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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학자와 인문 운동가는 다르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옷 잘 입고, 테이블 매너에 능수능란하다고 해서 매너가 다 좋은 것만 아니다. 좋은 매너는 마음과 인격 그 자체이다. 진정한 매너는 파티매너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칭찬, 관심을 더욱 강조한다. 매너는 ‘그런 척'한다고 쉽게 꾸며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좋은 매너를 갖추지 못하면, ‘꼰대’가 된다.

인문학자와 인문 운동가는 다르다. 인문학자가 과학자라면, 인문운동가는 공학자이고 기술인이다. 인문학이 이론이라면, 인문운동가가 추구하는 인문정신은 일상에서 구현되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사랑의 중요성을 말하면 인문 학자이고, 사랑이라는 말이 생활에서 구현되어, '친절 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문운동가이다. 나는 인문운동가이다. 아침마다 글을 써서 많은 이들과 공유한다. 그 글들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흔히 익명으로 SNS 하는 사람일수록 댓글이 악의적이다. 그렇다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냥 다름으로 인정한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다. 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거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천박한 물신주의와 인간의 가치를 인격이 아닌 기능에서 찾으려 하는 비인간화라는 시대적 질병을 앓고 있다. 이 질병의 약은 '인문정신', 즉 인문적 가치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되살려야 하는 것이다. 그 역할이 인문운동가이다.

인문정신이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 균형 잡힌 역사의식,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로움, 관용과 책임 있는 공동체 의식이다. 인문학은 본질적으로 가능이 아니라 가치이다. 인문이라는 말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뜻인데, 인간 다움, 인간이 인간 답게 그리는 무늬를 뜻한다. 라틴어로는 후마니타스(Humanitas)라고 한다. 그러니까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자각, 아니 사람됨의 깨달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현대 경쟁 사회에서 우리의 모든 활동을 지배하고 있는 삶의 작동 기제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이다. 올림픽에서 외치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를 찾거나, 더 높은 성공의 열차에 타려고 발버둥친다. 과학 기술도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기업들은 더 먼 데까지 새 물건을 갖고 달려가기 위해 경쟁한다.

이런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은 올림픽 정신과 그 반대에 있다. "더 낮게, 더 느리게, 더 가까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노력이다. 그러니까 인문정신은 소외된 자리를 향하는 연민의 마음으로 낮은 곳을 바라보는 일이고, 느긋하게 자신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일이고, 세계와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친화력이다.

이런 인문정신이 사회에 바탕으로 깔려 있어야 선진 사회가 된다. 그러니까 선진사회는 선진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선진문화는 인문정신이 밑에 배어 있어야 한다. 산업화나 민주화는 선진사회를 위한 전제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장마철이라 불쾌지수가 높다. 이럴 때일수록 다른 이들에 친절하고, 배려하는 좋은 매너가 더 요구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흘러 맑은 날이 올 것이다. 우주의 심판자인 시간은 우주 안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도 어제의 모습, 아니 조금 전의 모습대로 그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이 시간의 심판자는 모든 것을 매 순간 변화시켜 결국에는 시간이 지나면, 무로 사라지거나, 유로 다른 성질로 변화한다. 시간은 있음을 없음으로 조용히 변신시키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도 그런 의미에서 택한 것이다. 사진은 작년 이맘 때 제주도에서 찍은 것이다. 다시 제주도에 가고 싶다.

꽃들은 경계를 넘어간다/노향림

꽃들이 지면 모두 어디로 가나요.
세상은 아주 작은 것들로 시작한다고
부신 햇빛 아래 소리 없이 핀
작디작은 풀꽃들,
녹두알만한 제 생명들을 불꽃처럼 꿰어 달고
하늘에 빗금 그으며 당당히 서서 흔들리네요.
여린 내면이 있다고 차고 맑은 슬픔이 있다고
마음에 환청처럼 들려주어요.
날이 흐리고 눈비 내리면 졸졸졸
그 푸른 심줄 터져 흐르는 소리
꽃잎들이 그만 우수수 떨어져요.
눈물같이 연기같이
사람들처럼 땅에 떨어져 누워요.
꽃 진 자리엔 벌써 시간이 와서
애벌레떼처럼 와글거려요.
꽃들이 지면 모두 어디로 가나요.
무슨 경계를 넘어가나요.
무슨 이름으로 묻히나요.

