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이번 휴가에는 바다와 하늘의 구름을 실컷 보았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맨 바다 뿐인 망망대해(茫茫大海)에 떠 있는 배의 갑판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갑판위의 바람을 마주 보고 맞으면 역풍이지만, 뒤로 돌아서서 맞으면 순풍이 되었다. 그러니 사실 생각을 바꾸면 세상도 바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이 바뀌고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원한다. 그것도 내가 원하는 만큼 바뀌기를 바란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길 원하고, 남보다 돈도 많고 명예도 지위도 높아지기를 원한다. 함께 여행했던, 친구들 모두 나 아닌, 외부의 것들이 바뀌었으면 했다. 내가 나를 바꾸겠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바다, 원 없이 보았다. 거의 하루 종일 바다를 보았다. 바다는 새벽에 "뜨거운 해"를 낳았을 텐데, 흐린 날씨 탓에 난 그 해를 보지 못했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바다는 "썩지 않기 위해/제 몸에 소금을 뿌리고", "잠들어 죽지 않기 위해/제 머리를 바위에 부딪히고", "뜨거운 해"를 낳았을 것이다. 우리가 낳아야 뜨거운 세계도 우리의 각성과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지리라. 그리고 느끼고, 이해하고, 아는 데 그치지 말고 아주 작은 것, 가까운 것부터 하나씩 실천할 줄 아는 사람만이 "뜨거운 해"를 낳으리라. 세상 속에서 "썩지 않기 위해", "잠들지 않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일상을 지배하며,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배에 갇힌 나는 괴로웠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아무리 바다를 이야기해도 소용 없다. 한 계절 사는 여름 벌레한테 '얼음'을 말해도 부질 없는 짓이다. 자신의 좁은 진리에 갇혀 소용없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진화(進化)가 아닌 문화(文化)를 선택했다. 문화적 삶을 살아야 한다. 문화는 문자 그대로 하면 자신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 삶이 그리는 무늬가 새로워지는 것이다. 문화는 인식 범위 밖으로 나가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무모한 상상력이 그 핵심이다. 쓸모 없어 보이는 상상력이 문화의 출발이다. 익숙함에 빠지면, 그 제한성을 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밖을 꿈꾸는 '질문'을 하지 않고. 과거지향적인 '대답' 기능에 머물면서 ,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이 아니라, 남의 일처럼 욕하고 비난만 한다.
그동안 혼자 있을 시간이 없었던 터라, 어제는 거의 대부분을 고독하게 시간들을 보냈다. 이것 저것 밀린 일들을 하고, 원하는 곳에 메일들을 보내고, 다음 주부터 있을 <아시아 와인 트로피>와 특강들을 준비했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이 문장을 기억하고, 힘을 얻었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삶이다. 삶에 답이 있고, 올바르게 가야할 길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무기력 해진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열려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우리는 잘 모른다. 내일은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확한 답이 없고, 길을 찾아야 하기에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답이 없기에 다양성이 있고, 길이 없기에 새로운 길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소설 속에서 말하던 것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自問)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존재는 마주하는 지금 이 시간 속에 있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가고 있는 '길'에 확신을 가지고 싶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오늘도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바다 3/이도윤
썩지 않기 위해
제 몸에 소금을 뿌리고
움직이는 바다를 보아라
잠들어 죽지 않기 위해
제 머리를 바위에 부딪히고
출렁이는 바다를 보아라
그런 자만이 마침내
뜨거운 해를 낳는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이도윤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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