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8월 17일)
이번 주말에 읽는 일곱 번째 괘명은 <지수사(地水師>이다. 그런데 집안의 조카에게 상(喪)이 있어서 바쁘게 움직이느라 이제 공유한다. 먼저 하늘 나라에 간 오 가브리엘에게 이 꽃으로 애도를 표한다.
오늘 읽는 괘는 외괘가 '곤지(坤地, ☷) 땅괘, 내괘가 '감수(坎水, ☵) 물괘로 이루어진 괘의 명칭을 ‘사(師)’라고 한다. ‘사(師)’는 '무리', '군대'를 의미한다. 전쟁이나 분쟁의 소용돌이가 있게 되면 무리가 움직이고 군사를 일으키게 된다. 원래 ‘사(師)’는 주나라 때 군제(軍制)의 한 단위로 2,500명의 군사를 ‘사(師)’라 하였다. 제6괘인 <천수송(天水訟)> 괘는 분쟁의 전체적인 정세(政勢)라고 한다면, 제7괘인 <지수사(地水師> 괘는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수행하는 병법(兵法)에 해당한다.
이 사자가 <<주역>>에서는 '군대'라는 말로 쓰이는데, 공자는 '사'를 다르게 사용한다. 예컨대, 공자가 사랑했던 제자 안회의 삶을 묘사한 말, "학위인사(學爲人師) 행위세범(行爲世範)" 라는 말이 있다. '학문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어야 하고, 행실은 세상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란 뜻이다. 공자가 사랑했던 제자 안회의 삶을 묘사한 말이다. 북경사범대학의 교훈이기도 하다. 내가 나온 사범대학의 '사범(師範)'의 어원이다. 좀 더 현대 식으로 해석하면, '배워서 남의 선생이 되고, 배운 바를 실천하여 세상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교육자는 학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행실에 있어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이라 생각한다.
최근에는 '사(師)'가 들어 간 직업들이 있다. 이번 기회에 한글로 '사'자로 끝나는 다양한 직업들을 분류해 본다. '사'자 들어가는 직업들을 한자(漢字)로 썼을 경우에는 판사(判事), 검사(檢事), 변호사(辯護士), 의사(醫師), 박사(博士), 대사(大使)등으로 '사'라는 글자가 각양각색(各樣各色)이다. 다시 정리하여 보면,
- 일 사(事) : 판사(判事), 검사(檢事), 도지사(道知事) 등이 있다. 변호사만을 제외하고 죄를 다루는 공공 영역에는 두루 일 사(事)를 쓴다. 사(事)에는 '다스리다.' 라는 뜻 같다.
- 선비 사(士) : 변호사(辯護士), 박사(博士), 간호사(看護士) 등이 있다. 여기서 '사(士)는 '전문 직업인'을 존중하는 뜻으로 쓰인다. 학위, 면허 전문직, 보통 특정 분야 뒤에 붙는 상담사, 지도사에 사(士)가 붙는다.
- 보낼 (使) : 대사(大使), 칙사(勅使) 등이 있다. 사(使)에는 심부름꾼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 스승 사(師) : 의사(醫師), 약사(藥師), 교사(敎師), 법사(法師), 목사(牧師) 등이 있다.
'사(師)'에서는 '우리에게 어떤 고귀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종교적인 단어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리고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의사(醫師)와 약사(藥師)도 '스승 사'의 계열에 속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그냥 생각한다면 전문 직업 인이니까 '선비 사(士)'의 계열에 들어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사와 약사에 선비 사(士)를 쓰지 않고 스승 사(師)를 쓴다. 의사와 목사에게 스승 사자를 붙이는 이유는 생명을 다루고 공동체를 이끌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근래에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사(師)'로 끝나는 직업의 일탈이 아쉽다.
다시 <<주역>>으로 돌아 온다. <<서괘전>>은 <천수송> 괘 다음에 <지수사> 괘가 온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訟必有衆起(송필유증기)라 故(고)로 受之以師(수지이사)"라 했다. '송사는 반드시 무리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사(師)로써 받는다'는 거다. 분쟁이나 전쟁이 있게 되면 반드시 무리로 일어나 대항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천수송>괘 다음에 <지수사>괘를 둔 것이다.
