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28일)
어제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제 우리는 '의존성 사랑'이란 참사랑이라는 말을 잘못 갖다 붙인 여러 행동 유형 중 하나이다. 이제 그러한 다른 유형을 살펴본다. 우리는 자주 생명 없는 대상이나 어떤 일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부와 영향력이 확장된다고 해서 이러한 작업과 축적이 자신을 확대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자수성가한 어떤 거물을 두고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사람이 작아요. 야비하고 속 좁은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에게 부와 권세는 영적 성장을 위한 수단보다는 오히려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의 유일한 참된 목적은 영적 성장이나 인간의 발전인 것이다.
물론 우리는 영적인 아닌 것도 모두 제공해야 한다. 예컨대, 영혼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육체 역시 영양 섭취를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먹을 것과 살 곳이 필요하다. 아무리 영적 발전에 헌신적일지라도 휴식과 운동과 기분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취미는 자기를 풍요롭게 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지만, 취미가 목적 그 자체가 될 때에는 자기 발전의 수단을 대신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나 애착을 느끼는 것과의 관계를 규정할 때 그 관계의 질적 차이는 무시하고 모두 사랑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한다면, 현명함과 우둔함, 선과 악, 귀한 것과 천한 것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만을 사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물과 비교해서 생각할 때 실질적인 성숙이 가능한 존재는 인간 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다. 애완동물을 '사랑한다'고 할 때, 애완동물과 인간과의 관계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1. 우리가 다른 인간들과 의사 소통하는 정도를 비교해볼 때 애완동물과의 의사소통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애완동물이 무엇을 생각하는 알 길이 없다. 이러한 이해의 결핍 때문에 애완동물에게 우리 생각과 느낌을 투입 시켜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감정적 친근함을 느낀다.
2.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될 때에 애완동물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우리가 애완동물의 마음이나 정신 발달을 위해 보내는 유일한 학교는 복종을 가르치는 학교이다. 하지만 사람에 대하서는 상대가 '자신의 의지'를 발전시킬 것을 바라게 될 가능성도 있다. 사실, 다른 사람이 자기와 다르기를 바라는 것은 진실한 사랑의 특성 중 하나이다. 복종만을 원하지 않는다.
3. 우리는 애완동물 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의존성을 기르고자 한다. 그들이 자라 집을 떠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애완동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로 부터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우리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만을 '사랑'할 줄 알 뿐, 다른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 중 가장 슬픔 것은 많은 여자들이 아이를 단지 아기일 때만 '사랑'할 수 있다는 거다. 아이가 자기 뜻을 확실히 나타내기 시작하자마자 어머니 로서의 사랑이 중단된다. 그 무렵 어머니는 다시 임신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낀다. 또 다른 아기, 즉 다른 애완동물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아들에게 있어서, '미운 두 살'은 인생에서 갓난아기 로서의 마지막이며, 어머니로부터 사랑받는 마지막 시기이다. 이런 아이들은 자라서 성년기에 들어갈 때 우울한 성향 혹은 의존적 성격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그 둘 다를 지닌 의존적 성격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갓난아기와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것이나 의존적인고 복종적인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 모두가 본능적인 행동 패턴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절대로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앞에서 살펴 본 '사랑에 빠진다'는 본능적 행동과 비슷하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상대적으로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고, 전적으로 의지나 선택에 따른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육이란 단순히 먹여주는 것 이상 이라야 한다. 영적인 성장을 북돋워 주기는 어떠한 본능적 행동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이다. 예컨대 직접 운전해서 아이를 데려가고 데려 옴으로써 아이를 열심히 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아들에게 필요한 양육방식이 아니며 분명 영적 성장을 촉진하기보다는 퇴보 시키는 방식이다. 사랑은 단순히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분별 있게' 주고, 마찬가지로 분별 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분별 있다는 것은 반드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며, 판단은 본능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그것은 심사숙고해야 하며 고통스러운 결정을 필요로 한다.
산다는 것은 선택과 판단의 연속이기도 하다. 머릿속에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다고 해도 선택이나 판단을 잘못하면 애써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가짜가 판을 치고 첨가물 범벅이 된 먹거리조차 가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건강을 지킬 수 있겠는가? 식민지시대 황국 신민을 길러내던 우민화교육 영향일까? 아니면 교육을 정치에 예속시킨 독재권력 때문일까? 자본이 필요한 인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한 자본이 길러내고 싶은 교육 때문일까? 질문해 본다.