오늘 아침도 <꼰대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오늘 주제는 '매너를 모르면 꼰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매너는 에티켓과 다르다. 그리고 ‘꼰대’는 꼴이 사나워 볼 수 없는 꼴불견을 말한다. 매너와 에티켓은, 엄밀하게 말하면 그 뜻이 다르다. 에티켓이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사회적인 불문율로써 하나의 규범'라면, 매너는 실제 생활 현장 속에서 그 '에티켓을 바르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다음의 예를 보면, 우리는 금방 이해 할 수 있다. 우리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 ‘노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은 규범으로서 에티켓이고, ‘노크를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하는 방법은 매너에 속한다. 따라서 에티켓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없다. 에티켓에 맞는 행동이라 해도 매너가 좋지 않으면 그 사람의 행동은 예의를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기본적인 '틀'로서의 매너의 기본원칙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는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진정한 매너는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배려심이다. 그 배려심은 자신이 불편을 자초(自招)해야 한다. 가장 먼저, '타인을 배려한다'는 것은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텐데 그리고 고마워할 텐 데'라 생각하고 먼저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이 때 대단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예컨대, 미소 같은 작은 몸짓 하나 또는 인사말 한마디에도 상대방을 편안하게 배려하는 것이다. 편안한 배려는 격식에 따른 의례적인 행동보다도 언제나 한결같은 몸에 배인 자연스럽고 넉넉한 ‘마음 씀씀이'이다.

둘째로 배려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생각해주며 존중하는 일이다. 서로의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좀 더 쉽게 행동할 수 있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 하라'는 황금률이다. 셋째,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조금이라도 나와 ‘다르다'고 생각되면, ‘이상하다'고 생각해 차별한다. 프랑스의 한 정원에서 본 표현처럼, ‘타인을 존중하세요. 그리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당신을 존중하게 하세요.’ 이런 생각이 매너의 원칙이다.

넷째,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관리하고 개방한다. 사실, 상대방의 호감을 얻으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우선 나 자신을 개방한다. ‘내 방식대로 하라'는 강압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게다가 말이나 자세 및 동작 그리고 용모와 복장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다. 즉 내가 보여준 배려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되돌아온다. 사회 속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면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타인을 대하는 자세'에서 남다른 측면이 있다.

종합하면, 좋은 매너는 무엇보다도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좋은 매너는 상대방의 기분과 편리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가 나와 다르게 보이는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 단지 '차이'일뿐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나는 매너의 기본정신을 사자성어로 풀어 ‘역지사지(易地思之)'라 말하고 싶다. 즉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어떨지, 상대방의 처지에서 미루어 생각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매너는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동일하게 대우하자'는 상호호혜(相互互惠)의 원칙, 서로 승리하는 원칙인 것이다.

모든 것을 기계가 다 담당하고 있는 시대에 한 가지 할 수 없는 일이 인간관계를 하는 일이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끼리 관계를 잘 갖기 위해서는 좋은 매너가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매너라고 말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임기응변 적인 대처 능력'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진정한 매너는 인성의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는 인성(人性, 인간성)을 고양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성이란 서양의 존재론처럼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개체 속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 어떤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논어』의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란 말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다. 이 말은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양 사상의 핵심적 사상이 ‘인(仁)’인 것이다. 인이란 기본적으로 인+인, 즉 이인(二人)의 의미이다. 인간을 인간(人間), 즉 인(人)과 인(人)의 관계로 보는 것이다. 동양에서 보는 인간의 됨됨이인 인성은 개별 인간의 내부에 쌓아가는 어떤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으로 본다. 그러므로 인성을 고양한다는 말은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 즉 타자를 키우는 것이다.

신영복의 『강의』라는 책을 보면, 백범 김구가 자주 인용했다는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를 소개하고 있다.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실제 생활에서 건강은 미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신영복은 이 말에 대해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를 추가하고 있다. 신체가 건강한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은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흥미를 주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그러면 ‘마음이 좋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신영복은 이런 등식을 소개하는데,  흥미롭다. “마음이 좋다=마음이 착하다”는 것이고,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일까? 신영복에 의하면, “배려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착하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관계의 배려를 감성적 차원에서 완성해 놓는 것이다. 머리로 이해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무의식 속에 녹아 들어 체화(體化)된 수준이다.

좋은 매너는 한 사람에게 배어 있는 향기와 같다.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극단의 처방이 아니라, 항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다. 그러려면 매너가 몸에 배이기까지, 느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이기까지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매너를 배운다는 것은 '양식이나 방법적인 지식' 이전에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이다. 겉으로만 매너가 좋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지쳐 있다. 조금은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행동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훌륭한 매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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