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27일)
휴가철인데, 집에서 오늘도 스캇 팩(Scott Peck)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꼼꼼하게 읽고 있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사랑에 관한 오해 중 두 번째로 '의존성 사랑'에 대해 분석을 한다.
의존성이란 상대방이 자신을 열심히 보살펴준다는 확신이 없으면 적절한 역할을 못하거나 완전함을 경험할 수 없는 상태로 정의한다. 잘 보면, 아무리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의존하고 싶은 욕구나 느낌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보다 더 강한 사람이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아기처럼 보살펴 주기를, 가만히 있어도 보살펴 주기를, 애정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자신을 충족시켜주는 어머니상이나 아버지상을 찾고 또한 그런 사람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존하고 싶은 욕구나 느낌이 생활을 지배하게 하지 않는다. 즉 그것이 우리 존재의 압도적인 관심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이 삶을 지배하고 존재의 질을 좌우 할 때, 그때는 의존적인 상태가 된 것이다. 이 의존성의 결과는 아주 극적인 것이어서 자살을 시도한다 거나 자살하는 시늉을 하거나 자살하겠다는 말로 사람을 위협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해야 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 기생이다."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면 당신은 그에게 기생충과 다름없다." "당신의 관계에는 선택도 자유도 없다." 이 말은 인문적 삶에 매우 중요한 문장이다. 선택으로 포기하면 자유가 없는 거고, 우리는 자신의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사랑이기보다는 오히려 필요의 문제이다. 사랑이란 선택의 자유로운 실천이다. 서로가 없어도 잘살 수 있지만 함께 살기로 선택할 때문만이 서로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거다. 중요한 말이다.
특별히 의존 욕구가 삶을 지배하고 좌우할 때, 그 사람은 의학적 용어로 '수동성 의존적 성격 장애'라 칭하는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는 거라 한다. 단순한 의존 욕구나 느낌 그 이상의 것을 지님으로써 의존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 언제나 사랑받는 데 급급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먼저 사랑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 그들 내부는 텅 비어 있어서 채워 지기를 애타게 갈구하지만 절대로 완전히 채울 수 없는 밑이 뚫린 웅덩이 같다. 그러면 그들은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외로움도 잘 견디지 못한다.
- 온전한 느낌이 부족해서 진정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단지 관계 속에서만 자신을 규정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정체성은 없고, 가족이나 타인이 부여해준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수동적 의존성을 가진 이런 사람들은 의지할 사람이 있기만 하면 누가 됐든지 상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적 공허감과 그 공허감을 채우려는 굶주림이 크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욕구 충족을 뒤로 미루는 것을 참지 못한다. 이런 경우는 자신의 굶주림을 최대한 엄격하게 훈육해야 한다.
-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사람들은 단지 보호받고 노력이 필요 없는 수동적인 상태를 꿈꾸었다. 사랑받는 것이 목적이면 이들은 그걸 성취하지 못한다. 확실하게 사랑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다.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자도 나와 같은 주장을 다음과 같이 한다. 일반적으로 결혼을 하면, 두 배우자 간에 역할이 구분된다. 그러나 가끔씩 그 역할을 바꾸어 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무의식이긴 하지만 서로의 의존성을 줄이게 된다. 부부 각자가 서로를 잃게 될 것을 대비해 스스로를 훈련하는 것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는 의존성이지만 그들은 사랑이라고 부는 것의 이름으로 자신과 상대방의 자유와 성장을 축소시킨다. 이런 부부들은 결혼 후 때때로 결혼 전에 획득한 능력을 내버리기도 한다. 저자는 "건전한 결혼은 오직 강하고, 독립적인 두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거다. 어제 <인문 일기>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알랭 바디우가 말한 "사랑은 결코 ‘하나'가 아니라, ‘둘'의 사건'이다"는 말이다. 사랑은 하나가 되는 순간 끝이 난다.' 다시 말하면, ‘하나'되는 사랑은 사랑의 종말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 모두 혹은 두 사람 중 한 명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해야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전제를 함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수동적인 의존은 사랑의 결핍에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결과이다. 우리 사회가 매우 결핍된 것이 돌봄이다. 유년기를 통해서 비교적 일관성 있게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은 마음 속 깊이 자신이 사랑받을 만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강하다. 그렇지 못한 채 자란 아이들은 자존감에서 나오는 내적 안정감을 갖지 못하고 성년기에 들어선다. 그들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하고 소중한지 의시하면서 내적 불안과 세상은 예측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 결과 그들은 사랑과 관심과 보살핌이 있는 곳을 발견하기만 하면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사랑과 훈육은 함께 간다. 특히 수동적 의존성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훈육이 결핍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 그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 만족감을 지연시킬 생각이 없다.
