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걸리버 여행기>>

3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이사장 최진석)의 <책 읽고 건너가기>를 나는 잘 따라 오고 있다. 다음 달부터는 우리마을 10대학이 주관하여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선정된 책을 읽고, 그 책을 리-라이팅하고, 최진석과 고명환이 하는 책수다에 참여할 생각이다. 어제 저녁에 2월의 책인 <이솝우화> 북 토크가 있었다.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를 했고, 그걸 유튜브를 통해 다시 들을 수 있다. 이번에 8권 째이다. 다음 3월은 어떤 책이 선정될 지 궁금하다. 이젠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고, 5인 이상 집합금지가 풀리면, 우리마을10대학을 중심으로 선정된 3월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눈 후, 함평에 있는 최진석 교수의 집 <호접몽가>에도 꼭 가볼 생각이다. 마침 그곳 소고기가 일품이라니, 맛 기행도 함께 할 생각이다.

지난 달은 <걸리버 여행기> 였다. 그 책에서 걸리버의 운명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저자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운명인 것이다. 소위 이런 고전을 쓰려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가 요구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1) 여행을 통해 새로운 곳으로 건너 가려는 끈질긴 욕구와 기질 (2) 축적된 엄청나고 다양한 지식의 두께 (3)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사랑과 사랑하는 마음에서 발견된 문제 의식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고 싶은 사명감. 3박자가 갖추어 져야 한다고 나는 보았다. 최진석 교수도 고명환과 함께 했던 <북 토크>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제 <이솝우화>에 대한 북 토크에서 들은 말이다. 여행하는 자와 이야기 하는 자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다 건너가기를 꿈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2월 23일에 이어, <걸리버 여행기>에서의 여행과 독서의 관계를 오늘 아침 한 번 더 하려 한다. 마침 <걸리버 여행기>를 다시 읽는 것과 같은 최진석 교수의 독후감을 다시 읽어 가며 글을 쓸 생각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의 정의는 알베르 까뮈가 말한 "정신의 소독"이라는 것이다. 요즈음 말로 하면 소독보다는 방역이 더 와 닿는다. 최진석 교수는 "여행의 한 형태가 독서라"고 했다. 오늘 아침 시에서 처럼, 책을 읽으며,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 말이 "여행"이 아닐까? 난 그 여행의 정의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 동네에는 '여행'이란 카페가 있는데, 그곳의 정의 "여우로운 행복"을 줄인 것이란다. 좀 건조하다. 나는 '여기서 행복'을 줄인 여행이라는 정의가 더 좋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 자신이 대단한 여행자였지만, 걸리버를 만나는 우리도 여행과 책읽기를 동시에 하게 된다.

최진석 교수에 따르면, "여행과 독서는 똑같이 나를 생경한 다른 환경으로 몰아넣고서 흔들리게 한 다음, 결국 나를 만나게 한다"고 했다. 살면서, 중요한 것이 나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기를 만난 자가 '자유로운 자'라 한다. 여행지에서는 누구나 자유롭다. 걸리버는 소설 속에서 말한다. 자유롭지 않을 "후손을 남기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 또 떠나고 또 떠난다. 자유로운 자신을 만나지 않으면 인생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본다. 걸리버의 가장 큰 장점은 매번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편안한 집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심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사실 살아있는 자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걸리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낯선 나라를 보고 싶은 줄기찬 욕망 때문에 더 이상 체류할 수 없었다. 걸리버는 지난 여행에서 "겪은 불운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목마름"에 항상 들떠 있었다.

여행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출발지와 목적지가 있는 ‘가짜’ 여행과 출발지와 목적지에 집착하지 않는 ‘진짜’ 여행. 후자는 여행 도중에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다. 출발지와 목적지의 노예가 아니라, 매번 목적지와 출발지를 만드는 주인공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도 여행이다. 한번밖에 없는 소중한 삶을 제대로 살려면, 우리는 과거와 미래, 출발지와 목적지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아침 시처럼, 모든 요일이 여행이어야 한다.

모든 요일의 여행/김민철

예전 책에
‘여기서 행복할 것’
이라는 말을 써 두었더니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 의 줄임 말이
‘여행’ 이라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걸리버 여행> 소설 이야기로 돌아 온다. 최진석 교수는 "여행은 강력한 지적 탐험이"라고 했다. 어딘가로 떠나서 자신을 낯설게 하려는 인위적 활동은 그것 자체가 편안히 쉬고 싶은 감각과 출발 직전의 불안을 극복한 매우 지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소설 속의 걸리버에게는 이런 소양이 있었고, 또 이런 소양을 키우고 지킬 수 있는 진실성과 성실성이 있었다. 그러니까 걸리버는  여행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걸리버는 "여가 시간이면 고대와 현대의 최고로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걸리버는 어디를 여행을 하든 그 나라의 언어나 풍습이나 기질에 관심을 두었다. 시간과 공간을 막무가내로 소비하지 않았다.

반대로 건너가기를 멈추고, 제 자리에 서 있는 자는 여행을 가지 않거나 책을 읽지 않는다. 한자리에 멈춰선 채 진영에 갇혀 굳건한 '우리'를 만든 다음 끼리끼리 공유하는 믿음에 기대 살 뿐이다. 생각은 멈추고, 적대감은 커진다. 갈라진 진영의 상대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경멸을 표시"하는 일 외에 할 일이 없다. 이런 사람들을 나는 주변에서 많아 본다. 우리의 현실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블로그로 옮긴다. 최근에 막 둥지를 튼, '토종' 카카오 티스토리 블로그에 많이 찾아 주시면 좋겠다.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디지털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김민철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