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3.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7월 9일)

오늘 아침 화두는 '틈', 아니 '간격' 또는 '사이'는 사랑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친구가 한국의 근대 건물의 물성(物性)을 되살려, 건물을 재생했다고 한다.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보았다. 그 집 이름을 게스트 하우스 '틈'으로 이름 진다고 한다. 카페 이름도 어떻게 할까 해서, 혼자 고민해 보았다. 임문 카페 '무장해제'로 했으면 하고 생각했다. 일부러 인문대신 임문으로 한다. 그 틀림이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줄 것이다. 입문, 아니면 인문을 잘 못 쓴 것 아닐까 자신의 생각에 '틈'을 주어 볼 것이다. 그러면서 그 '틈'은 사람들에게 생각의 '무장해제'를 시킬 것이다. '틈'의 비슷한 말들은 '사이', '간격(間隔)', '쉼' 등이다. 다 같은 맥락에 쓰이는 말들이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음표와 음표 사이의 거리감 쉼표 때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리감 쉽표는 '틈', 아니 '간격'이다. 그것들은 '사이의 침묵'이기도 하다. 이 간격의 침묵은 절제이면서 동시에 웅변이기도 하다. 훌륭한 예술 작품에는 항상 이 침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심연에 '틈을 주며 자극해 자신의 삶을 노래하게 만든다. "예술의 특징은 바로 '침묵 속의 웅변'이다."(배철현)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 받는 말도 아름다운 이유는 말과 말 사이에 적당한 쉼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쉼없이 달려온 건 아닌지 내가 쉼없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들의 관계도 '틈'이 있어야 한다. 틈이 서로 존중될 때 관계가 온전해지고, 비로소 우리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그 물리적이고 질적인 '사이' 아니 '틈'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틈', '사이', '간격'은 우주 안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을 자연스럽고 독립적으로 만드는 필요조건이다.
그리고 수관기피(樹冠忌避, crown shyness)라는 말이 있다. 숲 속의 소나무, 녹나무 같은 나무들이 자라면서 꼭대기 부분이 상대에게 닿지 않는 현상인데 이를 '수관기피'라 한다. 수령이 비슷한 나무들은 자라날 때 옆 나무의 영역으로 침범하지 않는다. 이른바 나무들 사이의 거리 두기인 셈이다. 식물학자들은 수관 기피를 공간을 겹치지 않게 확보해, 뿌리 끝까지 햇빛을 받아 동반 성장하기 위한 식물들의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코모레비’라는 일본어가 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라는 뜻인데, 잎들 사이로 흩어지게 바람이 만든 햇살은 과연 생각만으로도 아름답다. 높은 가지들은 서로 닿지 않으려 한다. 햇빛 나누는 공존법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타인과 적당히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문제는 적당함의 기준이 과연 어느 정도의 거리나 온도를 말하느냐는 것이다. 나무들의 수관 기피 현상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소설가 백영옥이 소개한 림태주 시인은 자신의 산문집 <관계의 물리학>에서 “좋아하는 사이는 거리가 적당해서 서로를 볼 수 있지만, 싫어하는 사이는 거리가 없어져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사이가 있어야 모든 사랑이 성립”하고 “사이를 잃으면 사랑은 사라진다”. 즉 “사랑은 사이를 두고 감정을 소유하는 것이지 존재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이 대신, 간격, 틈으로 바꾸어 읽을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거리'라는 말은 강요 받기때문에 부정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적당한 거리는 우리 삶을 더 여유롭게 해주고, 질서를 잡아준다. 프랑스어로 거리는 '디스땅스(distance)'라 한다. 나는 배철현 교수가 내리는 '거리 두기'에 대한 다음 정의를 전적으로 동의한다. "거리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을 개체로 존재하게 만드는 유일한 장치다. 만일 만물이 '거리 두기'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개체가 아니다. 우주 안에서 그런 거리를 용납하지 않은 상태가 '혼돈(chaos)'이며 혼돈이 지배 하는 장소가 '블랙홀'이다."
블랙홀 안에서 만물은 거리두기를 파괴한 채, 무형의 한 덩어리로 존재한다. 따라서 개인으로서의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거리두기가 필수적이다. 비록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일지라도 적당한 거리 두기는 필수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상대방의 공간을 무례하게 침입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 질'이며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다.
