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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청룡의 푸른 기상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한 해를 소망해 본다.

258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월 1일)

다사다난했던 계묘년(癸卯年)이 저물고 갑진년(甲辰年)의 태양이 시작된다. 2024년은 푸른색의 '갑(甲)'과 용을 의미하는 '진(辰)'이 더해진 청룡(靑龍)을 의미하는 해이다. 푸른 용의 기운이 넘치는 새해를 맞아, 뜻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더욱 풍요롭고 여유로운 한 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청룡의 푸른 기상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한 해를 소망해 본다.

우리에게 용은 매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예로부터 자비와 길조의 상징으로 묘사되곤 했다. 고구려 벽화 사신도에 나오는 청룡은 동방의 수호신으로 사신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도 전해진다. 용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여러 전설과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악어나 도마뱀, 공룡이 그 원조로 추측되는데, 중국 문헌들에 의하면 ‘낙타 머리, 사슴 뿔, 토끼 눈, 잉어 비늘, 매 발톱, 호랑이 주먹’ 등 아홉 가지 동물을 닮은 것으로 묘사된다. 

우리에게 용은 재앙을 물리치고 갖은 조화를 부리는 신통한 존재다. 왕이나 절대권력을 용에 빗댔다. 왕이 앉는 평상은 ‘용상(龍床)’, 왕의 얼굴은 ‘용안(龍顔)’이다. 신라 문무왕은 죽어서 바닷속 대룡이 돼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고, 백제 무왕과 고려 태조 왕건은 스스로 용의 자손이라고 했다. 민간에선 용왕에게 만선과 무사 귀환을 기원하고, 용 그림을 가까이 두고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바랐다. ‘용’자가 들어간 지명이 1000개가 넘는다. 우리 민속문화 속에 뿌리내린 용의 흔적들이다.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갑진년'이 '푸른 용의 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육십간지(六十干支)' 혹은 '육갑'이라고도 일컫는 육십갑자(六十甲子)는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가 결합한 60개의 간지(干支)를 의미한다. 하늘의 기운을 뜻하는 10개의 천간은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갑과 을은 푸른색, 병과 정은 붉은색, 무와 기는 노란색, 경과 신은 하얀색, 임과 계는 검은색을 상징한다. 반면 땅의 기운을 상징하는 12개의 지지는 주로 '띠'라고 불리는 동물인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로 상징된다.

따라서 한 해의 육십갑자는 12개의 지지와 10개의 천간을 순차적으로 조합해 이루어진다. 즉, 2024년은 육십갑자의 41번째 푸른색의 '갑'과 용을 의미하는 '진'이 만나 청룡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 철학에서 갑(甲)은 10개의 천간 중에서 첫 번째로 시작을 의미한다. 즉 갑진년은 10년을 계획하고 새로 시작하는 해다. 새로 시작하는 것은 기존의 것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리뉴얼보다는 부수고 새로 짓는 리빌딩의 의미가 강하다. 힘찬 용띠 해 아침, 경제 전문가들은 2024 한국 경제를 ‘용문점액(龍門點額)’이라는 다소 유보적인 키워드로 예측했다(대한상공회의소 조사). ‘용문’ 아래 물고기가 뛰어올라 문을 넘으면 용이 되지만, 넘지 못하면 문턱에 이마를 찧고 떠내려간다는 뜻이다. 올해가 우리 경제의 미래를 가를 변곡점이라는 이야기인데, 한 발만 삐끗하면 '용'이 아닌 '이무기(상상의 동물로 용이 되기 전 상태의 동물)' 신세일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용문’은 중국 황허의 급류 지대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일상에서 ‘용 되었네’라는 말로 출세를 의미하는 말이 있다. 이는 등용문에서 시작된 말이다. 옛날 중국 황하강 상류에 물살이 너무 세서 고기들이 상류로 거슬러 이동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용문이라는 협곡이 있었다. 그래서 그 협곡을 어렵게 통과한 물고기는 용으로 변하여 승천한다는 전설에서 ‘등용문’이란 고사가 생겼고, 합격하기 힘든 시험이나 고시를 의미하게 되었다.

올해는 지역의 ‘용’들을 뽑는 총선의 해이기도 하다. 아직도 마음 둘 곳을 못 찾은 중간지대 국민이 상당수고, ‘A가 좋아서’가 아니라 ‘B가 싫어서 A를 찍는’ 비호감 선거가 재현될 우려도 여전하다. ‘386 퇴진, 789 세대교체’를 내세운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에 이어 민주당이 어떤 변신 카드로 ‘대표 사당(私黨)’이라는 오명을 벗을지, 진영논리의 덫에 빠진 정치가 실제 우리의 삶을 바꾸는 희망이 될 수 있을지, 3지대는 진정한 대안일 수 있는지, 남은 넉 달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정치의 계절을 맞으면서 ‘항룡유회(亢龍有悔)’란 말도 떠오른다. 하늘 끝까지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으니, 높은 지위에 올라 겸손과 소통을 모르면 실패를 면치 못한다는 의미다. 용산(龍山)의 '용'이든, 지역의 '용'이든 국민 앞에 나서서 권력을 부리는 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항룡(亢龍)’은 물속의 ‘잠룡(潛龍)’에서, 세상에 나오는 ‘현룡(見龍)’, 비상하는 ‘비룡(飛龍)’을 거쳐 더는 오를 곳 없이 올라간 단계다. 만족을 모르고 욕심을 부리면 일을 망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우리 같은 범부들도 이 아침 함께 새기면 좋겠다.

