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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춘래불래춘(春來不來春)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는 채효정(경향신문, <세상읽기>누가 우물에 독을 풀었나. 2020, 2월 25일자)이란 분의 칼럼에서, 그녀가 했던 질문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1) 왜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가 아니라 종교에서 구원을 찾는가? (2) 왜 장애인과 노약자들은 폐쇄병동에서 일생을 보내야 하는가? 새로운 사회문법이 필요하다.

그녀는 이렇게 글의 끝을 냈다. "병든 닭을 10억마리씩 소비하고, 매년 500만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하는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재난이 그 일상을 중단시키면 사람들은 비로소 묻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 존재인지,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 재난은 함께 살자는 물음을 가지고 돌아오는 추방자들의 귀환이자, 일상을 중단시키는 ‘자연의 파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면, 자연은 계속 더 강력한 경고를 보낼 것이다. 우리 공동의 세계에 풀려진 독은 무엇이며, 어디서 온 것인가? 과잉생산, 과잉소비, 거대한 낭비 위에 굴러가는 성장의 경제를 멈추지 않으면 재난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너무 오래 감염되어 있었다."

우리는 남 탓을 하기 전에, 다시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코로나19로 시작된 세상과의 단절로 인해, 우리는 SNS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다. 이런 위기의 상황이 되면,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자신이 하는 말 속에서 평소의 생각이 드러난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한다. 특히 언론은 아무 말이나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러니 오늘은 우리들의 고전, 노자의 『도덕경』에서 말하는 '길(도道)을 찾아보자. 제56장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지자불언(知者不言), 언자부지(言者不知)".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된다. 말하는 사람은 실제로 배우지 못한다.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할 뿐이니까. 어렵다. 『도덕경> 제1장에 말하고 있는 "도(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도가 이러니 저러니 하고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은, 떠드는 그 자체로 도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도를 공부하여 아는 사람은 힘들여 자기주장을 내 세우지 않는다.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면 도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이어지는 그 다음 문장들도 이 시국에 많은 지혜를 준다.
새기태 塞其兌 폐기문 閉其門
좌기예 挫其銳 해기분 解其分
화기광 和其光 동기진 同其塵
시위현동 是謂玄同
도를 아는 사람은 입을 다물고, 문을 꼭 닫습니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을 풀어 주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신비스러운 하나됨(현동玄同)'입니다.

항상 욕망을 통제하여, 남을 이용하거나 이기려 하는 마음을 누르고, 더 나아가 총명한 빛을 깎고 누그러트려 분수상 자기를 더럽히는 자들과 함께 어울린다. 이것이 도를 알고 세상과 함께 하는 묘한 지혜이다. 도(길)을 아는 사람은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을 풀어 주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티끌과 하나가 됩니다." 즉 날카로움, 뒤엉킴, 번쩍거림 등과 같이 한 쪽으로 치우치는 대립 행위를 하지 않고, 오로지 '티끌과 하나가 되는" 조화와 균형과 일치의 삶을 유지하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균형을 찾는 중용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현동(玄同)"하라고 한다. 이 "신비스런 하나됨(현동玄同)"'이라는 말이 매우 흥미롭다. 이 말은 도 안에서 만물과 하나되는 천지인 합일의 경지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어떻게? "화광동진(和光同塵)하라"고 한다. 이 말은 "영특한 재주나 광채 나는 비범한 성품을 누그러트리고 숨겨 평범한 모습으로 어울려 무리와 세상을 함께 하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냥, 어제의 글처럼, 살자, 나누자, 용서하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같지 않구나)인가? 아니면 춘래불래춘(春來不來春, 봄은 왔으나 내 마음 속에는 봄이 오지 않는구나)인가? 오늘 저녁은 우리 동네 <연래춘(燕來春)> 중국 요리집에서 먹을 생각이다. '연래춘'도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만든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만들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19는 잡힌다. 아니면 더 번진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 번주 안으로 해결된다'에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내 "이름", 한표를 던진다. 왜냐하면 바이러스는 많이 퍼지면 약해진다고 하니까. 어제 저녁 와인 마시면서, 친구 의사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이름/이우걸

자주 먼지 털고 소중히 닦아서
가슴에 달고 있다가 저승 올 때 가져오라고
어머닌 눈감으시며 그렇게 당부하셨다
가끔 이름을 보면 어머니를 생각한다
먼지 묻은 이름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내 이름을 써 보곤 한다
티끌처럼 가벼운 한 생을 상징하는
상처 많은, 때묻은, 이름의 비애여
천지에
너는 걸려서
거울처럼
나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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