다시 거리두기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일상은 거리두기이다. 오라혀 어떤 사람들이런 거리를 두는 삶이 오히려 괜찮다고 한다. 거리 두기는 서로의 공간을 지키는 심리적 거리두기의 순 기능도 있기 때문 같다. 어쨌든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었다. 모임, 회식, 동호회 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거리 두기, '너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둔다'는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는 이제 공론화된 사회적 합의이자 암묵적인 미덕이 되었다. 인문운동가로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e)'라는 말 대신에 '물리적 거리 두기(physical distance)'를 사용하기를 제언한다. 언어는 무의식적 습관을 드러내고, 언어는 생각을 지배한다. 물리적 거리는 냉정하게 지키되, 사회적 거리는 따뜻하게 좁혀 약자를 보호하고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과 완전히 인연을 끊고 은둔하면 몰라도, 사회에 참여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살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심재(心齋, 마음 굶기기')를 하여 마음을 텅 빈 방처럼 만들면, 간격이 생기고, 그 간격에서 뿜어내는 빛을 체험할 수 있다. 오늘 아침 고유하는 시처럼.
간격/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그래 나는 한자 성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공자가 한 말이다. 소인배를 대할 때 너무 가까이하면 다치기 쉽고, 너무 멀리하면 해코지하므로 적당한 거리를 두라는 말이다. 어쨌든 너무 멀지도 않게 너무 가깝지도 않게 하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중용'이라는 이름으로 이 거리 두기를 강조했다. 그는 "용기란 무모하지도 않고, 겁을 먹지도 않은 상태라 했고, 절제란 방종도 아니고, 무감각하지도 않은 상태 그리고 관대 함이란 낭비도 인색도 아닌 상태이고 긍지란 오만하지도 않고 비굴하지도 않은 것"이라 했다. 이 거리 두기가 인간들끼리 의 관계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의 ‘사이’와 ‘사이’의 틈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단어도 한자로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을 쓴다. 좋은 관계를 ‘사이 좋다’고 우리는 표현한다. 좋은 사이란 뜨겁게 가까운 거리도, 차갑게 먼 거리도 아니다. 그것은 서로가 36.5도의 따뜻함으로 존재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무수한 사이에 겨우 존재하는 것이다. 겨울과 봄 사이, 밤과 아침 사이, 아이와 어른 사이, 이해와 오해 사이 그리고 당신과 나 사이, 그 무수한 사이 속에서.
여기서 사이는 '거리 두기'이고 '틈' 아니 '간격'을 벌리는 데서 나온다.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공간과 시간, 내가 장악해야 할 순간에도 모두 간격이 있다. 인간, 시간, 공간, 순간, 모두 다 간(間)자가 들어간다.불가근불가원이라는 이 절제된 간격이야말로 내가 너를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표현이다. 그래 '간격', '틈'은 사랑의 완성이다. 사랑은 상대방과의 '틈', 아니 '간격'을 존중하는 연습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틈', 아니 '간격'은 상대를 온전한 인간으로, 대상을 온전한 세계를 가진 가치로 인정하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미치도록 사랑하여 그 뜨거운 불꽃에 데이고, 그것이 두려워 너무 멀리 떨어져 얼음처럼 차갑고 외롭게 지내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홀로 조용한 방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생"긴다고 말했다.
나와 너 사이를 매어주는 위대한 감정인 사랑에도 '틈', 아니' 간격'이 필요하다. 물론 절제된 '틈', 아니 '간격'이다. 이 '틈'이 서로를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절제된 '틈', 아니' 간격'은 사랑의 완성이다. 배철현 교수가 자신의 책, <정적>에서 인용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사랑의 의미에 대한 편지를 공유하며, 긴 글을 마친다.
"사랑은 어렵습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완수해야 할 가장 어려운 임무일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에 궁극적이며, 인간이 되기 위한 마지막 시험이며, 인간이라는 마지막 증거입니다. 사랑은 준비입니다. (…) 사랑은 합치는 것, 상대방에게 나를 온전히 주는 것, 그리고 함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연합은 분명하지 않고, 완결되지 않고 한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종속 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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