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힘들면, 어리석은 듯, 묵묵히, 어눌하게, 참고 견디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뜬금 없는 박원순 시장의 비보에 눈물이 난다. 하늘도 아시는지 굵은 비가 내린다. 서둘러 가시려고 그렇게 열심히 사신 걸까? 노무현, 노회찬, 박원순의 공통점은 열심히 산 주체적 인간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별도로 주체적 인간은 그 몫을 스스로 결정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삶 자체가 실험이었던 그는 항상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실현시켜 왔다. 그런데 지쳤는지,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누구나 삶에 쏟는 에너지 총량을 가지고 태어나, 젊은 시절에 너무 많이 그 힘을 사용하면, 일찍 명을 달리하는가? 먼저 하늘 나라에 간 내 처도 박원순 시장만큼 열심히 살았다. 스스로 생을 달리하든, 병으로 먼저 하늘 나라에 가든지 말이다.
‘사람이 곧 한울이다’(人乃天)를 기치로 내건 동학혁명의 정신적 지주였던 천도교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崔時亨)은의 원래 이름은 경상(慶翔)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름을 시형(時亨)으로 바꾼다. 우리 동네에는 최제우의 수운교(水雲敎) 본부가 있다. 최시형은 최제우의 수제자이다. '시형'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이유는 “대저 도는 때를 쓰고 활용하는 데 있나니 때와 짝하여 나아가지 못하면 이는 죽은 물건과 다름이 없다”며 용시용활(用時用活) 철학 때문이라 한다. 그러면서 ‘우묵눌’(愚默訥: 어리석은 듯, 묵묵히, 어눌하게)의 자세로 삶을 살았다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감인대’(堪忍待: 참고, 견디며, 기다려라)와 같은 말이다.
힘들면, 어리석은 듯, 묵묵히, 어눌하게, 참고 견디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내 사유는 안창호의 어머니가 하셨다는 말,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아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다.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모두의 분노를 짊어진 것이다"와 겹쳐진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가 가고자 했던 길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좀 나열해 본다.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 청년수당, 도시재생, 사회적경제기업 협동조합, 원전하나 줄이기, 노동이사제, 토건에서 복지 패러다임으로 전환 등 수많은 사회혁신 정책을 보여 주었다.
그가 언젠가 미리 이런 유서를 썼다 한다. "우리는 함께 꿈꾸어 오던 깨끗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고, 그 못다한 몫은 바로 이제 여러분들이 이뤄 줄 것임을 믿습니다." 말보다 더 많은 실천을 보여주신 당신의 뜻을 기억하고, 잊지 않을 생각이다. 이제 말을 바꾸어 몇 일전부터 고민하던 이야기를 한다.
극단적 선택을 막으려면,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불필요한 물건이나 관계를 분별하고 제거할 줄 안다. 그런 사람은 지혜롭고 창조적이다. 창조적인 삶이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불필요한지 선별하고 그것을 다음으로 하겠다는 다짐과 실제로 안 하는 결기에서 나온다. 그런 사람은 항상 참신하다.
노자(老子)식으로 말하면, 자신의 현재에 만족할 줄 알고, 멈출 줄 알아야 지혜로운 사람이다. 노자는 현재에 만족할 줄 알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치욕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만일 멈출 줄 알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멈춤을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정언(正心), 정언(正言) 그리고 정행(正行)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하기 전에 잠시 멈춰, 그것이 숭고(崇高)한지를 살핀다. 오늘 아침 화두는 숭고이다.
숭고(崇高)는 영어로 '서브라임(sublime)'이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아래서(sub) 혹은 넘어서(super)+ 리멘(limen)'의 합성어이다. 리멘은 새로우면서 낯선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에 놀란 불안한 상태를 의미한다. 리멘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장소인 '현관(玄關)'과 같다. 한국어 표현으로 문지방(門地枋), 경계이다. 불안하지만 거쳐야 하는 마음 상태이기도 하다. 그런 불안한 자신을 응시하고 자신 안에서 최선을 찾으려 끊임 없이 노력하는 사람을 우리는 '숭고하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만의 별을 발견하고 묵묵히 걸어간다.
숭고는 인간이 인식 가능한 경계를 넘어선 어떤 것, 흔히 '위대함'을 우리들에게 바라보게 한다. 그러니까 숭고는 오감을 통해 그 일부를 느낄 수 있고, 도덕적이거나 이성적으로 인정할 수도 있고, 형이상학적이거나 미적으로 감지될 수도 있다. 그건 예술적이거나 영적으로 매력적인 어떤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숭고는 인간의 숫자나 언어를 통해 측량되거나 표현될 수 없고 더욱이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숭고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높고, 고상하다"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에로스'라는 말을 "숭고한 사랑"으로 번역한다. 타자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다. 에로스라는 말을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과는 다르다. 숭고한 사람이 일상에서 발현되는 것이 '친절(親切)'이다.
친절한 사람은 플라톤이 말하는 에로스, 숭고한 사랑, 서브라임(sblime), 즉 경계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덕목은 공감능력과 자비 능력에서 나온다. 여기서 공감 능력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고, 자비 능력은 다른 이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해석하는 능력이다. 이 자비의 다른 말이 연민이고 사랑이다. 연민의 사전적 정의는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김'이다. 이걸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내 마음 속에 들어온 당신의 슬픔'이라 말할 수 있다. 일상의 삶에서 습관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타인의 슬픔에 대한 가장 좋은 위로는 나의 슬픔이 너의 슬픔 못지않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너의 어려운 처지가 나의 어려운 처지처럼 느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어둠과 이길 수 없는 슬픔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거울을 보며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지만, 마음의 얼룩은 걷어내지 못한다. 그래 우리는 연민으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거기에 오늘 우리가 공유하는 "길"이 있다. "길은 언제나 없던 문을 만든다." "사람이 가지 않는 한 길은 길이 아니다/길의 속력은 오직 사람의 속력이다." 그래 연민이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연민은 '숭고한 사랑'이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숭고하다'고 한다.
길에 관한 독서/이문재
1
한때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주곤 했을 때
어둠에도 매워지는 푸른 고추 밭 같은 심정으로
아무 데서나 길을 내려서곤 하였다
떠나가고 나면 언제나 암호로 남아 버리던 사랑을
이름 부르면 입 안 가득 굵은 모래가 씹혔다
2
밤에 길은 길어진다
가끔 길 밖으로 내려서서
불과 빛의 차이를 생각하다 보면
이렇게 아득한 곳에서 어둔 이마로 받는
별빛 더이상 차갑지 않다
얼마나 뜨거워져야 불은 스스로 밝은 빛이 되는 것일까
3
길은 언제나 없던 문을 만든다
그리움이나 부끄러움은 아무 데서나 정거장의 푯말을 세우고
다시 펴보는 지도, 지도에는 사람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4
가지 않은 길은 잊어버리자
사람이 가지 않는 한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의 속력은 오직 사람의 속력이다
줄지어 가는 길은 여간해서 기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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