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오늘 글이에요.

며칠 동안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를 만났다. 그로부터 잃어버린 ‘개인’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인문운동가로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고 주장하며, 어떻게 국가와 사회로부터 개인을 되찾을까 고민해 오고 있었다. 그러다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를 만났다. 거기서 잃어버린 개인을 찾아보려 했다. 그의 말을 적어본다.
역사와 문명의 진보는 순응하지 않는 개인의 결정에 의해 진전되어 왔다.
개인의 결정이 모여 전체의 입장을 정할 수 있을까? 내 선택이 내 삶을 책임질 수 있을까?
집단 이데올로기, 집단의식에 의해 휘청거리는 개인의 마음을 살핀다.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집단의식을 드러내 보인다. 우리는 국가를 위하는 희생을 강조 받는다. 어떤 국가를 추구하고자 순종을 강요하는 것인가?
1. 그는 약한 자, 약자의 위치에서 사람들을 바라본단다. 거기서 보이는 인간의 모습과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그린단다. 인간은 이외로 타인을 주시하지 않는다.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보지 않는 습관에 빠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난 도시 사람이 아니다. 난 도시에 나가면 다른 사람들을 너무 본다. 다른 이들을 보다 보면,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는다. 이제부턴 그들에게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무언가를 돕거나 무언가를 좀 서비스하자. 그걸 글로 풀어내면, 작가이고, 그걸 몸으로 일상에서 실천하면 인문운동가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살아야 할 가치가 내게 있는가?’라는 물음에 빠지게 되는 인물을 통해서 그럼에도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 그 쪽을 향하는 것이 문학이다.
2. 사회구조의 모순을 갈고리로 찍어 올리듯이 꿴다. 기계를 사용하지 못하면, 일을 못하는 현대인들. 일을 많이 해야 생계를 유지하니 빚을 내서 그 기계를 사고 그 빚 때문에 번 돈은 다시 은행으로 간다. 그래 돈 없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늘 허덕인다. 이게 사회 부조리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현대의 편리 속에서 계속 고통 받는 이유이다. 그러니 편하게 하지 마라. 불편하고 힘들어도 그렇게 살면, 그런 식으로 살게 되고, 빚은 안 진다.
3. 가난과 결핍에 대한 분노는 더 만만해 보이는 약자를 찾아 왕따와 폭력이 된다. 왜? 열등감과 자기과시는 그 뿌리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 공격적인 방법으로 자기 방어를 한다. 인간의 본성이다.
4. 인간은 동물로 태어난다. 인간으로 죽을 수 있을지는 각자의 노력에 달렸다. 대부분 동물로 태어나서 동물로 죽는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교양을 갖춰야 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는 일은 교양이 아니다. 인간이 되기 위한 지식, 인간이 되기 위한 교양이 필요하다.
5. 국가가 교양과 지식을 강요한다. 국가의 편의에 부합하는 지식, 국가의 편의에 부합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교양이다.
6. 국가가 가장 두려하는 것은 제동을 거는 국민이다.
- 급여가 낮아도, 해고를 당해도 불평하지 않는 노동자, 전쟁을 할 테니 목숨을 내놓으라고 해도 순응하는 국민을 좋아한다.
- 국가는 지배계급을 위해 움직인다. 모든 국가에서 지배계급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은 부수적인 존재, 바로 노예일 뿐이다. 그런 국가를 국민 대부분은 조국이라고 착각한다. 국가가 착각하게 조장한다.
- 한국에서의 국가는 자본가, 즉 재벌이다.
- 자본에 밀린 사람은 국적을 불문하고, 사회적으로 죽는다. 그걸 막는 것이 인문운동가이다.
7. 다들 결정을 내릴 때는 자기 의지라고 한다. 그러나 일이 터지면 국가나 조직, 동료의 생각에 휘둘린다. 개인은 명민한데, 진영 논리에 사로잡힌다. 인간은 유명인의 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언론이나 방송에서 같은 말을 뒤풀이하면 시나브로 세뇌 당한다. 그 점을 늘 성찰해야 한다. 마음가짐(고토로구미)이 필요하다. 반드시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겠지만, 늘 의심하고 질문하며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다.
8. 세뇌당하지 않고 자기 답을 얻으려면 전체 판을 볼 줄 알아야 한다. VS 전체가 아니라 한 점을 보라.
- 아마추어는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가늠하려 하지만 프로는 출구 하나만 응시한다. 전체를 보겠다고 두리번거리면 시선이 애매해진다. 점하나가 중요하다.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가장 중요한 한 점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그 지점이 우리 마음을 단단히 다잡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 온갖 책을 보며, 뭔가 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사실 아무 것도 모른다.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깊게 만나야 한다. 그래야 그를 통해 세상을 읽어낼 수 있다.
9. 국가가 흘려보낸 데마고그(선동)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과 마음으로 사귀어야 한다. 서재나 상아탑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베운 앎이 진정한 교양이고 공부이다.
