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라고 할 수 있는 카이로스적 시간으로 '결정적 결단'의 시간은 순간이다. 봄의 약동(봄의 따뜻한 에너지)로 싹이 트는 찰나의 순간은 '눈 깜박할 시간'이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지금'이라는 지극히 짧은 시간이다.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괴물이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손쌀같이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미래에 진입한다. 그 결과 우리에게 남는 것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상뿐이며,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것도 바로 시간의 흔적이다. 그런 과거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씨줄과 공간이라는 낱줄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시간과 공간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둘의 공통분모인 사이, 즉 간을 포착해야 한다. 이것을 순간이라고 한다." (배철현)
우리는 그 '순간'을 잘 포착해 가며, '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 순간을 우리는 '찰나'의 시간이라고도 한다. 식물들은 순간순간 자신의 색깔과 자기 몸의 구조를 다채롭게 변화시킨다. 참고로 '찰라'는 불교에서 시간의 최소단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산스크리트의 '크샤나', 즉 '순간'의 음역이다. 1찰나는 약 0,013초로 75분의 1초를 말한다.
이 변화를 인식하는 순간을 영어로 '모멘트(Moment)'한다. '잠깐/잠시/(특정한) 때'란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이 모멘트는 라틴어 '모멘텀(momentum)'에서 유래한다. '모멘텀'은 '움직임/움직이는 힘/변화' 또는 '순간'이라는 의미이다. 새 중에서 가장 빠른 새가 '어느새'라고 한다. 순간의 변화, 어느새 생명의 움직움은 멀어져 있다.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 눈을 떴다 감는 그 사이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흘러가는 양적인 시간을 그리스어로 크로노스(chronos)라고 한다. 그리고 영원한 질적인 시간을 '카이로스(kairos)'시간이라고 한다.
카이로스 시간은 질적인 시간,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시간이다. '결정적 순간'이다. 경계에 선 사람만이 이 카이로스 시간을 만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하찮은 순간이 영원한 순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동굴 안에서 묶인채로 진실이 아닌 허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믿고 산다. 그러던 어느날 한 사람이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에 의문을 품고 자신을 속박했던 족쇄를 부순다. '한순간에(suddenly, 불현듯이-불을 켜서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갑자기 어떠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모양, 느닷없이)' 낯선 현실을 만나고 고통스러워한다. 이것은 과거와 단절해 새로운 시작을 여는 '갑자기/한순간에', '결정적 순간'에 일어난다. 이 순간이 우리의 타성과 게으름을 일깨우며 한 곳에 의미 없이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래야 그림자의 허상이 아닌 빛이 일깨우는 진실과 마주할 수 있다.
이런 자기 변화는 모멘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포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소중한 순간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있다면, 고통이 따르더라도 이 순간에 집중해 자신만의 빛을 찾아야 한다. 나를 정직하게 만나야 한다.
이 사진은 페북 친구(Jisu Lee)의 포스팅에서 얻어왔고, 글의 내용은 배철현의 <심연>을 읽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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