 세상의 전부라 여긴 채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그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세상의 전부라 여긴 채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편견과 상식, 전통과 관습, 흉내와 부러움이라는 알을 깨고 더 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정희 시인은 질문을 한다. 시인은 "대량 소비와 속도, 경쟁의 악순환 속에서 출세 성공 돈의 가치가 정신을 빼앗아 간 것도 모르고 바쁘다는 것을 무슨 깃발처럼 흔들고 살았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은 파괴되고 생명 본래의 단순한 삶, 절제와 고요함의 가치는 산만함 속으로 파묻혀 갔다"고 말한다. 그 외, 내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이 많았다. 시인 답게 말한다.
"학자들은 벌써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말하고 다가올 초정보 아이티(IT) 사회를 여러 방식으로 예측하고 있다.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인간을 옥죄는 네트워크는 바로 곁에 와 있기도 하다. 질 들뢰즈는 그러한 정보 사회에 대해 이미 강한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그는 정보 사회의 비인간을 지적하면서 “타락한 정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 자체가 타락한 것이다”라고 했다. 일본의 젊은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하여 정보란 명령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명령은 강제와 폭력을 감추고 있어 그것을 따르다 보면 인간은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다. 아마도 말하고 싶지 않아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지 모른다. 자랑과 부끄러움은 모두 한 몸에서 나온다. 그런데 어떤 이는 자랑하기에 바쁘고, 어떤 이는 부끄러움으로 마지막 걸음을 옮겼다. 자랑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세력을 만들어 부끄러움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아! 모르겠다. 문정희 시인의 이 말로 글을 마친다. "오늘 이외에 다른 것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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