10. 그 한 점은 무엇일까?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이것만은 지키겠다는 것이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 우리는 그것에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마루야마 겐지는 권력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자유이다. 나를 구속하는 일체의 것을 비판하고 그것에 난 저항한다.
11. 인문운동가는 국가가 부여하는 모든 권위, 예컨대 무슨 상 따위들을 거부한다. 인문운동가는 음지식물이다. 음지식물은 빛을 많이 쬐면 말라버린다. 이때의 빛은 명예, 돈 같은 것들이다.
12. 물론 우린 사회적 동물로, 서로 주고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너무 의존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조직이나 집단에 편입되어 자신을 잊고 개인을 버린다. ‘나’라는 개인으로 돌아와야 한다.
13. 자기 스스로를 잃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를 위로하고, 거기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 그건 값싼 위로이다. 일시적인 안심일 뿐이다. 작가는 독자를 현실에서 빼내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현실로 쑥 들이밀어야 한다. 나는 내 존재 의미가 무엇인가? 어차피 내던져진 내 삶을 행복하게, 아름답게, 즐겁게 살다가 소리 소문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난 사람들이 나로 인해 더 행복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즐거워진다면 좋겠지만, 안 되면 할 수 없다. 나라도 그렇게 살다 가면 된다. 내 존재 의미는 뭐 특별히 다른 것이 없다.
14. 힘들면 술을 마신다. 난 그 반대이다. 좋으면 술을 마신다. 더 즐겁기 위해, 더 기쁘기 위해 술을 마신다. 힘들 때 술을 마시면 값싼 위로만 받는다. 마지막에 술을 많이 마셔 너덜너덜해질 뿐이다.
15. 힘들 때 술 마시는 것처럼 문학에 손을 대는 것은 문학이 술 정도의 가치라는 것이다. 술도 문학만큼 가치가 있다고 보는데. 사람들은 술을 마실 줄 잘 모른다.
16. 문학은 죽어가는 어린 아이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만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이라는 연못에 작은 돌을 던지는 작업이다. 조그마한 파문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이다. 그게 작가의 역할이다. 물론 작가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정체된 질서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면 다양하고 생명력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17. 이런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나 “튀어나온 말뚝은 맞는다.”는 말이 많이 통용된다면 죽은 사회이다. 그래도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왜 남을 신경 쓰는가? 밥벌이가 어렵다고, 아니다. 밥이야 먹고 살 수 있다. 굶어죽지는 않는다. 영혼까지 팔면서,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까지 흔들려고 한다면, 힘이 세건, 돈이 많건 저항해야 한다.
18. 우리 사회는 경쟁이 심한 탓에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은 고삐 풀린 말처럼 나보다 못한 ‘을’을 찾아 ‘갑 질’로 질주한다.
- 인간은 동물로 태어났다. 즉 본능과 욕망의 노예이다. 지성이나 이성이니 하는 것은 타고난 게 아니다. 동물은 일은 남한테 시키고 이득은 가로채는 따위 야비한 짓을 안 한다. 동물은 못된 꾀를 부리지 않는다. 반면 인간은 어중간한 만듦새로 나왔다. 그게 인간의 비극이다.
- 인간의 뇌는 세 층이다. 동족도 먹어치우는 파충류 뇌, 거기에 제멋대로인 원숭이 뇌를 덧썼고, 가장 위에 높은 지능의 뇌가 있다. 근데, 이 세 층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위의 뇌는 쓰지 않고 파충류의 뇌와 원숭이의 뇌만 쓰며 평생을 산다.
-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지능적인 뇌를 최대한으로 쓰며 산다는 것이다.
- 인간답다는 말은 두 가지의 뜻으로 쓰인다. 1) 인간은 약하니까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 한다. 2) 인간은 약하지만 강하게 뚫고 나가야 한다.
19. 동물로서의 삶을 멈추고,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뇌를 한껏 쓰는 것이 진정한 인간다움이라고 본다. 그리고는 약자인 척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자신이 이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이것이 나구나’라고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이성은 길러진다.
20. ‘위대한 개인’이 되어, 그 개인들이 이성을 갖추고 함께 모여 결정해나간다면 서로 억압하지 않는 국가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21.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는 없다.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권력은 특정 소수의 동맹들이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이득을 보는 데 앞장선다. 그러나 인터넷을 이용해서 국가를 정치가를 초월할 수 있다. 단체를 조직하여 회장이나 회칙을 만들지 말고 서로 소속감을 가지고 활동 할 수 있다.
22.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성실하게 살다가 어쩔 도리가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이 되었을 때는 태도를 바꾸면 된다. 인생을 지나치게 무겁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모든 것을 백지로 되돌리고 나서 다시 해보는 것이다. 길이 있다고 주문을 외듯 가능성을 질문하다면 삶이 더욱 단단해진다. 사회를 부정하기보다 권위라는 허울에 빠져 본질은 못 본 채 스스로를 잃고 마는 우리를 깨우는 삶의 전략으로 보인다. 허세를 버리고 마음으로 직면하는 것이다. 인생 한번 부딪쳐 보는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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