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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신을 믿고, 또한 자신의 몸을 믿어야 한다.

사진 제공: 한겨레 신문

279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7월 30일)

지난 7월 26일에 공유했던, <<장자>> 외편 <달생>에 나오는 '목공'이야기를 다시 읽어 본다. 좀 길고 지루하지만, 책을 읽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 이야기를 읽고 혼자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음을 공부하는 기회이다. 그럼 장자 이야기를 좀 나누어 다시 공유한다.

"[1단계] 목수 경(慶)은 나무를 깎아 종 틀(鐘閣)을 만들었는데 종 틀이 완성되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귀신을 보듯 놀라워 하였다. 노나라 임금이 그 비법을 물었다. '저는 목수에 지나지 않는데 대단한 비법이란 것이 있겠습니까? 
[2단계]그렇지만 한 가지 말할 것이 있다면, 제가 종 틀을 만들 때는 결코 기를 함부로 소모하지 않고 반드시 재계(齋戒)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다. 처음 왕께서 맡기신 일을 생각하면서 저는 제 영혼을 삼가 적절치 않은 하찮은 일들에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쉬게 하기 위해 목욕 재계하고 단식을 했습니다.]
- 재계한지 3일이 지나면 벼슬이나 녹봉(성공과 이득) 따위를 감히 마음에 품지 않았습니다.  [4일 굶은 후에 이득과 성공을 잊었습니다.
- 재계한지 5일이 지나면 비난이나 칭찬, 기술의 뛰어남이나 서툶 같은 것을 마음에 품지 않았습니다. [오 일 후에 칭찬과 비난을 잊었습니다.]
- 재계한지 7일이 지나면 제가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홀연히 잊어버렸습니다.  [7 일 후에 사지 달린 제 몸을 잊었습니다.]
[3단계] 이때가 되면 마음에는 이미 조정의 일은 아랑곳없고 오로지 자신의 기예에만 전념하며 외부로부터 방해가 사라집니다. 그런 다음에 숲으로 들어가 타고난 재질과 생김새가 빼어난 나무를 찾았습니다. 그런 다음 완성 될 종 틀을 머리에 그려보고 그러고 나서 비로소 일을 시작합니다. [그때쯤 왕과 궁중에 대한 모든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그 일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로지 종 틀에만 생각을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숲으로 가서 자연 그대로의 나무를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그 나무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분명 의심의 여지없이 그 안에 종 틀도 나타났습니다. 제가 해야 할 거라고는 단지 손을 내뻗어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4단계] 그렇지 않으면[그 나무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만둡니다. 이렇게 하면 저의 천성과 나무의 천성이 하나가 되는데, 작품이 귀신의 솜씨로 의심되는 것은 이 때문인가 봅니다. [제가 그 나무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 종 틀 또한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 저의 생각이 집중되어서 숲에 감춰진 가능성을 만났습니다. 이 생생한 만남에서 사람들이 귀신의 조화로 여기는 작품이 나온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한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1. 왕과 왕의 명령,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물건, 자신에게 주어진 도구와 재료, 다른 사람들의 평가 등의 압력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외부적인 것에서 내면의 진리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는 거다.
2. 왕의 명령을 받고 서는 그 명령을 자신의 선택으로 변모 시켰다. 그런 명령을 선택으로 맞아들일 때. 우리들의 삶이 확장된다는 거다.

이게 문학이나 예술의 힘이다. 삶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파머 J. 파커는 이 이야기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한다.
▪ 1단계: "목수 경(慶)은 나무를 깎아 종 틀(鐘閣)을 만들었는데 종 틀이 완성되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귀신을 보듯 놀라워 하였다. 노나라 임금이 그 비법을 물었다. '저는 목수에 지나지 않는데 대단한 비법이란 것이 있겠습니까?" 이 문장을 읽고,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무엇을 말하려 한다고 생각하자고 문자,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답이 나왔다.
- 뛰어난 작품을 만든 목공의 능력에 왕과 사람들이 경탄하고 있는 것이다.
- 그들이 목수 경의 비밀을 알아내어 그의 작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마트에 특제품으로 팔려 한다.
- 왕이 목수의 능력에 위협을 느껴 그의 비결을 알아내어 그를 다시 지배하려 한다.
- 왕과 사람들 모두 목공을 마치 초인처럼 여김으로써 자신들이 발휘해야 할 재능에 대한 도전들을 피하려 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각자 내면에 다른 문제를 지니고 있는 까닭에 이 처음 몇 줄을 달리 해석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 이야기에 자신의 욕구를 투사하듯 이야기 속 사람들도 그 목공에게 자신의 욕구를 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물론 당연히 내게는 비결이 잇지. 의사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어. 그러니까 내 비결을 알려줄 수 없지. 내 성공 비결을 약간 말해줄 수 있는 있어.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도록 아주 모호하게 이야기해주겠어!" 우리는 이러한 투사를 "직업적인 유희"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목수 경은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투사를 거부한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정의하도록 내버려두는 순간, 참자아와 세상을 잇는 연결고리를 잃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우리를 규정하도록 허락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진실에 이르지 못할 뿐더러 다른 이들과 더불어 생명을 주는 방식으로 상호 창조할 수 있는 능력마저 잃을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투사의 망에 사로잡히기 위해 어떤 일의 명장이 될 필요가 없다. 그저 다른 이들과 함께 삵 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목수 경은 그를 정의하려는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는 단순 명료하게, '저는 목수에 지나지 않는데 대단한 비법이란 것이 있겠습니까'라며, '비결은 없다' 대답하며 자기 자신을 정의할 권리를 주장한다. 우리가 이렇게 투사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의 진실을 정의할 권리를 찾는 첫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면, 우리는 끝없는 착각에 사로잡혀 길을 잃고 진정한 삶으로 가는 길의 첫머리조차 찾을 수 없게 된다. 이 길이 분리되지 않는 삶으로 여행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 제2단계: "비결은 없습니다. 한 가지 말할 것이 있다면, 제가 종 틀을 만들 때는 결코 기를 함부로 소모하지 않고 반드시 재계(齋戒)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재계한지 3일이 지나면 벼슬이나 녹봉(성공과 이득) 따위를 감히 마음에 품지 않았습니다. 재계한지 5일이 지나면 비난이나 칭찬, 기술의 뛰어남이나 서툶 같은 것을 마음에 품지 않았습니다. 재계한지 7일이 지나면 제가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홀연히 잊어버렸습니다."

