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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지성(知性)은 책이나 글을 읽고, 말하고 쓰는 일에서 나온다.

2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9월 29일)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현재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태들에 대하여 감각의 문을 활짝 열고, 고집스런 내 편견과 선입견을 사슬을 끊고 풀어헤치려"는 목적이다. 이 세계는 내 쪽에서 바라보는 시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그때 자기 모멸의 감정이 일어난다. 이는 자신의 무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자신만의 좁은 선입견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관점에 접근할 수 있다.

인간의 몸은 생각하고, 피아노를 치고, 호르몬을 분비하고, 체온을 조절하고, 세균을 죽이고, 해독하고, 아기를 잉태하는 일을 한꺼번에 수행한다. 이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지성이다. 지성은 우리 몸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만드는 한편, 충만함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글을 알면 말도 달라지듯이, 지성을 갖추면 모든 것의 격과 수준이 달라진다. 삶의 방식이 풍성해지고 그 풍성함이 다른 사람의 삶에도 넉넉함을 안겨준다.

이 지성(知性)은 책이나 글을 읽고, 말하고 쓰는 일에서 나온다. 글이나 책을 만나 읽고 타자와 접속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나를 창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로 쓰지 않은 생각은 날아간다는 거다. 생각은 향기와 같아서 그 순간 붙잡아 두지 않으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을 잡아 두기 위해, 글을 쓰려면 내공(內攻)이 필요하다. 내공은 욕망과 능력의 함수이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욕망이라면, 그것을 지속하는 힘이 능력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내공은 중국 권법의 용어로 '내가(內家)의 공부(功夫)'를 줄인 말이다. 이는 곧 내적으로 쌓은 힘을 뜻한다. 사실 산다는 것은 온갖 고난을 겪는 거다. 피할 수 없을 바에 야 부딪혀서 겪어 버리는 게 낫다. 그래 인생을 잘 살아가려면 누구든 자율성과 능동성을 발휘하는 길을 반드시 확보해야 된다. 그래야 자유로운 사람으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런 길 중에 글쓰기가 가장 보편적이다.

고미숙에 의하면, 글쓰기의 시작은 발원(發願)과 집중(執中)이라 했다. 글쓰기에서 발원은 생각의 편린들을 모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주제가 압축되며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이 일어난다. 그런 다음 집중하는 거다. 집중하면, 일상과 세계를 재발견하게 된다. 요약하면 간절히 발원하기는 주제를 화두처럼 늘 갖고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항심(恒心)을 갖고 집중하며 삶의 현장을 놓치지 않는 거다.

그런 다음 글 쓸 내용들의 질서를 부여하는 거다. 산만하게 흩어진 생각의 조각들에 리듬을 부여하는 거다. 질서를 줄 때 그 기준을 '봄-여름-가을-겨울'로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다. 우리 존재가 이 리듬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학교 다닐 적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라 불렀다. 봄은 기(起)이다. 일어나는 기운이다. 글의 처음에는 스프링(용수철)같은 봄의 기운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승(承)은 기에서 제기한 문제를 펼치고, 가을의 결실처럼, 전(轉)은 말 그대로 전환이 일어나야 하고, 결(結)은 전제 논지를 압축하면서 응축해야 한다 겨울이 되면 만물이 씨앗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게 리듬을 타는 거다. 글쓰기 뿐만 아니라, 삶도 마찬가지로 리듬을 타야 한다. 세상 만사가 시작, 중간, 변화, 마무리로 전개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리듬을 타면 엔트로피 법칙(사물들은 늘 무질서를 향해 달려간다)에 저항해서 방심하지 않고 정신 차릴 수 있다. 그 리듬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기승전결', '발단-전개-절정-대단원'으로 정리가 된다. 좀 더 디테일 하게 다시 이야기 해본다.

기(起)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품어내는 봄의 기운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유함이다. 봄의 풀꽃들도 자세히 보면 생명 에너지가 충만하여 똑같은 건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나의 고유한 씨앗을 발아시키려면, 언 땅을 뚫고 나와 건너가야 한다. 평소에 우리는 통념과 상식이라는 언 땅에서 산다. 그 통념과 상식은 견고하고 고집스럽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 받는 말을 보면 안다. 거기서는 나의 고유한 생명력을 일으킬 수 없다. 상식과 통념이라는 굳어 경직된 땅에서  봄의 기운처럼 건너가야 한다. '건너간다'는 말은 아주 빈곤하고 척박한 그 땅을 뚫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건너간 곳에서 언어가 창조된다. 풀꽃 하나가 보여주는 생명력처럼, 문제제기 하나면 충분하다. 어쨌든 갈아 엎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주말 농장 일도 그렇다. 땅을 얼려야 한다. 그리고 그걸 갈아 엎으면, 그 때부터 땅은 봄 기운을 받는다.