<<잡괘전>>에서는 "비락사우(比樂師憂)"라 했다. 다음 괘인 <수지비> 괘는 즐겁고, 이번 괘인 <지수사> 괘는 근심스럽다'는 거다. <지수사> 괘는 땅속에 뭉이 있는 상으로, 땅위의 물은 말라 버렸으니 근심이 있게 된다. 또한 땅 속에 어두운 기운이 가득한 형국이다. 물은 그 자체로 무리(衆)을 뜻한다. 거대한 쓰나미를 생각하면 된다. 그런 무리가 밝은 곳을 피해 땅 속에 모여 있다면, 한바탕 큰 싸움이 임박한 느낌이다. 그래서 <지수사> 괘는 전쟁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지수사> 괘의 괘사는 "師(사)는 貞(정)이니 丈人(장인)이라아 吉(길)코 无咎(무구)하리라"이다. 이 말은 '사(師)는 바름이니, 장인(丈人)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을 것이다'로 번역된다. Tmi: 師:군사 사(무리, 스승), 丈:어른 장. ‘사(師)’는 전쟁에 임하는 것이니 군율(軍律)로써 바르게 해야 하며, 전쟁을 수행하는 자는 ‘장인(丈人)’ 즉 건장한 성인이어야 길하고 허물이 없게 된다.
이 괘를 잘 보면, '구이'만이 홀로 양효이고, 나머지는 모두 음효이다. 그래서 '궁;'가 <지수사> 괘의 주요이다. '육오'와 정응하고 있으니, 유순한 '육오' 리더로부터 권한을 이양 받아 전쟁에서 실질적인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여성 편력의 상이 보이기도 하다. 또한 <곤괘> 모친은 괘의 집 밖(외괘)에 있고, <감괘> 차남은 집 안(내괘)에 있는 상이니 걱정스러운 모습이다. 여기서 "장인"은 '구이'를 의미한다. 옛 국가의 직위 체계로 보면, '구이'는 하급 관리, 선비(士)의 자리이다. 지위나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히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암시한다. 그래서 이 괘의 메시지는 '능력 있는 인재와 함께 라면 전쟁과 같은 위기도 능히 넘을 수 있다'는 거다.
적재적소에 최고의 인재들을 등용하고 그 인재들이 자기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출 때 조직은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조직에게도 개인에게도 세상은 하나의 전쟁터이다. 혼자 전쟁을 치를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 리더된 사람일수록 겸손하고 지혜로워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彖曰(단왈) 師(사)는 衆也(중야)오 貞(정)은 正也(정야)니, 能以衆正(능이중정)하면 可以王矣(가이왕의)리라. 剛中而應(강중이응)하고 行險而順(행험이순)하니, 以此毒天下而民(이차독천하이민)이 從之(종지)하니 吉(길)코 又何咎矣(우하구의)리오." '단전에 말하였다. 사(師)는 무리요, 정(貞)은 바름이니, 능히 무리를 바르게 하면 가히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것이 가운데 해서 응하고, 험함을 행하여도 순하게 하니, 이로써 천하를 괴롭혀도 백성이 따르니 길하고 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로 번역된다. TMI: 衆:무리 중, 能:능할 능, 矣:어조사 의, 毒:괴롭힐 독, 又:또 우, 咎:허물 구. 전쟁은 많은 군사가 동원되는 것이고 군율로 바르게 해야 한다. 이렇게 무리를 바르게 하면 전쟁에 이겨, 가히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수사(師)> 괘는는 '일양오음(一陽五陰)' 괘인데 ‘구이’효만 강한 양효로 내괘의 중에 있어 나머지 다섯 음효의 무리를 통솔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자리가 된다. 이렇게 강한 ‘구이’가 내괘에서 가운데하고 응하는 관계인 유약한 인군 ‘육오’의 명에 따르고, 험한 전쟁을 수행하여도 순리대로 하기에, 천하를 괴롭히는 전쟁이라는 가장 험한 일을 수행하여도 백성이 이에 따르니, 길하고 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험행이순(行險而順)"에서 "험'은 내괘가 <감수, ☵> 괘이고, "행"은 내호괘가 <진뇌, ☳> 괘에서 나온다. 그리고 외호괘도 <곤지, ☷> 괘, 외괘도 <곤지, ☷>이니 전쟁을 함에 있어서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곤지> 괘는 백성을 뜻하니 백성을 받드는 상이다. 불가피한 전시 상황에서 대의명분을 갖추고 군대를 운용하는데 군사들을 존중하고 대접한다면 아무리 혹독한 전쟁이라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지수 사> 괘의가 '전쟁 등 큰 일을 수행하기에 앞서 백성을 용납하고 각자의 역할에 맡는 기량을 습득하도록 훈련하라(容民畜衆, 용민축중)'는 거다. <<대상전>>이 그렇게 말한다. "象曰(상왈) 地中有水(지중유수) 師(사)니 君子(군자) 以(이)하야 容民畜衆(용민축중)하나니라." '상전에 말하였다. 땅 가운데 물이 있는 것이 사(師)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백성을 용납하고 무리를 기른다'로 번역할 수 있다. TMI: 容:받아들일 용, 畜:기를 휵(쌓을 축), 衆:무리 중. 외괘가 <곤지(坤地) ☷> 땅이고 내괘가 <감수(坎水) ☵> 물이니, 땅 가운데 물이 있는 상이다. 땅 가운데 있는 물을 중심으로 모든 생물이 모여들듯이, 군자는 이러한 상을 보고 본받아 백성을 받아들이고 무리를 기른다.
