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시입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교사들은 말한다. 학교 교육이 빠르게 무력화하고 있다. 실제로 내 친구들을 보아도 그렇다. 40년 전에 배운 것으로 지금까지 그때 배운 것을 우려먹고 있다. 다는 아니다. 일부가 그렇다는 말이다.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 모른다. 학생들은 대학 입시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지성을 함양해 준다는 거는 아예 무리이다. 지금은 교과서 마저 조롱거리이다. 교과서는 현실을 전혀 모르고 쓴 엉뚱한 소리라는 것이다. 교과서가 수험용 지식일 뿐이지 그것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보탬이 전혀 안 된다고 여긴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학교 교육이 정상적이라면, 배우면 배울수록 공감 능력이 향상되고, 정의로워져야 한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은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며 오히려 교사를 가르치려 대든다. 둘 다 '부모 찬스의 끝판 왕'이라면서, '난 나경원보다 조국이 저 싫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사람 이름 실명으로 말해 죄송하다. 그 학생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냐 물었더니 여론은 누가 더 나쁜 짓을 헸느냐 따지기보다, 착한 줄 알았던 사람이 저지른 나쁜 짓에 더 분개한다는 것이다. 참, 언론의 잘못인가? 생각을 당하는 개인의 잘못인가?
이런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오마이뉴스>의 서부원 기자의 기사, "가치보다 실리를 따지는 10대와 대화"였다. 제목이 바로 눈에 꽂혔다. 서 기자의 기사 내용을 인용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일에 뿌리를 두고 과거 독재정권과 결탁해온 보수언론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국민들을 좌와 우로 편을 갈라 끊임없이 갈등을 조장하며,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도록 부추겨온 그들에게 조국은 좋은 '먹잇감'이 됐다. 도덕적 우위를 내세운 진보 세력의 본모습이라며 날을 세웠다. 이는 실로 파렴치한 짓을 일삼아온 그들의 '물귀신 작전'이기도 했다."
사실 우리들의 정서가 원래 나쁜 사람이 더 나쁜 짓을 하면 쉽게 용서해도, 착하다고 믿었던 이에게 티끌이라도 발견되면 더 득달같이 달려드는 법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보다 '가치'가 더 중요하다. '결과적 승리'보다 '대의와 명분'이 앞서야 한다. 꼼수가 원칙을 이기면 안 된다. 만에 하나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도 결과보다 저 중요한 것은 대의와 명분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이런 말을 하면 심드렁한 반응이고, 말도 꺼내지 마라며 '꼰대' 취급을 한다.
청년들이 50-60대 어른들보다 더 보수적이다. 가슴이 아프다. 청년들이 기치를 지향하기 보다 실리를 따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꼼수는 원칙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하면 청년들은 '순진하다'느니 '나이브하다'고 한다. 학교 교육이 형해화(形骸化)되었기 때문이다. 꼼수가 원칙을 이긴다면, 이 형해화는 더 가속화 될 것이다. 어린 학생들이 가치보다 실리를 더 따진다. 슬픈 현실이다. 살아보면 아는데...
교육이란 무엇인가? 배철현 선생은 "교육이란 상대방 입장에 서 보는 연습"이라고 멋지게 정의를 했다.
교육이란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이기적인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은 내용을 없애는 훈련이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몸이 익힌 버릇, 대부분 유기해야 할 나쁜 버릇을 제거하는 수고이다.
그러니까 교육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스스로 깨닫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다. 교육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다양한 답이 있으니, 자신에게 알맞은 답을 찾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교육은 회초리로 학생들을 다그쳐 빨리 많이 외우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핸드폰에 세상의 모든 지식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교육(敎育)하다'라는 영어는 'educate'이다. 이 말은 학생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고유함을 자극하여, 그것을 '밖으로(e-) 끄집어내는(-ducate)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패자부활전이다. 우린 너무 승자독식사회이다. 로마에선 패전하고 돌아온 장군을 다음 전쟁에 다시 내보냈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는 승자 독식 사회이고, 한 번 실패하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 우리는 패하고 돌아온 장수의 목을 뱄고, 일본은 장수가 알아서 할복을 했다. 서양인들의 면접에서는 완벽한 사람보다 실패의 경험이 있고 그것을 극복해낸 사람의 이야기를 더 높이 산다. 우리 면접에서는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높은 성취를 이뤄낸 이야기를 높이 산다. 작가 오소희가 멋지게 말한다. "방황이나 실패를 역병처럼 피하는 문화는 유턴도 오솔길도 없는 '고속도로'밖에 건설하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토목공사 밖에 하지 못한다."
패자부활전, 그건 사회 시스템 문제이다. 그러나 개인도 교육을 통해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고 싶다면, '절도 있는 행동'과 '졸업' 그리고 '생계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두 개의 사자성어를 소개하고 글을 마친다. 하나는 '적토성산(積土成山)'이고 또 하나는 '적후지공(積後之功)'이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거기에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물을 쌓아 연못을 이루면, 거기에 물고기들이 생겨나고
산을 쌓고 덕을 이루면, 신명이 저절로 얻어져서 성인의 마음이 거기에 갖춰진다.
적토성산 積土成山, 풍우흥언 風雨興焉
적수성연 積水成淵, 교룡생언 蛟龍生焉
적선성덕 積善成德, 이신명자득 而神明自得 성심비언 聖心備焉" (<순자>, "권학")
『장자』를 펼치면, 물고기 "곤"이 변해서, "붕"이라는 새가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곤"이 그냥 "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긴 시간의 축적을 통해 크기를 키워야 한다. 크기가 커진 어느 날, 엄청난 에너지를 등에 업고 물고기는 상승한다. 상승하는 동력이 극점에 이르러 멈추는 순간, 존재 차원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 새가 되는 것이다. 이는 노력, 아니 공력(功力)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이를 사자성어로 '積後之功(적후지공)'이라 한다. 이 힘은 일상을 지배하는 매일매일의 축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상에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다. '적토성산'과 '적후지공'의 정신으로 가치와 의미를 쫓아야 학생이다. 너무 눈 앞의 실리를 따지면 오래 가지 못한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은 3,1운동 101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독립만세! 3,1혁명의 기운으로 코로나19를 떨치고,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어서 왔으면 하는 아침이다. 3월, 다시 시작한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내 동네 탄동천의 물도 쉬지 않고 흘러간다. 자신이 가야할 곳, 바다를 향해 묵묵히 인내하고 흘러간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겠다/이서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보내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있었나
얼마나 많은 그리움이 남았나
누군가를 위해 울어 줄 자리가
여전히 남아있긴 한 걸까
토해내듯 쏟아내고 나면
난 매일매일 낯설게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좋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만나는 일은
두려웠으나 행복했고 눈물났으나 고마웠다
어쩌면 딱 이만큼의 향기가
어쩌면 딱 이만큼의 자리가
누군가를 위해 꽃 한송이 피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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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