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7월 11일)
오늘의 화두는 '40일간 자신을 '격리'할 의지가 있는 가'이다. 긴 글이다. 원래는 어제의 일기인데, 어제 글을 마무리한 시간이 좀 늦어 오늘 아침에 공유한다. 이 글은 한 권의 책과 같다.
다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백신 접종자도 늘어나고 있다. 고비이다. 세상은 좀 더 거리두기, 즉 격리를 요구하고 있다. '격리'라는 뜻의 영어가 'quarantine(쿼런틴)'이다. 이는 40일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흑사병 당시 40일간의 격리를 뜻하는 이탈리아 베니스(베네또 주)의 방언 'quarantena'에서 유래했다. 참고로 음악에서 사중주를 'quartet(쿼텟)'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숫자 4와 관련이 있다. 프랑스어 4를 'quatre(끼트르)'라 한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14세기 유럽의 항구에서는 모든 선박과 선원이 지정된 섬에서 40일간을 격리한 후에 입항을 허용했다. 당시에도 거리두기는 전염병 대응의 기본이었다. 이같은 조치에도 유럽은 당시 인구의 30%를 잃었다. 7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 방역의 1차 원칙은 격리와 거리두기다. 이 길이 검역의 길이다. 아직 전적으로 강제격리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지만 백신 접종을 눈앞에 둔 지금은 시민 스스로가 자신과 가족, 지역구성원을 지켜야 할 마지막 고비다.
프랑스어는 quarantaine(까랑뗀느)는 일상 속에서는 '40대'라는 말이지만, '검역', 즉 전염병이 돌고 있는 지역으로부터 오는 사람, 선박, 화물 따위를 검역당국이 일정 기간 격리시키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2주 격리 기간'에 해당된다. 즉 14일인데, 옛날에는 40일 동안 격리시켰다. 프랑스어 40을 'quarqnte(까렁뜨)'라 한다.
왜 40일잉ㅆ을까? 나는 이 40일을 예수가 자신의 삶을 탈주(脫走)시킨, 또는 이주(移住) 시킨 40일의 사막에서의 금식 기간과 대비시키고 싶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 40일 동안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에 시달려야 했다. 기독교에서 이 유혹을 물리치는 것을 기리는 시기가 '사순절(四旬節, Passion)'이다. 각 달을 우리는 초순, 중순, 하순으로 나누는데, 여기서 말하는 '순'이 '열흘'이다.
탈주와 이주는 한글로만 보면, 비슷한 의미로 보이지만. 탈주는 삶이라는 여정, 특히 익숙함과 결별하여 자신을 불편하고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이주는 말 그대로 다른 지역에서 살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탈주이든, 이주이든, 반드시 필요한 것이 회개(悔改)이후에 벌어진다는 점이다.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사제에게 말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행위이다. 회개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단호한 결심이자 고백이며,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수련이자 용기이다." 나는 배철현 교수가 내린 화개에 대한 정의를 좋아한다. 회개를 사전은 간단하게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까지 나의 잘못을 뉘치기는 했으나, 고치는 일에는 소홀했다.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수련도 없었고, 그럴 용기도 부족했다. 그런데 아침 마다 <인문 일기> 쓰면서 부터 달라졌다. 결심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이유를 찾은 것이다.
교보생명 광화문 글 판 '여름 편'은 오늘 공유하는 김경인 시인의 <여름의 할 일>에서 뽑았다. "올 여름의 할 일은/모르는 사람의/그늘을 읽는 일". 타인의 마음을 읽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일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즐거운 숙명'이다. 주위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느끼고 함께 슬퍼하는 일이 사소해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시련을 이겨내는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어려운 시이다. 천천히 두 세번 읽어야 이해가 된다.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일일까? 그늘은 어둡고 서늘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돌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이다. 오늘 시의 3연에서 5연까지 내용으로 상상력을 보태 읽어보면, 시인은 모르는 사람이었던 한 용접공의 인생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너무 일찍 날아간 새"처럼 세상을 등진 용접공의 이야기를 듣고서, 시인은 그늘 같았던 그의 삶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분노를 두꺼운 옷처럼 껴입고", 그가 남긴 "불꽃을 식은 돌의 심장에 옮겨 지피는" 여름을 다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찬찬히 바라본다는 것,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 마음을 내어 오래 생각한다는 것. 귀를 찢을 듯한 울음 뒤에 매미가 남겨놓은 허물들처럼, '네가 다 빠져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마음과 같은' 걸 내내 꿈꾸는 일일 것"이라고 이 시를 소개하고 있는 tirol이라는 '시를 읽어 주는 남자'라는 분의 덧붙임을 공유한다.
여름의 할 일/김경인
올여름은 내내 꿈꾸는 일
잎 넓은 나무엔 벗어 놓은 허물들
매미 하나 매미 둘 매미 셋
남겨진 생각처럼 매달린
가볍고 투명하고 한껏 어두운 것
네가 다 빠져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마음과 같은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
둥글고 오목한 돌의 표정을 한 천사가
뒹굴다 발에 채고
이제 빛을 거두어
땅 아래로 하나 둘 걸어 들어가니
그늘은 돌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
올여름은 분노를 두꺼운 옷처럼 껴입을 것
한 용접공이 일생을 바친 세 개의 불꽃
하나는 지상의 어둠을 모아 가동되는 제철소
담금질한 강철을 탕탕 잇대 만든 길에,
다음은 무거운 장식풍의 모자를 쓴 낱말들
무너지려는 몸통을 꼿꼿이 세운 날카로운 온기의 뼈대에,
또 하나는 허공이라는 투명한 벽을 깨며
죽음을 향해 날아오르는 낡은 구두 한 켤레 속에,
그가 준 불꽃을 식은 돌의 심장에 옮겨 지피는
여름, 꿈이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그러니까 올여름은 꿈꾸기 퍽이나 좋은 계절
너무 일찍 날아간 새의
텅 빈 새장을 들여다보듯
우리는 여기에 남아
무릎에 묻은 피를 털며
안녕, 안녕,
은쟁반에 놓인 무심한 버터 한 조각처럼
삶이여, 너는 녹아 부드럽게 사라져라
넓은 이파리들이 환해 진 잠귀를 도로 연다
올여름엔 다시 깨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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