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는 말했다. "어느 항구로 향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어떤 바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의 화두는 '오늘 하루도 김사하고 겸손해야 할 이유'이다.
나는 우연히 <한겨례 21>의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의 글을 만났다. 그에 의하면, 그 이유는 "인생 성취의 8할"이 "운"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의 성취는 태생의 우연성과 공동체 도움이 결정적이라는 결론이다. 어떤 성취를 이루려면, 도와줄 누군가가 마침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정말 운은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 '운'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자신의 노력보다 출신과 성장 배경이 큰 몫을 한다.
(1) 어디서 태어났는가 이다. 예컨대, 태어난 나라가 평생 소득의 절반 이상을 결정한다. 태어난 나라의 평균 소득과 불평등지수만으로 성인기 소득의 최소 50%를 예측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저 개발 국가에 태어나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삶에서 성취를 맛볼 가능성이 작다. 고등교육을 받기 어렵고, 대학의 졸업해도 좋은 직장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업가로 성공하기도 힘들다. 자본도 부족하지만, 부패와 법 집행의 자의성, 불합리한 규제, 인프라 부족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높다.
(2) 부모이다. 사람의 성취와 행동에서 유전요소와 환경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를 '본성과 양육' 논쟁이라 한다. 유전 요소가 중요하다면 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환경 요소가 중요하다면 아이의 운명을 바꿀 여지가 더 많을 것이다. 부모는 위에서 말한 두 요소를 모두 제공하므로 둘의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부모를 만났는지는 명백이 '운'이다. 부모를 자기가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인생 성취의 8할은 운이다.
(3) 건강: 우선 태어난 나라가 기대수명을 크게 좌우한다. 왜냐하면 소득수준과 의료시스템 등이 기대수명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 논문에 의하면, 주요 암의 발생 요인은 크게 유전, 환경, 세포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요소로 본다. 연구 결과 암 발생의 50% 이상이 우연에 기인한다. 부모가 물려준 유전도 운이다. 사람의 노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환경 요인은 4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의 건강도 운이 8할을 좌우한다.
최근에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는 능력주의(meritocracy) 논쟁이다. 능력주의가 말하는 '능력만큼 보상받는다'는 언뜻 보면 공정하다고 느껴진다. 그래 능력주의가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있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 우리 사회가 능력에 따른 보상을 하지 않으며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을 나오던, 즉 50-60대들은 운이 좋았다. 학점이 낮아도, 자격증 하나도 없어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 안착했다. 반면,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하다'는 20-30대들은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치열한 입시와 학점 경쟁, 끝없는 자기계발 뒤에도 원하는 취업이 어렵다. 젊은이들은 능력주의 사회의 보상이 정말 능력에 따른 것인지 의심한다.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세대가 요직을 차지하는 게 부당하다는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정말 능력만큼 보상받는가? 언뜻 보면, 맞는 거 같다. 우리나라는 시사총액 상위 30개 기업 임원의 25%가 소위 '스카이(SKY)대학' 출신이다. 이 점을 보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보상을 받는다는 원칙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소위 스카이(SKY)에 운 좋게 간발의 차이로 합격한 학생과 불합격한 학생의 시험 점수차이는 거의 없을 정도이다. 다만 유일한 차이는 커트라인이다. 그 커트라인 안에 들어가느냐 못하느냐는 인생의 성취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그러니 능력이 아니라, 운이다. 명문대 입학이 고소득자가 될 확률이 훨씬 높다. 이 점을 보면, 사회에서의 보상이 결코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김현철 교수가 소개한 로버트 프랭크 교수의 책 <성공과 운(success and Luck)>(2016)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부작용이 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1) 자기 성취가 스스로 이룬 것이라 믿을수록 세금 납부에 더 적대적이다. 