목수 경은 왕의 명령에 초점을 맞추는 데서부터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가까이에 있는 일, 즉 참자아를 되찾는 내면의 작업에서 부터 일을 시작한다. 이 이야기에서, 목수 경은 나무를 깎을 때 어떤 끌을 썼고, 그 끌을 어떤 각도로 잡았고, , 어느 정도로 압력을 가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기술적인 측면보다 진실과 아름다움을 세상에 실현하는 데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손을 쓰기에 앞서 진심을 닦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도 세상을 향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내면의 일이다. 다시 한 번 더 장자의 이야기를 읽는다.

- 여기서 "기를 함부로 소비하지 않았다"는 것은 '삼가고', "제계(齋戒)한다"는 것은 '단식하고, 잊는 것'을 말한다. 파머 J. 파커는 "기" 대신 "혼"으로 읽었다. 그러니까 "제 혼을 삼가 적절치 않은 하찮은 일들에 허비하지 않았다"로 바꾸면, 우리가 재계(齋戒)한다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은 하찮은 일들에 혼을 허비하지 않고 자발적인 결정 대신 바깥 힘들에 무의시적으로 반응하려는 자신의 경향을 삼가는 것이 재계(齋戒)의 의미이다. '재계'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종교적 의식 등을 치르기 위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함'이다.

- 목수 경이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재계하면서 단식을 했다"는 말은, 왕의 명령에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보통 우리는 어떤 일을 새롭게 할 때 두려워 한다. 하물며 장인도 두려워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위안을 얻게 된다.  우리는 쉽게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목수 경처럼, 우리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 피하지 않고,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안에서 목수 경은 "이득과 성공", "칭찬과 비난"에 이끌리기 쉬운 자신의 약점을 알아차렸다.

세상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방향을 바꾸게 하고, 규칙을 지키게 하기 위해 처벌과 보상을 이용한다. 그러나 그러한 제제들을 내면 화하지 못하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우리가 세상의 논리에 동의할 때 그것들이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목수 경은 "단식하고", "잊음"으로서 자신의 도의를 거두어들인다. 물론 이득과 성공, 칭찬과 비난을 잊는다는 것이 말럼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 그리고 목수 경은 "사지 달린 제 몸"을 잊었다고 했다. 이 말은 육체를 경시했다는 말이라 보다는 훌륭한 목공, 운동 선수, 연주가들처럼 높은 수준의 육체적 숙련도가 필요한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자신의 몸을 믿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잊음"과 동등한 것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몸을 "잊을" 때, 우리는 '몸은 그 자체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오래된 속담의 진정한 의미를 배운다. 어제 밤, 2024 파리 올림픽의 양궁 선수들에게서 그것을 보았다. 파머 J. 파커에 의하면, 전문가나 정인 아닐지라도, 우리는 몸의 지식을 자기 내면의 안내자로 믿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목수 경처럼 외부의 명령에 덜 반응하고, 내면의 교사에게 더 잘 반응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영혼에 좀 더 일치하는 사람을 살기 시작한다.

오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 나는 내 영혼을 어떻게 삼가고 있는가? 즉 내 영혼을 삼가면서 참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남들의 칭찬과 비난에 좌우되는 거짓 삶을 살고 있는가?
- 어떤 두려움이 나를 마비시키는가? 목수 경이 이득과 성공, 칭찬과 비난, 몸에 대한 걱정이라고 정의했듯, 나 자신이 자유로워 질 수 있을 만큼 나의 두려움을 투명하게 정의할 수 있는가?
- 목수 경이 말한 "단식"과 "잊음" 처럼, 내가 참자아를 되찾고, 두려움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가?

오늘 이야기를 요약하면,  자신을 믿고, 또한 자신의 몸을 믿어야 한다. 그 전에, 오늘의 화두처럼, 빠른 시간 다음 세 가지를 잊어야 한다. 1) 성공과 이득 따위를 감히 마음에 품지 않는다. 2) 비난이나 칭찬, 기술의 뛰어남이나 서툶 같은 것을 마음에 품지 않는다. 3)자신이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자신의 몸을 믿고, 몸을 잊어버린다는 거다. 

여기서 장자가 말한 "망아(忘我)"가 소환되지만, 오늘 인문 일기를 멈춘다. 내일 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이야기의 3단계와 4단계도 내일로 미룬다. 오늘 공유하는 사진처럼,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양궁 선수들이 몸을 잊고 경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즈음 "자연으로 있으면서", "나의 일과를 잊고" 지낸다. 오늘 시처럼 말이다.


요즘 나의 일과는/조병화

요즘 나의 일과는 잊는 일이다
나무가 하늘에 있듯이
자연으로 있는 일이다

잊는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나
매일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공기가 되는 거다
텅 빈 하늘이 되는 거다

바람도 구름도 자유로이 지나가는
하늘이 되는 거다

우주 만물이 자유로이 날 수 있는
텅텅 빈 하늘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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