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인터뷰를 읽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 문학은 사회구조의 모순을 갈고리로 찍어 올리듯이 꿴다. 기계를 사용하지 못하면, 일을 못하는 현대인들이 되었다. 왜냐하면 일을 많이 해야 생계를 유지하니 빚을 내서 그 기계를 사고 그 빚 때문에 번 돈은 다시 은행으로 간다. 그래 돈 없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늘 허덕인다. 이게 사회 부조리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현대의 편리 속에서 계속 고통 받는 이유이다. 그러니 편하게 하지 마라. 불편하고 힘들어도 그렇게 살면, 그런 식으로 살게 되고, 빚은 안 진다.
# 그리고 가난과 결핍에 대한 분노는 더 만만해 보이는 약자를 찾아 왕따와 폭력이 된다. 왜? 열등감과 자기과시는 그 뿌리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 공격적인 방법으로 자기 방어를 한다. 인간은 동물로 태어난다. 인간으로 죽을 수 있을지는 각자의 노력에 달렸다. 대부분 동물로 태어나서 동물로 죽는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교양을 갖춰야 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는 일은 교양이 아니다. 인간이 되기 위한 지식, 인간이 되기 위한 교양이 필요하다.
# 국가가 교양과 지식을 강요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가의 편의에 부합하는 지식, 국가의 편의에 부합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교양을 강요한다. 국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제동을 거는 국민이다. 반면 국가는 급여가 낮아도, 해고를 당해도 불평하지 않는 노동자, 전쟁을 할 테니 목숨을 내놓으라고 해도 순응하는 국민을 좋아한다. 국가는 지배계급을 위해 움직인다. 모든 국가에서 지배계급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은 부수적인 존재, 바로 노예일 뿐이다. 그런 국가를 국민 대부분은 조국이라고 착각한다. 국가가 착각하게 조장한다. 한국에서의 국가는 자본가, 즉 재벌이다. 자본에 밀린 사람은 국적을 불문하고, 사회적으로 죽는다. 그걸 막는 것이 인문운동가의 역할이다.
# 우리는 다들 결정을 내릴 때 '자기 의지'라고 한다. 그러나 일이 터지면 국가나 조직, 동료의 생각에 휘둘린다. 개인은 명민한데, 진영 논리에 사로잡힌다. 인간은 유명인의 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언론이나 방송에서 같은 말을 뒤풀이 하면 시나브로 세뇌 당한다. 그 점을 늘 성찰해야 한다.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반드시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겠지만, 늘 의심하고 질문하며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다.
# 세뇌 당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답을 얻으려면 전체 판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전체가 아니라 한 지점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아마추어는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가늠하려 하지만, 프로는 출구 하나만 응시한다. 전체를 보겠다고 두리번거리면 시선이 애매해 진다. 지점 하나가 중요하다.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가장 중요한 한 점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그 지점이 우리 마음을 단단히 다잡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온갖 책을 보며, 뭔가 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사실 아무 것도 모른다.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찬찬히 들여 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깊게 만나야 한다. 그래야 그를 통해 세상을 읽어낼 수 있다. 국가가 흘려 보낸 '데마고그(선동)'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과 마음으로 사귀어야 한다. 서재나 상아탑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배운 앎이 진정한 교양이고 공부이다.
# 그 한 점은 무엇일까?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그것만은 지키겠다는 것이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 우리는 그것에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마루야마 겐지는 권력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자유이다. 나를 구속하는 일체의 것을 비판하고 그것에 난 저항한다. 인문운동가는 국가가 부여하는 모든 권위, 예컨대 무슨 상 따위들을 거부한다. 인문운동가는 음지식물이다. 음지식물은 빛을 많이 쬐면 말라버린다. 이때의 빛은 명예, 돈 같은 것들이다. 물론 우린 사회적 동물로, 서로 주고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너무 의존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위대한 개인으로 자신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조직이나 집단에 편입되어 자신을 잊고 개인을 버린다. '나’라는 개인으로 돌아와야 한다.