정부와 사회가 도와준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2) 실패한 사람을 운이 나쁘기보다는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래 이들을 돕는 일에 소극적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8할 이상이 공동체와 다른 사람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 우선주의자들은 시험을 중시한다. 미국이 심하다. 미국 대학의 박사과정은 성적이 낮은 하위 20% 정도의 학생을 박사 종합시험으로 퇴학 시킨다. 교수 채용과정도 최종 후보자 4명을 선발해 사흘에 걸쳐 압박 면접을 한다. 이런 엄청난 경쟁 시험도 운이 작용한다. 경쟁 시험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는 교육문법이 잘 못되었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학습을 통해 인지적 성장을 견인하며, 진로준비와 사회적 소양 함양을 통해 어엿한 직업인 및 민주적 시민을 키워내는 것이 목적이다. 이젠 우리도 존엄한 인간을 기르는 교육,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우는 교육을 할 때이다. 존엄이란 프랑스어 라 디니떼(la dignite), 영어로 디그니티(dignity)라 하는 데, 이 말의 뜻은 한 개인은 가치가 있고, 존중 받고 윤리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반면 우리 교육은 능력 우선주의이다. 김누리 교수는 이를 '능력주의(meritocracy)'라 했다. 이를 '존엄주의(dignocracy)'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 존엄한 인간을 기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수월성 교육에서 존엄성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독일처럼 경쟁 교육을 완화하거나 없애야 한다. 김누리 교수는 '경쟁교육은 야만'이라고 자주 말했다. 경쟁 없는 교육이 성숙한 시민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나라는 '30-50 클럽'에 속한 7개의 나라 중에서 제국주의의 과거가 없는 유일한 나라이다. 그래 우리 나라는 도덕적으로 깨끗하다. 따라서 포스트-코로나에서 새로운 영감과 희망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나라이다. 조건이 있다. 우리가 교육혁명을 통하여 '경쟁 없는 교육'을 실현하고 학벌 계급사회를 타파할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은 가장 역동적인 나라, 가장 멋진 공동체로 부상할 수 있다. 김누리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교육혁명이 이 "고단한 사회"에서 "고상한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일상에서 이루어야 할 민주화이다.
김 누리교수는 교육 문법의 혁명, 새 바람으로 다음 4가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도 완전히 동의한다.
• 대학 입시 폐지=대입자격 고사화
• 대학 서열 폐지=대학통합네트워크
• 대학 등록금 폐지=대학 무상교육
• 특권학교 폐지=고교 평준화
오늘 아침 만난 김현철 교수는 마이클 센델(미국 하버드대)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제시하고 있는 제비뽑기에 의한 대학 입시 방안에 찬성하였다. 나도 차라리 이게 낫다고 본다. 왜냐하면 명문대 지원 학생 중 합격자 대비 세 배수정도는 우열을 쉽게 가리기 어려울 만큼 모두 훌륭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이들을 더욱 촘촘히 줄 세우기보다 제비뽑기로 입학시킴으로써 본인 인생에 얼마나 운이 크게 작용하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도와주고, 성공이 스스로 얻은 게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명문대생들의 태도와 인식을 바꾸어야 우리가 더 나은 복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물어나 후배나 젊은 세대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 대부분 내가 이룬 게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겸손하게 살 수도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해도 좌절할 필요는 없는 이유가 나온다. 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왜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더 아픈 걸까 성찰해 보고, 운이 나빴던 사람들을 더 적극적으로 도우며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다.
김 교수는 자신의 글 끝에 이런 말을 했다. 성취를 스스로 이룬 것처럼 자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부러워 하지 말고, 불쌍하게 여기자. 그들은 착각 속에 사는 사람이니까. 이런 의미에서 내일은 자만, 오만, 교만의 문제를 사유해 볼 작정이다. 인간을 천사로 만드는 것은 겸손이고, 천사를 악마로 변화시키는 것이 자만이다.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큰 틀은 거만이고, 그 거만의 형제가 자만, 오만, 교만이다. 모두 다 불행의 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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