중국 당나라 시절에는 관리를 등용할 때 ‘신(身)언(言)서(書)판(判)'을 두루 갖춘 사람을 선발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올바른 몸가짐(身)’과 화려한 언변보다는 ‘경솔하지 않고 진중한 언행(言)’, 글씨는 아름다움을 다해야(書)하고,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判) 사람을 선발했다. 그런데 날씨도 덥고, 세상 꼴이 우습게 돌아간다. 선출직과 그들이 임명한 장관들의 하는 짓들이 우습다.
이렇게 된 이유는 국민들이 접하는 정보의 플랫폼이 너무 낮은 이유도 있다. 그리고 접하는 정보의 질이 포탈 사이트의 선정적인 제목에 그친다는 점이다. 인문 운동가로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 몇 가지를 공유한다.
1. 권력이란 본래 최고 핵심보다 약간 떨어진 지점에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법이다. 그걸 책임지는 측근들이 충성심만 있고 정치적 판단과 소통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인 경우에 문제는 훨씬 심각 해진다.
2. 정치가 검찰 수사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수사는 결과로써 보여주면 되지만 정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3. '정상배(政商輩)'가 많다. 이 말은 '정권을 이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무리'라는 거다.
4. 모든 민주적 권력은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필터링이 장착되어 있어야 한다. 이 필터링이 없다. 소심했던 개혁 정부에 뒤 이은 반동 정부의 행패가 남발할 뿐이다.
권력은 덧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래 '정상배'들에게 솔로몬의 반지를 건네 주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기억시키고 싶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라틴어로 하면, "hoc quoque transibit(호크 쿼케 트란시비트)"이다. 이를 영어로 하면 다음과 같다. This too shall pass away. 히브리어로는 '감 쩨 야아보르'라 한다.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린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은 오만해 빠진 자신의 신하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 "왕인 내가 가지고 있는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마술 반지이다. 그 반지는 슬픈 사람을 기쁘게 하고, 기쁜 사람을 슬프게 하는 반지이다. 6개월의 시간을 줄 테니 구해 오너라." 6개월이 거의 다 되어도 그 반지를 찾지 못한 신하는 막판에 한 노인으로부터 반지를 하나를 얻는다. 그 반지에는 히브리어로 '감 쩨 야아보르'의 첫 세 글자(히브리어 알파벳 g(gan), z(zhe), y(tod))가 새겨져 있었다. 이 말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 반지를 받아 들고, 솔로몬 왕은 자신이 가진 모든 권력, 재산 그리고 지혜까지도 덧없는 인생의 한 부분이며, 언젠가는 흙으로 사라지리라는 사실을 깨달었다.
다른 버전이 있다. 본래 이 말은 유대인의 경전 주석서 <<미드라쉬(Midrash)>>의 ‘다윗 왕의 반지’ 에서 나온 이야기라 한다.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의 세공인을 불러 명령하였다.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그 반지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결코 교만하지 않게 하고, 또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 이에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정작 거기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 끝에 당대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다. 이 때 솔로몬왕자가 세공인에게 일러 준 글귀가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였다.
반지 속의 이 말은 슬픈 사람을 가쁘게 하고, 기쁜 사람을 슬프게 하는 내용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말은 순간을 사는 인간들이 자신이 소유한 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으로 욕심을 내고, 그 욕심으로 우리는 어둠 속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죽는, 그런 순간을 사는, 우리 인간들에게 커다란 깨우침을 주는 문장이다.
오늘 아침 시 같은 그런 07월도 거의 다 가고 있다. 오늘 아침 사진을 고르면서 김태은 시인의 <7월>을 골랐다.
7월의 시/김태은
산이나 들이나 모두
초록빛 연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보일 듯 보일 듯 임의 얼굴 환시를 보는 것도
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한적하고 쓸쓸한 노을지는 창가에서
눈물을 견디고 슬픔을 견디는 것은
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눅눅한 그림자까지
초록빛으로 스며드는 7월의 녹음
나무는 나무끼리 바람은 바람끼리 모여 사는데
홀로 있어 외롭지 않음은
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깊은 산 속 작은 옹달샘을 찾아
애절히 불타는 이 가슴을 식혀볼까,
6월도 저물어 한 해의 반나절이 잦아드는데
노을빛 가슴을 숨기고
애연히 그리움으로 흐르는 것은
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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