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9월 8일)
오늘 아침에 다시 한 번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야기를 한다. 이 라틴 말을 직역하면 "현재를 잡아라, 현재에 충실하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현재를 즐겨라"로 오해하고 있다. 그 오해는 남아 있는 것을 모두 털어서 현재를 쾌락하라는 말로 이어진다. 그러면 이러한 삶의 방식은 중독자를 만든다.
카르페 디엠은 로마 시인인 호라티우스가 다음과 같이 한 말에서 나온다.
Dum loquimur
Fugerit invida aetas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
남 눈치를 보고 부러워하고 흉내 내다 보면 세월이 저 만큼 도망갑니다.
가르페 디엠!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신경을 덜 쓰십시오!
나는 이렇게 번역한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남들을 부러워하다 보낸 세월이 저만큼 흘러가네, 이 순간을 낚아 채십시오,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걱정하거나 믿지 마십시오."
세월이 아까운 이유는 자신을 응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타인을 응시하고 타인의 인정을 목말라 하며, 타인이 원하는 것이 어느 순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스스로 최면(催眠)을 걸었기 때문이다. 최면이란 암시(暗示)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수면(睡眠)에 가까운 상태를 말한다. 그 몽롱한 상태를 라틴어로 'invidia', 즉 '부러움', '선망'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하루는 네가 아닌 다른 것이 되라고 유혹하는 선망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런 삶을 학교에서 배우고, 미디어를 통해 매순간 접한다.
우리 현대인들의 삶을 지탱하는 문법이 부러움이다. 부러움이 지나치면 시기와 질투가 되어, 자신이 아닌 남을 헐뜯는다. 호라티우스는 그런 세월을 보내는 야속한 세월을 '아에타스(aestas)'라고 명명한다. 아에타스는 자신을 위한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해, 그냥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지칭한다.
그리고 '카르페 디엠'에서 '다엠'은 하루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하루는 하늘이 주신 기회이다. 그 기회를 낚아 채야 한다. '카르페'는 카르페레(carpere)라는 동사의 단수명령형이다. '카르페레'는 '과실을 따다', '곡식을 추수하다'라는 말이다. 농부들이 사용하던 말이라고 했다. 농부에게 가을은 자신이 봄에 심은 씨앗이 만들어 낸 기적을 거두는 때이다. 농부가 잘 익은 과일을 나뭇가지에서 떼어 내기 위해서는 과일의 당분과 싱싱함이 최고인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즉 수확의 시점을 정확하게 잡아야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과일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다른 각도로 말하면, 잘 익은 곡식을 얻기 위해서는 봄에 씨앗을 심고, 여름에 거름을 주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조치를 잘 취해야 한다. 봄에 씨앗을 심고, 오랜 기간, 그 과일이나 곡식을 돌본 사람만이 '카르페레'할 수 있다. '카르페레'를 고대 그리스어의 어원을 적용하면, 과일과 곡식은 봄부터 쓸데 없는 것들을 걸러내는 오랜 작업을 통해 얻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정리하면, '카르페 디엠'을 번역하면, '오늘이라는 과일을 따먹어라', 혹은 '오늘이라는 곡식을 추수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쓸데 없는 가지를 쳐왔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가지치기는 빼기이다.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문법이 여기에 적용되어야 한다. 내가 오늘이라는 과실을 따려고 몰입할 때, 나를 혼미하게 만드는 방해꾼이 있는데, 그것들을 제거하는 일이다. 호라티우스는 이 방해꾼을 미래에 일어날 일들, postero라고 말한다. 미래는 오직 않은 것이다. 미래는 오늘의 연장이다. 미래에 마음을 두는 일은 어리석다. 미래는 오늘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가슴 뛰는 일을 하지 말고, 잘 하는 일을 해야 해요. 왜냐하면 가슴 뛰는 일을 쫓다가 가슴이 안 뛰기 시작할 수 있거든요." (김영하 작가) 그러면서 지금-이 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부초와 같이 된다.
모든 것의 처음은 사소하고 미약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쌓이고 쌓인다. 쌓여서 육중한 무게와 너른 넓이를 만든다. 쌓이면 누구도 꺾을 수 없다. 다발과 묶음과 무더기는 어떤 힘도 견뎌낸다. 마치 서로 의지한 갈대 묶음을 힘센 사람도 쉽게 부러뜨릴 수 없는 것처럼.
지금-여기가 맨 끝이라고 여기는 때가 맨 처음이다. 끝은 맨 앞이다. 끝에서 생겨난다. 실뿌리에서 생겨나 잔가지와 우듬지가 된다. 새순에서 생겨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아, 이제 이곳이 끝이구나 라고 자신을 아주 허물어버리지 않는다면 거기 그때가 맨 앞이 된다. 그리고 매 순간 놀랍고, 기적과도 같은 진전이 이뤄진다.
지금-여기서 모든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갑자기 일이 많아져,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카르페 디엠"을 소환해야 한다. 카르페 디엠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화" 하는 일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희망에 브딪혀 죽고 싶지 않다."
