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 글이에요 .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8월 27일)
음양오행은 동아시아 사상에서 천지인(天地人)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이다. 사주 명리학은 이것을 운명에 적용해서 어떤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오행의 리듬을 보면 그 사람이 가진 오장육부의 배치와 정서적 흐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오행은 언제나 태과불급(太過不及)의 상태로 배치된다. 모든 사람은 다 어떤 식으로든 기울어져 있다. 그래 우리는 많은 것은 덜어 내고, 부족한 것은 채우면서, 균형추를 찾는 것이 사는 일이다.
'태과불급'이라는 말은 흔히 "태과불급 개위질(太過不及 皆爲疾)"로 쓰인다. 넘쳐도 부족해도 병이 된다는 뜻으로 과유불급(過猶不及)과 같은 말로 쓰인다. 그러나 이 말은 조화를 강조하며 지나침을 경계하는 학문이다. 그냥 태과불급을 말할 때 '태과'는 지나침을 말하고, '불급'은 모자람을 말한다. 무엇이든 적당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것이다. 그러니 지나치면 덜어내야 하고, 모자라면 보태 주어야 한다. 남는 것을 덜어내고, 모자란 것을 보충하여 주는 것을 사주 명리학에서는 '억부(抑抔)'라고 한다.
오늘 아침의 화두는 "균형 찾기"이다. 우리는 아픔과 기쁨으로 뜨개질한 의복을 걸치고 저마다의 인생을 걸어가고 있다. 빛과 그림자, 이 둘을 동시에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라고 생각한다. 빛은 어둠을 만들고, 어둠은 빛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용기와 지혜는 결합의 방법이다. 선량하나 나약하지 않고, 냉철하나 비정하지 않고, 치열하나 오만하지 않을 수 있는 결합의 지혜, 결합의 용기라고 생각한다. 매주 금요일마다 읽는 <<장자>>는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될 진정으로 '위대하고 으뜸 되는 스승'이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제6편 "대종사"를 읽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굳은 마음(成心)을 스승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말끔히 비우는 '마음 굶기기(心齋)'를 실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여기서는 진인(眞人)이 등장한다. 이 '참사람'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참된 스승이다. 이런 '진인'도 도를 대표하는 사람이므로 궁극적으로 도야말로 우리가 따라야 할 가장 '위대하고 으뜸 되는 스승' 혹은 스승 중의 스승이라는 것이다. <<도덕경>> 제25장에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습니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생각이다.
이어령 교수님도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자신의 삶을 그리는 바탕은 인법지(人法地)라 했다. 인간은 땅을 따라야 한다. 땅이 없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지법천(地法天)이다. 땅은 하늘을 따라야 한다. 땅에 하늘이 없으면 못산다. 그 다음은 천법도(天法道)이다. 하늘은 도를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법자연(道法自然)이다. 도는 자연을 따라야 한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따르는 것이 도이다. 사회 속에서 이렇게 살기 쉽지 않지만, 나 스스로의 생각과 원칙을 따라 사는 사람은 진정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다. 여기서 자연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자연 현상이라 기보다는 억지로 지어낸 행위가 아닌, "있는 그대로, 저절로 그러한 것", 즉 우위성(無爲性)을 자연이라 한 것이다. 자연은 늘 균형을 찾는다. 오늘 읽을 <<장자>>의 "대종사" 이야기는 일요일 아침에 한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비오는 날의 그리움>이다. 가을을 몰고 오는 장마로 하루 종일 비가 냈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은 그대가 그립다/허은주
허전한 마음 속으로
빗물이 걸어들어와
술잔처럼 채워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별빛과 만나는
사소한 일조차
아득하게 멀어지고
그리움의 색깔도
조금씩 바래지는 삶의 긴 행로
유리창을 적시는
빗소리에는 쉽게 젖어드는데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은
사랑의 흉터 하나 남는다 해도
오늘처럼
비오는 날은
마음 속의 그대가 그립다
우리가 ‘나만 옳다'는 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그렇다면 누가 옳은가? 아무도 옳지 않다. 그러면 누가 그른가? 아무도 그르지 않다. 각기 각자의 방식으로 옳은 것이다. 장자는 이것을 ‘각자의 옳음에서 비롯하여 각기(各其, 저마다의 사람)의 근거로 시비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하는 인식의 기초인 ‘우리의 앎'은 과연 신뢰할만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각과 지성은 부분성과 편파성으로 인해 사물의 전체를 한꺼번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볼 수 없고, 들리지 않는 것은 들을 수 없다. 그러나 볼 수 없거나 들을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거나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볼 때에 그 사람의 이마와 뒤통수를 동시에 볼 수 없고,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수 없다.
우리의 감성과 지성은 태생적으로 편파적이고 부분적이다. 한계가 있다. 서 있는 건물을 보면서 동시에 무너지는 건물을 볼 수 없다. 양면을 모두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서로 의지해 있고, 이웃해 있다. 밤과 낮은 연속되어 있으나 동시에 볼 수 없다. 이처럼 제한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시비가 발생하는데, 장자는 이를 원숭이들의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비유한다. 때문에 모든 시비와 갈등의 고조는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생각에서 발생한다. 그렇다고 장자는 시비를 중단하라거나 소멸시키라고 하지 않고, 화(和)하라고 한다. 단(斷)도 멸(滅)도 아니고, 시비의 긍정도 부정도 아닌 화를 주장한다. '화하라'는 것은 시비를 잠재워버리거나 잘라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기 앎'에 기초한 시비의 근거가 서로 허구적인 것임을 깨달어서 스스로 풀어지도록(해소되도록)하라는 것이다. 그 말을 줄여서 ‘화시비’(和是非')라 한다. 시비하지만 시비가 없는 것이고, 시비가 없으면서도 각자의 시비가 모두 인정되는 것, 즉 양행(兩行)이다.
이런 '화시비'를 위해서는 자아의 판단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조화에 맡겨 분별지를 쉬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자연의 균형에 맡기는 것, 즉 ‘휴천균(休天鈞)'이다. '천균'은 자연 상태에서 유지되는 균형감각을 지닌 조화로운 마음이다. '천균에 머문다'는 것은 옳다 그르다는 지식의 작용을 그치고, 저절로 그러한 자연의 경지에서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비는 사라지고 마음은 지극히 조화를 얻게 된다. 비슷한 말이 '양행'이다. 대립되는 두 가지 입장을 모두 바라보고 두 입장을 모두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말한다. 양쪽을 모두 수용하는 전체적 사고라 할 수 있다. 둘 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마음이다.
예를 들어,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이성이 서로 균형을 이룰 때 사람은 비로소 개인적으로 사람이 되고 사회적으로 인간이 된다. 사랑이 없는 이성은 비정한 것이 되고, 이성이 없는 사랑은 몽매와 탐닉이 된다. 이성이 먼저냐 가슴이 먼저냐? 그러나 이성은 땅 위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 그 흙 가슴을 떠날 수 없다. 마치 컴퓨터의 체(體, hard-ware)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그 용(用, soft-ware)이 실릴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떠나는 것은 ‘질 버리고 양’을 취하는 것이며 사용가치를 버리고 교환가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다. 천수보살은 천개의 손을 가진 보살이다. 우리는 많은 손을 갖기 위해 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기술을 익히기도 한다. 많은 손을 구입하기 위하여 돈을 모으기도 하고 많은 손을 부리기 위하여 높은 지위를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천수보살의 천 개의 손에는 천 개의 눈이 박혀 있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이라고 한다. 눈이 달린 손은 맹목(盲目)이 아니다. 생각이 있는 손이다. 그 손들이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다정한 ‘악수'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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