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를 힘들게 하는 원인은 어떤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생각이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12일)

나에게 페이스북은 세상을 보게 하는 창문이다. <백두(百頭)>라는 분에게 친구 요청을 했다. '백두'를 한문 없이 읽으면 '백두산(白頭山)'이 생각난다. 그런데 한문으로 보니 하얀(白) 머리가 아니라. 백(百) 개의 머리이다. 그리고 문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民草(민초)들이 아무리 개혁을 외쳐도 공허한 메시지 가진 자들의 비웃음만 있을 뿐…" 이 분의 담벼락에서 우리들에게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글을 만났다. 그분도 퍼 왔다는데, 나도 퍼다 공유한다.

세네갈 출신의 EPL 리버풀의 스타 플레이어 사디오 마네(2022년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 당시 연봉 1020만불)가 몇몇 팬들이 그가 액정이 깨진 아이폰을 가지고 있는 점을 의아해 하며 이것이 계속 화제가 되자 이런 반응을 남겼다. 그의 놀라운 답변을 공유한다. "내가 왜 10대의 페라리, 20개의 다이아몬드 시계, 두대의 전용기를 가져야 하나요? 그게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요? 과거에 나는 배고팠고, 농장에서 일했고 맨발로 뛰어 놀았고 학교에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나는 학교를 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을 나누어 주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 동안 여러 학교를 지었고 경기장도 하나 지었습니다. 우리는 극도의 가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옷과 신발 그리고 음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매달 70유로(약10만원)씩을 매우 가난한 세네갈 사람들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생활비 지원 차원에서 주고 있습니다. 나는 값 비싼 고급차들과 고급 저택과 여행 그리고 심지어 비행기까지 떠벌리고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그저 내 나라 사람들이 삶이 내게 준 것들 가운데 조금 이라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오랜 만에 소설을 읽었다. 공지영의 <월춘장구(越春裝具)>라는 단편이었다. 이 '월춘장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난 몰랐다. 소설의 맨 마지막에 설명이 나온다. 공지영 소설가는, 겨울 길을 갈 때 장비가 필요하듯이, 봄 길, 꽃 길, 낯선 행복 길을 걸어갈 장비가, 월동 장구 말고,  봄을 준비하는 언젠가는 기습 하고야 마는 봄 앞에 그 봄을 견뎌낼 '월춘장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그녀의 월춘장구는 "쓰기, 읽기, 웃기, 기도하기'라 했다. 나의 '월춘장구'는 무엇인가? 나도 쓰기, 읽기 그리고 … (?). 찾아보자.

소설 속에서 그녀가 칩거동안 꺼내 보던 책이 에픽테토스, 안젤름 그륀, 오스카 와일드 그리고 릴케라고 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용은 다음과 같이 세 개이다.
1. 안젤름 그륀의 책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비난하는 심술궂은 사람들을 배심원석에 앉혀 놓고 늘 피고석에 앉아 자신의 행위가 무죄라는 변명을 끝없이 늘어놓고 싶은 강박을 가지고 있다." 가만히 읽다 보니, 나 자신에게도,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그 배심원들과 내가 앉아 있는 피고 석이었다. 그래 이젠, 그녀처럼, 피고석을 떠나고 배심원들을 해고 한다.
2. "나 자신 외에 나에게 상처 입힐 사람은 없다."(성자 요한 크리소스토모)
3.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표상(表象)이다."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이 순간의 특수한 상황에 몰두하십시오, 이 사람에게, 이 도전에, 이 행동에 반응하십시오, 회피하지 마십시오. 이제 진정으로 살아야 할 때입니다. 당신이 지금 놓인 상황을 온전히 살아가십시오, 방문이 닫히고 방이 어둡다고 해도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자연의 의지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당신에게 끈덕지게 이야기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삶의 기술에서 재료는 당신 자신의 삶입니다. 위대한 것은 갑자기 창조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최선을 다하십시오, 늘 친절하십시오." (에픽테토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행복 철학은 독특하다. 노예 출신이었던 그는 자유의 개념에서 행복을 도출한다. 노예는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해야 하므로 신체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엄격한 제약을 받는다. 신체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에도 속박이 존재한다. 비록 신체적으로는 자유로울지라도 그의 마음이 무엇에 속박되어 있다면 그를 자유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자기가 이룰 수 없는 욕망과 정념 등에 예속되어 있는 사람도 그것의 노예라는 게 에픽테토스의 주장이다. 이런 속박에서 벗어나 주인으로서 자유를 누릴 때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세상의 존재들을 나에게 달려 있는 것과 달려 있지 않은 것으로 구분한다. 전자는 생각, 판단, 욕망, 분노, 혐오처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 것이다. 후자는 신체, 죽음, 재산, 운, 인기, 평판, 사회적 지위처럼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고통이나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도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여기면서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니버의 기도와 내가 만든 기도를 다시 소환한다.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평화, 믿음)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다시 한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안달하고 분노하는 대신에 내가 통제할 수 있고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거다. 그리고 작년에 내가 만든 기도를 오늘 아침 또 기억한다.

