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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시는 여러 번 한자 한자 천천히 잘 읽어야 마음에 닿는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0월 1일)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편, 아니 존재 자체의 편이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우리는 한 사람이고/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중심의 존재보다는 주변의 존재이고 싶다. 긴 연휴 기간동안 많은 시인과 시들을 만나고 있다. 어젯밤에 만난 이문재 시인의 시를 우선 공유한다.

어떤 경우/이문재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시는 여러 번 한자 한자 천천히 잘 읽어야 마음에 닿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를 잘 읽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가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각박한 세상에,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 한가하게 무슨 시 타령이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다음은 이문재 시인이 자신의 시를 말하면서 했던 이야기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기록 중에 경청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수용소에도 티타임이 있었다고 한다. 몇 번 우려낸 형편없는 차였지만 하루에 한 번씩 차가 배급됐다. 티타임에 수용소 사람들은 둘로 나뉘었다. 차를 단숨에 들이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차를 절반 남겨 얼굴이나 손발을 씻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자는 동물적 본능에 충실했고, 후자는 최소한의 인간적 몸 가짐을 지키려 애쓴 것이다. 그런데 둘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살아남았을까? 놀랍게도 후자 쪽의 생존율이 더 높았다 한다. 브라이언 보이드(Brian Boyd)가 쓴 <<이야기의 기원>>(남경태 역, 휴머니스트, 2013)의 옮긴이 글에 나오는 대목이라 한다. 이문재 시인은  아우슈비츠에서 찻물을 남겨 자기 얼굴을 씻는 행위가 자기성찰, 즉 시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부라이언 보이드는 시를 포함한 예술은 사치나 장식이 아니라 진화론에서 말하는 적응의 산물이자 인간 생활의 핵심이라 말했다 한다. 예술이 진화와 무관했다면 예술은 벌써 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찻물을 아껴 자기 몸을 청결히 한 사람, 끝끝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언젠가 읽은 이야기를 하나 더 공유한다.

오래 전에 일본 최고의 명문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 학생이 공부를 더하라는 교수와 선배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회사에 취업하기 위하여 '마쓰시다 전기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접수시켰다. 그는 지금까지 수석을 놓친 적이 없고 항상 남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주위 사람들한테서 부러움의 대상인 천재 학생이었기에 공부를 포기하고 취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남들이 이해 못하는 숨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 천만 뜻밖에도 합격자 명단에 천재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그는 몇 번이고 확인하였지만 분명히 자신의 이름이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천재는 분명히 수석으로 합격될 것으로 자신했는데, 수석은 커녕 합격자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것이다. 당당한 모습으로 발표를 기대했던 그는 풀이 죽은 채 환호하는 합격자 와 합격자 가족들을 뒤로하고핏기가 없는 얼굴로 힘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돌아온 그는 그날 저녁 평생 처음 맛본 불합격에 따른 좌절감과 자존심이 상한 것을 이기지 못하고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을 하고 잠에 들었다 영원한 잠에 빠지고 말았다. 다음날 가족들은 이미 숨을 거둔 그를 발견하고 큰 슬픔에 빠져 오열하고 있을 때 긴급전보로 '합격 통지서'가 도착하였다. 그는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실력으로 합격 했던 것이다. 수석으로 합격하였기 때문에 일반 합격자 명단에 넣지 않고 별도로 적혀 있는 그의 이름을 실무자 실수로 합격자 명단에서 빠뜨린 것이었다. 당시에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회사의 실수로 천재를 죽였다고 비난하는 보도가 연일 쏟아졌다. 그 천재 청년은 '자존심((自尊心, pride)' 때문에 '자존감(自尊感, dignity)'을 포기한 사람이 되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다르다.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하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고, 자존심은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다.

세월이 흘러 사건이 잠잠할 무렵 한 기자가 그 회사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을 찾아가 인터뷰하며 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회장은 당시 회사의 실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 하면서 말하였다. “장래가 촉망이 되는 청년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다행 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뜻밖의 말에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총수는 말을 이었다. “단 한 번의 실패를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심약한 사람이라면 다음 중역이 되었을 때 만약 회사가 위기에 봉착한다면 모든 것을 쉽게 포기 함으로서 회사를 엄청난 위기에 빠뜨리고 전 사원의 삶이 걸려 있는 회사를 비극으로 끝을 맺는 우를 범할 수 있었을지 알겠습니까?”

자존감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가 있다. 내가 나를  존중해야 남도 존중해줄 수 가 있다. 그런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 에도 좌절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남의 탓이나 남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무시하지 않는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포용하고 양보하며 겸손한 삶을 살아간다.

좀 더 길지만, 원문을 읽으시려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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