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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천지불인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2월 25일)

오늘은, 지난 2월 22일에 이어, 노자 <<도덕경>> 제5장의 다음 문장을 좀 더 깊게 들어가 본다. ① 天地不仁(천지불인) 以萬物爲芻狗(이만물위추구): 하늘과 땅은 무심하다.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 ② 聖人不仁(성인불인) 以百姓爲芻狗(이백성위추구): 성인도 무심하다.  백성들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  우리는 "천지불인"을 천지의 운행이나 활동, 그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감이나 바램과 무관하게 그 나름대로의 생성법칙과 조화에 따라 이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좀 야속하고 때로는 무자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과 땅 그리고 성인들로 대표되는 도(道)를 인간적 감정에 좌우되어 누구에게는 햇빛을 더 주고, 누구에게는 덜 주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도올에 의하면, 우주는 스스로의 힘에 의해 창진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창진(創進)"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우주는 인간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도 스스로 창조하며 나아간다는 거다. 그것은 나 인간과 무관하게 자신의 생성과 파괴의 조화를 전개해 나간다는 거다. 그러면서 도올은 소철의 <<노자익>>에 나온 주를 소개하였다. "천지는 사사로움이 없다. 그래서 만물의 스스로 그러함을 들을 줄 안다. 그러므로 만물은 스스로 생하고 스스로 죽는다. 내가 학대한다고 죽는 게 아니고, 내가 인자하게 사랑한다고 사는 게 아니다." 노자가 꿈꾸는 이상적인 인간, 성인도 그렇다고 본다.

그래 하늘과 땅, 천지 불인(不仁)하여 만물을 "추구(芻狗 )"로 삼고, 성인도 불인하여 백성을 "추구"로 삼는다는 거다. "추구"는 제사 때 사용하는 풀로 만든 개이다. 제사 때만 의례용으로 사용하다가 제사가 끝나면 버려버리므로 제사 후에는 아무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장자>>의 "천운"에 나온다. 도올의 "그 카이로스가 아니면 그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설명이 멋지다. 사람들이 제사 후 추구를 대하듯이 천지 자연은 그렇게 무심하게 만물을 대한다는 뜻이다. 천지가 만물을 소홀히 함부로 대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자신의 의지가 개입됨이 없이 무심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왕필은 추(芻, 꼴 추)와 구(狗, 개)를 독립된 두 단어로 보고 자연의 먹이사슬관계로 해석했다. "땅이 짐승을 위해 풀을 생하는 것이 아니지만 짐승이 풀을 먹고, 사람을 위하여 개를 생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먹는다." 그것이 목적론적인 생성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였다.

도(道)는 우리의 변덕스러운 이기적 요구 사항에 좌우되지 않으므로  오직 한결같은 도의 근본 원리에 우리 자신을 탁 맡기고 쓸데없이 안달하지 않는 태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고가 만물을, 그리고 모든 사람을 제사 때 한 번 쓰고 버리는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한다는 것은 이런 한결같은 관계를 더욱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 자신도 천지의 입장에서 보면 "추구"이다. 그러면 늙고 죽는 게 무섭지 않다.

인(仁)이란 유가(儒家)에서 떠 받드는 최고 덕목인데, 노자는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 도가 "인하지 않다"고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가능하다고 오강남은 말한다. '인'이란 도가 제대로 받아 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강조되는 법이라는 거다. 인간 상호 간의 관계를 인위적, 의식적으로 조화 스럽게 유지하려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인'은 결코 인간의 최고 덕목일 수 없다는 것이다. 도와 하나 되고, 자연과 인간이 모두 도에서 하나 되어 도덕적 요구 같은 것은 저절로 충족되므로 인(仁)이나 의(義)니 하는 윤리적 차원 따위는 모두 잊어 버리고 신경 쓰지 않는 상태가 최고라는 이야기이다.

어서 3월 9일이 지나갔으면 한다. '도'는 누굴 택할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치 교체이다.  야당은 맨날 바꾸자는 데 더 나쁘게 바꾸면 뭐하냐? 더 나쁜 정권 교체를 넘어 더 나은 정치 교체를 향해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내가 더 걱정하는 것은 다음의 문제이다. 정권 교체를 외치는 야당 후보는  "임기 5년짜리가 건방지게 겁이 없다"고 말했다. 감히 선출 권력으로부터 임명 받은 임명 권력이 겁대가리 없이 건방지게 국민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군사 정권보다 더 심각한 검찰 독재가 시작될 수 있다는 거다. 이게 더 심각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부패한 후보가 나와 정권 교체를 외친다. '묻지마 정권 교체'라 사람들은 부른다. 이것보다 정치 개혁이 더 급하다. 부패는 성실하게 사는 일반 국민을 절망하게 한다. '도'만 믿는다.

그래 오늘 아침 <오래된 기도>라는 시를 공유한다. 세상이 이렇게 험하고 살벌해진 건 기도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 아닐까? 좀 더 겸손하면서 타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아쉽다. 그래도 기도를 하자. 시인처럼.

오래된 기도/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 가의 이름을 불러 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 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 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 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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