- 그들은 밀착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에서 정직함도 바람에 날려 보낸다.
- 그들은 포기하지 못한다. 포기해야 하는 낡은 관계에도 끈덕지게 매달린다.
- 그들은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다. 그래 그들은 늘 화가 나 있다. 그들은 실제로 결코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는, 다시 말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끊임없이 좌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약물이나 술에 의존한다. 나도 그렇다. 와인을 너무 마신다. 오늘 그런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이젠 와인을 가급적 혼자 마시지는 않는다. 중독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요약하면, 의존성은 상대방에게 치열하게 애착하도록 만드는 힘이다. 그러면서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과는 정반대이다. 궁극적으로 의존성은 관계를 쌓기보다는 파괴하고 사람들을 성장시키기보다는 망가뜨린다. 의존성의 특징은 영적 성장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의존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영양 섭취에만 관심을 두고 그 이외의 것에는 무심하다. 그들은 만족과 행복을 갈망한다. 그러나 성장은 갈망하지 않으며 성장에 따르는 불행과 고독과 고통은 견디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자기가 의존할 상대의 영적 성장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로지 관심이 자신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 중요하다. 의존성은 '사랑'이라는 말을 잘 못 갖다 붙인 여러 행동 유형 중 하나이다. 오늘과 다른 유형의 이야기는 내일로 넘긴다.
언젠가 노트에 적어 둔 글이다. 이게 오늘 아침에 하고 싶은 말이다. 사랑에 관한 고전적인 질문이기도 한 설렘과 익숙함 중 사람들은 어떤 것을 선택할까? 의외로 인간은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선호한다. 이것이 ‘인지적 편향성'으로 본 심리학의 대답이다. 또 남편이나 아내에게 불만을 가지면서도 사람들이 쉽게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유 효과의 후광도 크다. 소유한 시간만큼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만의 스토리로 각색하기 때문이다.
연애와 결혼은 종종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한 노력일 때도 있다. 사랑을 의리에 비유하는 논법이 결혼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대개 ‘상대를 바꾸거나, 상대가 바뀌면 더 좋은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 파트너로 환승했음에도 실패가 반복하는 건 변해야 하는 주체가 상대가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대니얼 고틀립의 <샘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열쇠를 찾고 있는 한 남자에 대한 우화가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열쇠를 본 곳이 어딘 가요? 현관문 근처요. 그런데 왜 여기 가로등까지 나와서 찾고 있는 거죠? 여기가 더 밝잖아요!” 상대의 잘못은 너무 쉽게, 크게 보인다. 문제는 ‘내 잘못'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열쇠를 잃어버린 ‘그곳'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변화는 상대가 아닌 나를 바꾸는 것이다. 그것이 열리지 않는 문을 여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오늘은 대덕대 와인아카데미 1기 강의를 종강하는 말이다. 즐겁게 8주 강의를 했고, 새로 만난 인연들이 소중하다. 오늘 아침은 짧은 시 하나를 공유한다. 수비지 않은 시이다. 우리 모두는 살아있으니 죽을 만큼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랑/박철
나 죽도록
너를 사랑했건만,
죽지 않았네
내 사랑 고만큼
모자랐던 것이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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