주님  늘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렵다'는 말을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가진 것을 사랑하면 행복하고 못 가진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는 말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 '사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에픽테토스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원인은 어떤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생각이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죽음이 두렵다는 생각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나를 화나게 하는 원인은 무례하거나 공격적인 사람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나를 화나게 하고 있다는 나의 생각이다.” 내 것인 것만 내 것이고, 내 것 아닌 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누구도 나의 행복을 방해하지 못한다. 나에게 달려 있는 것만 추구해야 한다. 심지어 운도 내 것이 아니므로 거기에 매달려선 안 된다. 병이나 죽음, 운처럼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을 추구하면 불행한 감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범인(凡人)인 우리들이 스토아 철학자처럼 살 순 없겠지만 지혜는 빌릴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관계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다른 이들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니 자연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뜻대로 하려 들지 말고, 나에게 달려 있는 생각이나 분노 등이 내 바깥에서 날뛰지 않게 단단히 고삐를 죄어야 한다. 그것이 대자유인의 삶이며, 행복의 비결이다.

그의 철학을  요약하면, '집착에서의 자유, 즉 괴로움의 원인은 전부 내가 가진 표상에 있는 것'이다. 그는 절름발이였다. 사람들이 그를 동정하면, "질병은 육신에 장애를 줄지 언정 내 의지에는 장애가 되지 못한다. 절뚝거림은 다리에 장애가 될지 언정 내 의지까지 절뚝거리게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권한에만 노력하되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신에게 맡기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라고 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 불행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고 나 자신을 불행하게 생각하는 '나의 마음', 태도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대부분의 괴로움의 원인이 '나의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이것을 '표상'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내 삶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살려면, 내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모든 괴로움은 다른 것이 아닌 나에게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는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공지영 소설가가 말했던 거처럼, "생이 나를 부르면 그것이 공평하든 그렇지 않든, 예, 하고 큰소리로 대답하기로 결심했다. 좋아하는 선생이 부르든, 싫어하는 선생이 부르든, 출석 시간에 대답했던 학창 시절처럼 생이 부르거든 큰 소리로, 예,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어제 오후 산책길에서 찍은 오늘 아침 사진처럼, 개망초 꽃들도 내가 부르니 나에게로 달려왔다. 개망초는 망국초, 왜풀, 개망풀이라고도 한다. 1910년 한일합방 즈음에 들어온 귀회식물이다. 그래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풀이라 망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전해진다. 개망초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풀이란 나쁜 이름이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꽃 모양 덕택에 '계란 꽃'이라고도 불렀다. 번식력이 대단하다. 이와 관련된 시를 한편 공유한다. 농부들이 그랬다지. '망할 놈의 개망초'라고, 뽑아도 뽑아도 돌아서면 돋아나고, 밑둥 바짝 잘라도 자고 나면 다시 돋는 풀. 북한에서는 순 우리말로 '돌잔꽃'이라 부른다고 한다. 꽃말은 이름과 다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멀리 있는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게 해준다.

개망초꽃/안도현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것 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사진하나_시하나 #안도현 #사디오_마네 #월춘장구 #에픽테토스 #개망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