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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이야기들은 아무리 들어도 늘 새롭다.

7년 전 오늘 글이에요.

'참나'를 찾는 여행

이야기들은 아무리 들어도 늘 새롭다.
왜냐하면 이야기들 속에는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1. 정말 중요한 것은 내버려 두고, 사소하고 쓸데없는 짓만 하다가 끝나는 것이 우리 삶이다.  딴 생각하고 엉뚱한 데 한눈 파는 사이 흘러가버리는 것이 삶이다. 일상의 사소함에 신경 쓰다 삶의 본질을 놓쳐버리는 이야기이다.

2. 중요한 것을 찾다가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놓치는 이야기이다. 삶의 본질을 추구하다 일상의 중요성을 놓쳐버리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니버의 기도"가 삶에서 필요하다.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한 믿음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여기서 믿음과 용기보다 더 필요한 것이 지혜이다. 만약 지혜가 없다면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힘들게 하고 일도 망치게 된다.

3.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의미 전달이 끝나자마자 효과가 소멸되는 '정보'와 달리, 이 이야기는 그 의미를 최종적으로 유보하기 때문에 계속 살아남는다. '모르는 것'이 남아 있어 '아는 것'을 부추기기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이 제곱으로 많아진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 제자 안회의 물음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든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안다고 생각하면 모르는 것이다. 문제는 '모르는 것'에 있지 않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 모르겠다. 도무지 우리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알려고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없어진다는 것이 또한 더 큰문제이다.

절 사진만 보면, 나에게는 '이야기'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