기에서 새싹이 발아하고 나면, 꽃샘 추위가 와서 다시 얼게 한다. 우리들의 청년기와 같다. 그래 모든 문화에서 '가혹한' 통과의례가 있는 것이다. 여름처럼 승(昇)에서 활짝 펼치려면, 꽃샘추위의 통과 의례처럼,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냥 대충 보고 대충해서는 글이 진행되지 않는다. 이런 농담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벌레가 '대충'이라 한다. 대충하면, 씨앗이 웅크린 채 말라 비틀어진다. 대충한다는 것은 땅을 뚫고 나와서 꽃샘추위와 맞짱을 뜨지 않는 거다. 그걸 인정한다면, 늦더라도 문제를 클로즈업 해서 미세한 디테일을 포착해야 한다.

전(轉)에 가면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반전' 혹은 '도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글의 흐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통념과 상식을 깨면서 치고 나가야 한다. 여름의 절정에서 가을로 교체되는 시기이다. 이걸 우주의 대혁명, '금화교역(金火交易)'이라고도 한다.

'금화교역'이라는 말이 어렵지만 흥미롭다.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음양오행설에서 목화는 양이고, 금수는 음이다. 목생화는 양에서 양으로 가고, 금생수는 음에서 음으로 가는 것이다. 이는 오행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목생화는 양으로 성장을 금생수는 음으로 내실을 관장한다. 목화가 금수를 만나지 못하면 성장은 하나, 허장성쇄가 되고, 열매를 맺지 않으니 평생 배워 활용하지 못하고, 금수가 목화를 만나지 않으면 성장해 본 적이 없으니 가지고 있는 것만 지키고 사니 이 또한 발전이 없게 된다. 음양이 만나야 배운 것을 활용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실패를 거울 삼아 다시 재기에 도전할 수 있는 지혜 또한 쌓이게 되는 것이다. 목화가 금수를 보지 못하면 경험이 축적되지 못하니 했던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앞에서 남고 뒤에서 밑지는 꼴이 되고, 금수가 목화를 보지 못하면 더 넓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질 못했으니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따로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음과 양이 만나야 쓰임새가 생겨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니 양 중의 양인 화와 음 중의 음인 금이 만나 서로의 경험과 능력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 '금화교역'이라 한다.

이렇게 자연은 해마다 역(易)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야 우주가 제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야 결(結), 즉 겨울의 씨앗이 가능하다. 결은 지혜이다. 이 지혜가 쌓이면 열린다. 그래 결은 열려 있어야 한다. 명료한 답이 있을 수 없다. 지혜는 경계에 서는 일이다. 그래 결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열림'이어야 한다. 글쓰기는, 결론에 와서, 제기된 문제가 훨씬 심화된 혹은 아주 새로운 문제로 구성되어야 한다. 겨울에는 씨앗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씨앗이 되면 유형적인 것이 없어진다. 빈 허공이 남는 거다. 여기서 빈 허공은 새로운 문제를 잉태하는 현상일 뿐이다. 그래야 또 다시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기승전결', '봄-여름-가을-겨울'을 글쓰기에 적용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병들지 않고 정신차리고 살려면, 몸과 마음을 훈련하는 것 말고 다른 약은 없다. 그 훈련의 핵심이 앞에서 말한 리듬을 타는 것이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의 '차서(次序)'를 잡아서 그 리듬에 맞춰 해 나가는 것이다. 리듬을 타지 못하면 모든 게 일그러진다. 관계도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스트레스를 받아 병을 얻는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항복하는 일이다. 글쓰기는 거기에 저항하는 최고 실천이다. 글쓰기는, 오늘 시처럼, 그것이 되어 보는 거다.

그것이 되어 보세요/존 모피트(Jhon Moffitte)

무엇을 보든지
만약 당신 그것에 대해 올바로 알려면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해요.
푸른 마무를 쳐보면서
'이 나무에 봄이 왔구나'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당신은 당신이 바라보는 그것이 되지 않으면 안 돼요.
고사리의 꼬불꼬불한 검은 줄기와
흰 솜털에 싸인 잎들이 되어야 하고,
잎사귀들 사이 작은 침묵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해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잎사귀들이 내어 보이는
그 평화로움을 만질 수 있어야 해요.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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