희망에 부딪혀 죽다/길상호
월요일 식당 바닥을 청소하며
불빛이 희망이라고 했던 사람의 말
믿지 않기로 햇다 어젯밤
형광등에 몰려들던 날벌레들이
오늘 탁자에, 바닥에 누워 있지 않은가
제 날개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속이 까맣게 그을리는 줄도 모르고
불빛으로 뛰어들던 왜소한 몸들,
신문에는 복권의 벼락을 기다리던
사내의 자살 기사가 실렸다 어쩌면
저 벌레들도 짜릿한 감전을 꿈꾸며
짧은 삶 걸었을지도 모를 일,
그러나 얇은 날개를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은 얼마나 큰 수렁이던가
쓰레받기에 벌레의 잔재 담고 있자니
아직 꿈틀대는 숨소리가 들린다
저 단말마의 의식이 나를 이끌어
마음에 다시 불 지르면 어쩌나
타고 없는 날개 흔적을 지우려고 나는
빗자루를 더 빨리 움직였다
페이스북에서 윤정구 교수님의 담벼락에 만난 거다. "카르페 디엠의 원래 의미는 '과거와 미래를 현재화 하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고 미래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상상해 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거나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 인간이 지금과 같은 문명을 만들지 못했다. 과거로 자신의 의식을 여행 보냈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과거의 18번과 영광만 되 새기는 사는 사람들도 있고, 미래만 상상하다 이 상상의 덫에 걸려 파랑새처럼 꿈만 꾸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뇌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는 기억일 뿐이고, 미래는 상상하고 기대된 체험일 뿐이지 실체가 없다. 뇌는 현재만을 살 뿐이다. 이러한 뇌를 속이는 방법이 시간의 현대화, '카르페 디엠'이라는 것이 윤 교수의 주장이다. 나는 '시간의 현재화'란 말이 좋다. 이 말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고 기대한 것을 넘어서 이것을 가져와 현재와 접속시켜 이것을 부활시키는 능력이라 했다.
(1) 과거의 현재화: 과거 속에 묻혀 죽음을 당하고 있는 기억들을 현재와 접속시켜 오래된 새 길로 부활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과거를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2) 미래의 현재화: 상상적으로 기대하며 체험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가 열망하는 목적에 대한 약속을 시간에 앞서서 실현시키는 일이다. 이런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목적이라는 상상적 기대를 지금 현재로 가져와서 씨앗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과거의 현재화가 기억으로 죽어가는 과거를 살려내 "오래된 새길"을 만드는 작업이라면, 미래의 현재화는 스쳐 지나갈 수 밖에 없는 "미리 가본 새길"을 만드는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서, 만들이 가지 않은 길이 올바른 길이라는 보장이 없어서 나중에 후회할지 모르지만 이 길을 택한 것에 자부심을 노래한다.
윤교수는 "미래의 새실"을 위해서 목표를 미래로 착각하지 마라고 했다. 물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모든 길은 현재의 길이다. 그러니 이 목표가 목적으로 이어질 경우만 길은 미래의 길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미리 가본 새길"이 목표를 넘어 목적으로 이르는 길인지 물어야 한다. 어떤 길이 목표를 통해 숨겨진 목적이라는 미래가 드러나게 하는 길인지를 찾아야 한다. 목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모든 길은 미래의 길이 될 수 없다.
윤교수에 의하면, 벤치마킹을 통해 미래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미래의 현재화 능력이 떨어지는 대표적인 사람들이라 했다. 미래를 현재화 하기보다는 꿈을 쫓아 파랑새처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만들어낸 남의 복사품의 미래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없다. 벤치마킹의 의도는 좋지만 벤치마킹이 벤치티마킹으로 끝나면 미래의 죽음을 예고할 뿐이다. 이들을 통해서는 절대로 미래를 만날 수 없다.
카르페 디엠, 즉 '현재에 충실 하라'는 말은 과거를 살려내 만들어낸 토양에 미래의 씨앗을 심어 과일나무를 가꾸는 농부의 일에 충실 하라는 것이다. "살아 있는 역사는 과거를 부활시킨 '오래된 새길'과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서 만든 '미리 가본 새길'을 교차 시켜 직조하는 방식으로만 만들어진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르페 디엠은 시간의 직조를 통해 약속한 목적을 실현시켜 후세에게 진짜 유산을 남긴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의 비밀열쇠이다. 카르페 디엠은 '현재를 즐겨라'가 아니라, "현재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직조하라는 명령"이라 윤교수는 결론을 냈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길상호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카르페_디엠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오늘 아침은 세네카(기원전 4년-기원후 65년)를 만난다. (3) | 2024.09.10 |
|---|---|
| 뇌는 '살던 대로 살 거야'하며 관성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5) | 2024.09.10 |
| 로컬텍트(localtact) (0) | 2024.09.10 |
| 예술은 낮술이며 경계에 서는 것이다. (4) | 2024.09.10 |
| 거꾸로 읽는 법 (2) | 2024.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