도올 김용옥 교수의 강의에 의하면, 옛날에는 "병(兵)"이 전문적인 군사직업집단이 아니었다고 한다. "농(農) 속에 '병(兵)'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병농일치(兵農一致)의 사회였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의 시민이라는 것도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폴리테스는 18세 이상의 남자이고, 이 폴리테스의 모임이 바로 '폴리스'였다. "지중유수(地中有水)"라 말할 때의 "지(地)"는 '농(農)'을 의미한다. "수(水)"는 '병(兵)' 의미하는데, '농' 속에 '병'이 숨어 있다는 '농병일치'의 현실을 나타낸다. 그러기 때문에 한 국가의 지도자는 백성을 포용하여 사랑하고 보호하고 하여 그 속에 있는 군사력을 축적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용민축중"이라는 성어에서 '민중'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오늘은 여기서 멈추고, 내일 6개의 각 효사와 <소상전을 살펴본다. 이 <지수 사> 괘를 '저항 정신'으로 읽는 이도 있다.(김재형) 여기 "사(師)" 괘는 군사 전략가, 저항 지도자, 저항, 군대, 전쟁 등 다양한 의미로 적용할 수 있다. <사괘>의 저항 지도자는 단순한 군대 지휘자가 아니다. 동학혁명의 전봉준, 쿠바 혁명의 테 게바라,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저항군의 마르코스 부사령관, 중국 태평천국운동의 홍슈치안처럼 부패한 국가 권력에 저항해서 군사적 전쟁을 일으키는 지도자, 특히 그 중에서도 인문적 자기 성찰이 깊은 지도자이다. 이 괘의 괘사가 "師(사)는 貞(정)이니 丈人(장인)이라아 吉(길)코 无咎(무구)하리라"이다.
저항은 외부의 독재에 대한 항거이다. 저항은 동시에 자신이 아닌 남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안주하고 자신의 독창적인 삶을 창조하려는 자유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그래 인문 정신의 핵심은 나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권위에 대한 저항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순원의 시 <팔월의 노래>를 공유한다.
황순원은 <<소나기>>를 쓴 소설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소설보다 시를 먼저 썼다. 평생 시와 동시 160여편을 발표했으며, 말년에는 시만 썼다. 오늘 공유하는 이 시가 쓰인 1932년엔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켰으며,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다. 일제(태양)의 기세가 사나웠지만, 독립을 위한 “겨레의 아우성”은 “농촌에서, 도회에서, 어촌에서” 울려 퍼졌다. “음조를 바꾼 팔월의 장엄한 노래로 너를 놀래 줄 것”이라는 예언은 적중했다. 일제를 겨냥한 18세 젊은 시인의 울분과 저항, 패기가 놀라울 뿐이다.
팔월의 노래/황순원(1915~2000)
푹푹 대지를 녹일 듯한 팔월의 태양
나뭇잎 하나 까딱이지 않는 음울한 분위기
농촌에서, 도회에서, 어촌에서
꽉꽉 메어 나오는 이 겨레의 아우성
진두까지 짓밟힌 비명은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일까.
정말이다
이글이글 끓는 도가니의 쇳물처럼
장부의 염통에 서린 핏줄기의 나머지로
힘있게 올렸든 손가락은 권반을 눌렀으나,
산마루에 올라 고함을 쳤으나
피 묻은 청춘의 노래가 만가보다도
더 애끓게 뒤따르는고나.
팔월의 태양아
우리를 녹일 테면 녹여보아라
우리들 참일꾼은
음조를 바꾼 팔월의 장엄한 노래로
너를 놀래 줄 것이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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