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9월 2일)

37년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일하며 마음이 아픈 사람 3만명 이상을 치료해 온 채정호 교수(서울성모병원)는 저서 <<진정한 행복의 7가지 조건>>에서 행복을 '우연히 일어나는(幸) 좋은 일(福)'로 여기는 우리의 잘못된 선입견을 지적한다. 그리고 실제로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행복의 원칙들을 소개했다. 이를 우리 삶 속에서 하나 씩 구현하다 보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행복한 삶, 잘 사는 삶에 가까이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틀에 걸쳐서 살펴본다.
우리의 문제는 흔히 억지로 안 되는 것들, 슬프고 괴로운 것들을 해결하려고 든다는 데 있다.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자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판단하게 만든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순간, 수용은 멀어진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수용이 필요하다. 그 건강한 수용은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완성된다고 했다
▪ '정상 화'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며, 따라서 내가 이런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용감한 소방대원이더라도 인간인 이상 거센 불길을 두고 무서워서 물러서는 반응은 정상이다. 즉, 내 모든 행동을 정상이며, 나 말고 누구라도 이럴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상화다.
▪ '타당 화'다. 다른 사람은 어떤 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이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타당화는 'validation'이라는 영어를 번역한 용어다. 'valid'는 외국에 입국할 때 출입국을 허가하는 입국사증에 찍히는 말이기도 하다. 심리학에서는 수용하고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수인'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즉 타당 화란 비록 자신이 좀 허접 하고 못마땅하더라도 괜찮다고, 타당하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 '자기 확신'이다. 좀 부족하고 힘겹고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더라도, 자기 자신이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인정하고 나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채정호 교수는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을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한국인에게 꼭 필요한 행복의 조건으로 수용, 변화, 연결, 강점, 지혜, 몸, 영성이라는 일곱 가지 요소를 도출해 냈다. 또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려 할 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강조했다.
▪ 행복을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마냥, 즐겁게' 작은 노력을 멈추지 않고 계속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예컨대, 변화를 추구할 때 '최고(best)'가 되려 하지 말고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것(better and better)'을 목표로 하라.
▪ 변화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뒤집는 혁명이라는 오해, 힘들고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라. 무슨 일이든 즐겁지 않으면 결코 꾸준히 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서 각자 자신의 마음의 방조제를 쌓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긍정 자원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거다. 그 이유는 살면서 고통스러운 일을 겪게 될 때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이다. 그래야 어떤 일이 생겨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지닌 자원을 활용해 문제에 대처하고 행복을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홍수가 몰려와도 마을이 침수되지 않으려면 방조제를 충분한 높이로 쌓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변화도 그렇게 마음의 방조제를 높이 쌓아가는 일이다. 우리 삶에 방조제를 쌓을 때 주의해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 충분히 높이 쌓는 것도 중요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전체를 균일하게 높이는 것이다.
▪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하면서 보람과 성취감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 마음도 잘 챙겨야 한다.
▪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되 건강을 해쳐서는 안 된다.
어떤 한 가지를 희생해서 다른 것을 더 잘하려 하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가 아니다. 한쪽을 허물어 다른 쪽을 높이 쌓는다 한들, 쓰나미가 몰려오면 결국 낮아진 쪽으로 물이 흘러 넘칠 것이다. 자기 삶에 어떤 쓰나미가 몰려와도 잘 버텨내려면 몰입, 재미, 즐거움과 같은 긍정 자원을 균일하게 쌓으면서 동시에 우울, 불안, 분노와 같은 부정 자원을 긍정 자원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구멍 난 곳으로 물이 흘러넘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방조제를 높이 쌓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다. 변화는 결코 한번에 뚝딱 이룰 수 없다. 많은 사람이 변화에 실패하는 데는 '당장 오늘', '1년 내에' 결실을 맺으려 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축을 길게 잡자. 변화는 결국 시간 싸움이다.
채정호 교수가 제시하는 행복의 정의는 웰빙(well-being), 말 그대로 '잘(well) 존재하는(being) 것'이다. 인간으로서 잘 존재한다는 건 어떠한 결핍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최적의 수준으로 활용해 꾸준히 성장함으로써 자기 실현을 이루는 삶,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삶을 뜻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나만의 강점을 찾는 거다. 그 강점은 나를 나 답게 만들어주고, 세상의 변화에 당당히 맞설 내면의 힘을 기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강점을 갖고 있고, 자기 삶에서 어떻게 활용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계발할 수 있다. 나 다운 삶,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내 강점을 분명히 알고 발현시키면서 살아가야 한다.
여기서 '강점대로 산다'는 건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점에 집중해 산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왼발 잡이 축구 선수가 왼발을 집중적으로 쓰는 것과 비슷하다. 태생적으로 왼발을 잘 쓴다면 왼발의 능력을 키우는 게 훨씬 유리하다. 굳이 처음부터 오른발을 훈련할 필요가 없다. 물론 양 발을 다 잘 쓰면 좋겠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왼발을 잘 쓰고 나서다. 나만의 강점을 찾아 그것을 충분히 발현할 때, 우리는 삶의 가치를 찾아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내가 이미 충분히 잘해오고 있었다는 자기 확신의 근거를 찾게 된다. 직장인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고, 삶의 중요한 전환 기에 나 다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내가 가진 핵심 강점을 먼저 키우고, 그다음에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채워야 한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거꾸로 하려고 든다는 점이다. 내가 가진 강점을 충분히 키우지 않은 상태에서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우려 들면 인생은 늘 허기 질 수밖에 없다. 물론 강점을 발현하며 산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삶을 살게 되지는 않지만, 강점대로 산다는 건 곧 자기 답게 살아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삶의 만족도가 눈에 띄게 좋아진다.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 된다면 자기 강점이 무엇 인지를 찾아보고 그것을 지도로 삼아 살아보는 거다. 친절함과 다정함이 많고 긍정적 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즐거운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예컨대 친절함이나 다정함은 부족한 대신 끈기와 탐구심이 강한 사람은 성실하게 공부하고 연구에 전념함으로써 얼마든지 커다란 행복함을 느끼며 좋은 삶(웰빙, Well-being)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떤 외부적 요인과 상관없이 나 스스로 나를 지키고 돌보지 못하면, 우리들의 삶은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들에 유독 두드러지는 성취 지향적인 특성은 '존재하는 삶'을 방해한다. 눈앞에 닥친 목적과 당장 쟁취해야 할 무엇에 급급하며 살아서는 결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없고, 잘 존재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없다.
무더운 8월이 가고, 9월이 시작되자 할 일들이 밀려온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의 <인문 일지>는 <<주역>>의 <수지비(수지비)> 괘를 읽고 정리를 했는데, 공유하지 않고 나의 블로그에만 올려 놓았다.
9월의 시/문병란
9월이 오면
해변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된다
나무들은 모두
무성한 여름을 벗고
제자리에 돌아와
호올로 선다
누군가 먼길 떠나는 준비를 하는
저녁, 가로수들은 일렬로 서서
기도를 마친 여인처럼
고개를 떨군다
울타리에 매달려
전별을 고하던 나팔꽃도
때묻은 손수건을 흔들고
플라타너스 넓은 잎들은
무성했던 여름 허영의 옷을 벗는다
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
먼 항구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되고
준비되지 않은 마음
눈물에 젖는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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