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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도(道)의 가장 큰 속성은 비움(충, 沖)이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년 2월 22일)

어제까지 읽은 노자의 <<도덕경>>에 의하면, 도(道)의 가장 큰 속성은 비움(충, 沖)이다. 빈 그릇, 빈 방처럼 도에는 내용물이 차 있지 않고 비어져 있다. 비어 있기 때문에 만물의 시작, 으뜸,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거다. 빈 그릇에는 무슨 음식이든 다 담을 수 있고, 빈 방에는 무슨 물건이든 다 가져다 놓을 수 있다. 그릇에 물이 담겨 있거나 방에 물건들이 가득 차 있으면 나머지 것들은 모두 배제된다. 더 이상 수용될 수 없다. 따라서 '도'는 배제가 아니라 수용이다. 그 어떤 것도 내치지 않고 무조건 다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자궁은 비어 있기 때문에 생명을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는 거와 같은 이치이다. 빈 타석, 빈 자리도 이 같은 형태로 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타석이 비어 있어야 타자가 들어설 수 있고, 경기는 진행된다. 자리는 비어 있기 때문에 앉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점유된 자리는 앉음이라는 도의 실체, 내용물을 생산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비우면 비로소 세상이 보이고, 비우고 나면 다시 무언가 채워진다.  마음과 물질이 아닌 영혼 깊이 모두를 비워내다 못해 긍휼과 사랑으로 가난하게 되어야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재물이  부자인 사람은 근심이 한 짐이고,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행복이 한 짐이다. "천국과 지옥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이다.

이게 <<도덕경>> 제4장의 말이다. 제5장에서도 도의 가장 큰 속성인 비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5장의 원문을 읽어 본다.
① 天地不仁(천지불인) 以萬物爲芻狗(이만물위추구): 하늘과 땅은 무심하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 (만물을 풀 강아지처럼 다룰 뿐이다.)
② 聖人不仁(성인불인) 以百姓爲芻狗(이백성위추구): 성인도 무심하다. (성인은 인자하지 않다.) 백성들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 (백성을 풀 강아지처럼 다룰 뿐이다.)
③ 天地之間(천지지간) 其猶槖籥乎(기유탁약호):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와 같다.
④ 虛而不屈(허이불굴) 動而愈出(동이유출) : 비어 있으나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 더 많은 것을 생성시킨다. (속은 텅 비었는데, 찌부러지지 아니하고 움직일수록 더욱 더 내뿜는다.)
⑤ 多言數窮(다언삭궁) 不如守中(불여수중) : 말이 많으면 처지가 궁색해진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만 못하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지네. 그 속에 지키느니만 같지 못하네.)

이를 오강남 교수는 다음과 같이 시처럼 해석을 한다.

하늘과 땅은 편애(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집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
성인도 편애하지 않습니다.
백성을 모두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의 바람통
비어 있으나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더 내놓는 것

말이 많으면 궁지에 몰리는 법.
중심(中)을 지키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

첫 문장 "天地不仁(천지불인)"을 말 그대로 읽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천지는 인하지 않다." 이보다 "하늘과 땅은 편애하지 않는다"고 하면, 좀 알듯 모를 듯 하다. 나는 "하늘과 땅은 무심하다"는 해석이 제일 마음에 든다.

"天地不仁(천지불인)"과 "聖人不仁(성인불인) "은 노자의 사유체계를 대변 하는 문장으로 자주 인용된다. 도올의 강의를 들어 보면, 여기서 말하는 '불인(不仁)"의 "인(仁)"은 반드시 유가사상을 전제로 해서 하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도올은 인(仁)이라고 하는 것은 유가적 개념이라 말하기 전에 그냥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말로서 이해하는 게 좋다고 했다.

오강남 교수는 하늘과 땅 그리고 성인들로 대표되는 도(道)는 인간적 감정에 좌우되어 누구에게는 햇빛을 더 주고, 누구에게는 덜 주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 상호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 갈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 그는 "하늘과 땅은 편애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도올에 의하면, "천지불인"은 천지의 운행이나 활동, 그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감이나 바램과 무관하게 그 나름대로의 생성법칙과 조화에 따라 이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좀 야속하고 때로는 무자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좀 더 명쾌하게 이해가 된다. 도올은 천지불인에 대한 왕필의 주석을 소개하였다. 좀 길지만, 천지와 성인, 즉 '도'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공유한다.

"천지는 항상 스스로 그러함(自然)에 자신을 맡긴다. 천지는 억지로 함이 없고 조작함이 없다. 그래서 천지가 생하는 만물도 스슬 서로의 관계 속에서 질서를 형성해 나간다 그러므로 불인(不仁)하다고 말한 것이다. 인(仁)하다고 한다면, 반드시 조작적으로 세우는 것이 있고, 베풀어 변화를 주게 된다. 그리고 은혜가 있고 만들어 줌이 있게 된다. 조작적으로 세우고 베풀어 변화를 주게 되면 사물은 진정한 본래 모습을 상실하게 된다. 은혜가 있고 만들어 줌이 있으면 사물은 자력에 의하여 온전하게 존속되지 못한다. 자력에 의하여 온전하게 존속되지 못하면 천지는 구비된 조화를 이룰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천지는 인간의 힘을 빌리지 아니한다는 거다. 천지 그리고 성인들로 대표되는 도(道)는 한결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를 향해 나를 더 사랑해 달라고 조르거나 간구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니 도는 우리의 변덕스러운 이기적 요구  사항에 죄우되지 않으므로 오직 한결같은 도의 근분 원리에 우리 자신을 탁 맡기고 쓸데없이 안달하지 않는 태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인(仁)을 '사랑'이란 말로 바꾸면, 그 '사랑'이 힘든 거다. 그러나 고 신영복 교수님은 "배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거고,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는 보는 것"이라 말씀 하셨다. 오늘의 시를 공유한 다음, 그 '인(사랑)'의 문제를 좀 더 길게 사유해 본다.

사람은 사랑한만큼 산다/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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