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오늘 글입니다.
지난 주 복음입니다.
루카복음 11장 2-4절: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기도문으로 외우고 있는 부분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여기서 아버지를 자연, 진리(로고스)의 세계, 참나의 세계로 이해하면, 에고의 욕심이 아닌, 참나의 양심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하느님의 나라로 이해하면 기도가 좀 더 쉽게 와닿아요.
루카복음 11장 9-10절: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자신은 노력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청하라는 말씀은 아닐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양심적으로 살면서, 청하고 찾거나, 두드리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하느님도 우리의 기도 중에 스펨 처리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도 못들어 주시는 기도가 두 가지 있을 것이다. 하나는 들어줘서는 안 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우리 인간이 협력하지 않기 때문에 못 들어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진리 또는 진실에 어긋나고, 사랑에 어긋나는 것은 들어주실 수 없고, 그래서 안들어 주실 것이다. 진리의 하느님이 진리/진실에 어긋나는 것을 들어주시면 자신을 부정하는 모순이기에 그러실 수 없다. 그리고 또한 사랑의 하느님은 사랑에 어긋나는 기도를 들어주실 수 없습니다.
언젠가 읽은 다음의 시가 생각났다.
주기도문/박남철
지금, 하늘에 계신다해도
도와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나라를 우리 섣불리 믿을 수 없사오며
아버지의 하늘에서 이룬 뜻도 아버지 하늘의 것이고
땅에서 못 이룬 뜻은 우리들 땅의 것임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반복해서 일흔 번쯤 읊어보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고통을 더욱 많이 내려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고통 주는 자들을 더더욱 미워하듯이
우리의 더더욱 미워하는 죄를 더, 더더욱 미워하여 주시고
제발 이 모든 우리의 얼어죽을 사랑을 함부로 평론치 마시고
다만 우리를 언제까지고 그냥 이대로 내 버려 둬, 두시겠습니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이제 아버지의 것이
아니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보시오)
밤낮없이 주무시고만 계시는
아버지시여
아멘
이 것은 내가 좋아는 술, 주님에게 드리는 기도이다.
과일이나 곡물의 몸으로 태어나 스스로를 효모의 힘으로 발효시키고 숙성으로 부활하시어 모든 우리를 다시 만나주시는 酒님.
기쁨에 흥을 곁들여서 그 기쁨을 배가 되도록, 슬픔에 쓴 맛을 선사하여 더욱 아프도록 위로하시고, 쓰린 속을 귀하신 그 몸으로 미친듯이 뒤집어주고 토악질로 마무리하게 만들어 비게 만들어 주시며, 언제나 주님을 모시는 신도가 당신을 만날 때 갖게 되는 그 느낌을 배가 되게 만드시는 그대의 은총아래서 오늘도 자비를 구하나이다.
오 酒님. 우리가 모시는 그대의 손길이 이 시간을 편하게,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게 해주시옵고, 우리 모두가 당신의 은총아래 기뻐서 짖어대는 훌륭한 개, 돼지가 되는 그 날 까지 자비를 베푸소서.
술과 술병과 안주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어쨌든 오늘도 '아버지의 나라'에서 처럼 살다 보내도록 더워도 참고 살아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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