갑진년의 갑(甲)이 지닌 동쪽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작을 상징하며, 청색은 푸르름으로 건강미 넘치게 새로이 시작하는 역동의 모습이다. 물론 새로 시작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지닐 수 있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해처럼 희망을 품고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기존의 질서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계묘년이기 때문에 갑진년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존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만 집착하면 향후 10년의 미래에 뒤처질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진(辰)은 오행으로 '토'에 해당하며 천간 목(木, 나무)의 기운인 감(甲) 목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지지기반이 되기도 하고, 감(甲) 목(木) 입장에서는 진(辰) 토(土)를 경작하는 '소토(燒土)'의 의미도 지닌다. '소토'란 경작의 의미로 새로운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을 갈아엎는 것이다. 즉 유행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기반을 만들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면에서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10년의 시작을 꿈꾸어 보는 것이 2024년 갑진년 푸른 청룡의 해다. 더불어 지난 것들을 털어버리고 소토하여 밭을 새롭게 갈아엎는 수고를 필요로 한다. 모든 이들이 갑진년 새해에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한다.

전통 사찰에 가면 대웅전 처마 끝에 용머리가 종종 보인다. 불교에서 용은 고통의 바다(苦海)인 현실 세상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으로 건너게 해주는 영물로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배의 역할을 한다. 대웅전 앞에는 용머리가 있고 뒤에는 용꼬리가 있어서 대웅전 법당 자체가 하나의 배를 의미하며 그 배를 타고 고해를 건너 피안으로 간다는 의미를 지닌다. 어떤 사찰은 법당 앞에 놓인 계단 입구에 용머리가 조각돼 있다. 더불어 뒤쪽에도 용꼬리가 조각돼 있고 법당을 포함한 그 전체 마당까지 모두 배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용은 바다에서 하늘로 오르듯이 고해인 현실 세계에서 피안으로 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의미가 무속 신앙으로 들어가서 굿의 마지막에 배가 나타나며, 그 배에 영혼이 타고 극락으로 간다는 의미로 '용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용'은 동아시아의 생활이나 의식 속에서 무한한 긍정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이는 'Dragon'이라 불리는 서양의 '용'과는 완전히 다르다. 동양의 ''용은 수호신이며 물을 관장하고 농사에 필요한 비를 적절하게 뿌려주는 인간에게 이로운 상징인 반면, 서양의 '용'은 인간을 괴롭히는 괴물의 상징이다. 서양에서 어둠과 악의 상징인 '용'을 퇴치하면 영웅이 되는 반면, 동양에서는 정의와 수호의 상징인 '용'의 보호를 받으면 영웅이 되었다. 이렇듯이 '용'의 보호를 받은 영웅은 다시 '용'처럼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하는 숙명을 지니게 된다. 그렇게 '용'은 임금을 상징하게 되었다. 왕은 군림하기보다는 '용'처럼 무궁한 능력으로 승천하여 하늘에 오르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변화무쌍과 천변만화는 '용'의 능력을 표현하는 용어다. '용'들 중에서 가장 젊은 '청룡'은 늙은 '황룡'보다 더욱 생동감 넘치기 때문에 더욱 변화무쌍하다. 갑진년 '청룡'은 더욱 변화가 심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모두가 용이 물을 만나 힘차게 날아오르는 ‘교룡득수(蛟龍得水)’를 꿈꾸지만, 세상에는 '용'보다 '용'이 못 된 '이무기' 같은 존재가 더 많다. '이무기' 전설은 동양에만 있고, '용'이 못된 억하심정으로 심술을 부리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종종 착한 '이무기'들도 있다. 전설에 따르면 물속에서 1000년을 기다린 '이무기'가 승천하려 할 때 마주친 사람이 “용이다”고 하면 용이 되고, “뱀이다”고 하면 천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용'이라 불러줘야 '용'이 될 수 있다는 호명과 구원의 서사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 남의 방해나 도움 부족 등 주변의 영향으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전설도 많다.

흥미롭게도 ‘민족의 젖줄’ 한강의 발원지인 태백산 ‘검룡소(儉龍沼)’에도 '이무기' 전설이 있다. ‘검룡’이란 검소한 용, 즉 부족해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가리킨다. '검룡소' 아래 암반의 긁힌 자국은 하늘로 오르려 발버둥치던 '이무기'의 발톱 자국이라고 전해진다. '이무기'의 한과 아픔을 아는 민족이라는 얘기겠다. 새해에는 ‘실패의 아이콘’ '이무기'들이 다시 힘을 얻고, 설혹 만년 '이무기'라도 서로 감싸 안는 넉넉한 세상을 꿈꿔 본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의 글에서 얻은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기도의 사람", "희망의 사람', "사랑의 사람", "평화의 사람" 그리고 "기쁨의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며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공유한다.

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이해인

평범하지만
가슴엔 별을 지닌 따뜻함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신뢰와 용기로써 나아가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월의 보름달 만큼만 환하고
둥근 마음 나날이 새로 지어 먹으며
밝고 맑게 살아가는
"희망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너무 튀지 않는 빛깔로
누구에게나 친구로 다가서는 이웃
그러면서도 말보다는
행동이 뜨거운 진실로 앞서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오랜 기다림과 아픔의 열매인
마음의 평화를 소중히 여기며
화해와 용서를 먼저 실천하는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새롭게 이어지는 고마움이 기도가 되고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아 지루함을 모르는
"기쁨의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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