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지금 우리들의 삶은 팍팍하고, 고단하다.* 대, 내외적으로. 그러나 나는 인문운동가로서 '근거 없이' 낙관(樂觀, optimism)한다. 일이 잘 되어 갈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이다. 내가 그런 낙관주의자가 된 것은 '모소대나무'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통찰을 얻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발걸음이 더딘 것은 사회 체질을 바꾸고 뿌리를 깊이 내리는 중이고, 위기이지만 오히려 이것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소대나무라는 것이 있는 데, 4-5년 동안은 뿌리를 내라는 데 몰입하므로 이 기간에는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뿌리가 넓고 깊게 퍼져 나가고 있는데도. 뿌리가 다 자라면 하루 아침에 갑자기 자라기 시작한다. 모소대나무는 뿌리가 사방으로 퍼져 있어 웬만한 가뭄이나 비바람에는 전혀 문제 없다. 모소대나무는 우리에게 말한다. 더디게 자란다고 낙담하지 말라.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니.
토마스 쿤은 자신의 책에서 과학은 조금씩 변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계단 1에서는 과거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한 기반을 둔 연구 활동을 의미하는 '정상과학'이 존재한다. 이러한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에서 사람들은 사고하며 연구한다. 그러나 다양한 변칙, 예외, 설명할 수 없는 경우들이 늘어나면서 과학혁명이 일어난다. 이 때 기존과 다른 패러다임이 나온다. 이를 거쳐 질적으로 다른 계단 2에 새로운 정상과학이 출현한다. 단계 2는 중요한 과학적 발전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발전의 주체는 과학자나 전문가 등 특정 인물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기존의 무수한 사람들의 노력과 좌절이 있었기에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정한 양의 변화는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정치도 그렇다. 자신들의 결핍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도처에서 토론하며 조직된 시민 수백명이 요구하면, 양은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어제는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난 그 자리에서 이런 건배사를 했다. "이상은 높게, 사랑은 깊게, 잔은 평등하게." 최근 고민하고 있는 '필링 인문학'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내포한다. 근거가 있을 때만 낙관할 수 있다는 실증주의와 과학주의가 갖는 태도와는 다르다. 실증주의적 태도는 현실의 구조나 권력관계를 바꿀 수 없다는 숙명론이다. 그러나 '필링 인문학'은 지친 나에게 일시적인 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치게 만든 본질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 나는 최근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마을 실험을 시작했다. 오늘 오후 나는 <대전사회적자본센터>와 협약식을 하러 동네 마을 활동가들과 함께 간다. 마을 문제를, 주민이 연구원이 되어 실험하고 해결한다는 리빙랩 사업으로 "소통과 화합하는 신성동 마을 공간 실험 프로젝트"가 대전시 공모사업에 채택된 것이다.
인문운동가는 '생각 당하는 나'에서 '생각하는 나'로, '순응하는 나'에서 '비판하는 나', '정책의 대상인 나'에서 '정책의 주체인 나'로, 내 자신과 공동체의 주체가 되려는 실천을 행동하는 자이다. 이때 '필링 인문학'은 나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실천이 된다. 이 실천은 개인의 이해와 힐링을 넘어 공동체의 갈등과 구조를 필링(peeling, 껍질을 벗김)하는 것이다. 이때 인문운동가는 모든 현실에 대해 등에(쇠파리)가 되어 새로운 상상의 산파(産婆)가 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천천히 천천히" "굼벵이처럼", 쉬지않고.
천천히 천천히/신현정
땅이 오래 참고
아픈 배 갈라 지상에 내놓은 굼벵이건만
굼벵이 그래야만 하는 듯
나무 둥치를 천천히 기어 오른다
나무에 물오르듯이
천천히, 천천히,
나무 자라는 것마저 훤히 보일 정도로
천천히, 천천히, 너무 천천히.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신현정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경제 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미·중 경제전쟁의 충격 속에 일본이 경제전쟁의 선전 포고를 했다. 단기적으로는 경제지표가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사법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고 설사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관심사는 아니다. 적폐청산도 이제는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부채가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럴수록 총선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의제인) 한반도 평화 성과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계속 악화된다면 북핵 이슈의 성과만으로는 (정권에 대한 심판 흐름이 강한) 총선에서 기대한 결과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 내년 총선은 ‘평화가 경제’라는 민주·진보 진영과 ‘경제가 평화’라는 보수 진영의 한판 싸움이 될 것이다. 옳든 그르든 ‘평화가 경제’라는 진보 진영의 비전·전략·리더십은 선명하게 보이는데, 보수 진영은 ‘경제가 평화’라는 깃발만 나부낄 뿐 비전·전략·리더십은 온데간데없다."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 컨설턴트라고 하는 박성민의 글이다. 내가 보는 최근의 우리 상황도 이와 같다고 본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갈치는 마치 칼 한 자루를 보는 것 같다. (0) | 2024.07.30 |
|---|---|
| 득도다조 (得道多助):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도와주는(助) 사람이 많은(多) 사람이다. (0) | 2024.07.30 |
| "인간은 '만남'을 통해 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초월적 존재가 된다." (0) | 2024.07.30 |
| "위대한 개인"되기 프로젝트 (6) (0) | 2024.07.30 |
| 산수 몽괘 (3) (1) | 2024.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