# 마루야마 겐지는 자기 스스로를 잃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작가는 독자를 위로하고, 거기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값싼 위로일 뿐이다. 일시적인 안심일 뿐이다. 작가는 독자를 현실에서 빼내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현실로 쑥 들이밀어야 한다. 나는 오늘 아침 '내 존재 의미가 무엇인가?' 질문한다.나는 어차피 내던져진 내 삶을 행복하게, 아름답게, 즐겁게 살다가 소리 소문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그러나 내가 만난 사람들이 나로 인해 더 행복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즐거워진다면 좋겠지만, 안 되면 할 수 없다. 나라도 그렇게 살다 가면 된다. 내 존재 의미는 뭐 특별히 다른 것이 없다.
# 문학은 죽어가는 어린 아이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만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이라는 연못에 작은 돌을 던지는 작업이다. 조그마한 파문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이다. 그게 작가의 역할이다. 물론 작가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정체된 질서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면 다양하고 생명력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조그마한 파문'이란 표현 대신 나는 '틈'이란 말을 좋아한다. 견고한 질서에 '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인문운동가의 역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 “모난 돌이 정 맞는다"나 “튀어나온 말뚝은 맞는다"는 말이 많이 통용된다면 죽은 사회이다. 그래도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왜 남을 신경 쓰는가? 밥벌이가 어렵다고, 아니다. 밥이야 먹고 살 수 있다. 굶어 죽지는 않는다. 영혼까지 팔면서,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까지 흔들려고 한다면, 힘이 세건, 돈이 많건 저항해야 한다.
# 우리 사회는 경쟁이 심한 탓에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은 고삐 풀린 말처럼 나보다 못한 ‘을'을 찾아 ‘갑 질'로 질주한다. 인간은 동물로 태어났다. 즉 본능과 욕망의 노예이다. 지성이나 이성이니 하는 것은 타고난 게 아니다. 동물은 일은 남 한테 시키고 이득은 가로채는 야비한 짓을 안 한다. 동물은 못된 꾀를 부리지 않는다. 반면 인간은 어중간한 만듦새로 나왔다. 그게 인간의 비극이다. 인간의 뇌는 세 층이다. 동족도 먹어 치우는 파충류 뇌, 거기에 제멋대로인 원숭이 뇌를 덧썼고, 가장 위에 높은 지능의 뇌가 있다. 근데, 이 세 층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위의 뇌는 쓰지 않고 파충류의 뇌와 원숭이의 뇌만 쓰며 평생을 산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지능적인 뇌를 최대한으로 쓰며 산다는 것이다. '인간 답다'는 말은 두 가지의 뜻으로 쓰인다. (1) 인간은 약하니까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 한다. (2) 인간은 약하지만 강하게 뚫고 나가야 한다. 어쨌든 동물 로서의 삶을 멈추고,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뇌를 한껏 쓰는 것이 진정한 '인간 다움'이라고 본다. 그리고는 약자인 척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자신이 이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이것이 나구나'라고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이성은 길러진다.
# 이런 상황에서 이란 질문을 해 본다. ‘위대한 개인'이 되어, 그 개인들이 이성을 갖추고 함께 모여 결정해 나간다면 서로 억압하지 않는 국가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마루야마 겐지는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는 없다"고 말했다.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권력은 특정 소수의 동맹들이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이득을 보는 데 앞장선다. 그러나 인터넷을 이용해서 국가를 정치가를 초월할 수 있다. 단체를 조직하여 회장이나 회칙을 만들지 말고 서로 소속감을 가지고 활동 할 수 있다.
# 마루야마 겐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그의 대답이다. 성실하게 살다가 어쩔 도리가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이 되었을 때는 태도를 바꾸면 된다. 인생을 지나치게 무겁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모든 것을 백지로 되돌리고 나서 다시 해보는 것이다. 길이 있다고 주문을 외 듯, 가능성을 질문한다면 삶이 더욱 단단해 진다. 사회를 부정하기보다 권위라는 허울에 빠져 본질은 못 본 채 스스로를 잃고 마는 우리를 깨우는 삶의 전략으로 보인다. 허세를 버리고 마음으로 직면하는 것이다. 인생 한번 부딪쳐 보는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문 산책 (0) | 2021.06.27 |
|---|---|
| 신해행증(信解行證)' (0) | 2021.06.27 |
| 자유에 대한 단상 (0) | 2021.06.26 |
| 시대정신 (0) | 2021.06.25 |
| 이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0) | 2021.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