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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 있어야 건강한 국가가 된다.

인간은 자신의 양심의 존재를 모르거나 그것을 방치하면, 다른 사람들이 정해 놓은 규율에 쉽게 복종한다. 그 이유는 지적으로 게으르거나, 남들이 다 그러기 때문이다. 아니면 인간의 또 다른 본능인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소로(19세기 미국 사상가)의 말에 따르면, 단체(국가, cprporation)는 양심이 없다. 그러나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국가)는 양심을 소유한다. 법은 결코 인간을 정의롭게 만들지 못한다고 했다. <시민불복종>>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시민들이여, 당신들은 자신의 양심을 포기하고 국가의 법을 따릅니까? 저는 '인간(men)'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런 후 누구의 종속을 받는 자(subject)가 될 수도 있습니다. 법에 대한 존경을 장려하는 문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제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의무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언제라도 하는 것입니다."

숙고로 무장한 양심이 있는 시민들이 만든 공동체에서 민주주의는 자신의 이익에 눈이 먼 수많은 욕심쟁이들의 난장판일 뿐이다. 지금 한국의 문제는 가짜 뉴스가 문제이다. SNS 강국이다 보니, 극단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대중이 한 순간에 매료될 만한, 검증되지 않은 뉴스를 매 순간 생산해 낸다. 누구나 양심을 버리고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일방적으로 왜곡된 야야기를 만들고, 그걸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일부는 그걸 자신의 이익, 즉 돈 벌이 수단으로 생각한다. 자기가 만든 가짜 뉴스가 대중들에게 끼칠 해악은 생각하지 않고, 순전히 사적 이익에 함몰되어 있는 양심이 없는 사람들의 행위들이다.

어쩔 수 없다. 방법은 솔제니친이 말한 것처럼, 양심적이고 용감한 개인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은 거짓말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또 그에 의하면, 개인의 양심이 전체주의 국가권력을 무너뜨릴 유일한 힘이라고 했다. 독재자들은 모두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힘을 신봉하고 이용하고 과시하였다. 독재 권력은 그래 개인들을 파편화 시키려고 애를 쓴다. 문제는 집단주의가 사실은 실체가 없는 무형이다. 집단이라는 용어는 허울만 존재하지 실제로는 수많은 개인들의 이익을 대변한 금방 허물어질 어설픈 최소 공배수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동일한 집단 이데올로기는 없다. 정치 집단들의 행태들을 봐라. 그들의 이합집산을 봐라. 거기에는 수많은 집단주의자들의 이론이나 교리만 존재할 뿐이다. 그 집단 안에 존재하는 비주류는 자신의 우상만을 숭배하고 경쟁자인 다른 비주류의 우상을 파괴하려고 달려든다. 우리나라 정치 집단들의 민 낯이기도 하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인간은 '도시 안에 거주하는 동물(zoon politikon)'이다. 인간은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집단주의적 유전자를 소유한다. 인간은 외딴 섬에서 홀로 살 수 없다.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 소통하고 도모하여 공동체를 만들어 문화를 공유하고 문명을 향유한다.

공동체는 여러 사람들의 모임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존재할 때, 만들어지는 전체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집단)을 장악하려는 소수가 한 사람, 함 사람 교묘하게 세뇌시킨다. 그러니 개인이 자신의 양심을 갈고 닦아 자립하는 인간으로 스스로 훈련하지 않는다면, 그는 늑대를 따르는 양으로 전락하여 비참한 운명을 만날 것이다. 이 문제를 칼 융이 잘 말하였다. 그는 국가를 '순응하는 양들의 모임'이라고 진단하였다. 그 양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리더가 자신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는다. 융은 "목자들의 지팡이는 철퇴가 되고, 목자들은 늑대로 변질된다"고 경고하였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 있어야 건강한 국가가 된다. 그래 중요한 것이 교육이다. 자신의 양심의 발견이 깨달음이며, 양심의 훈련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양심에 복종하는 행위가 자유이며, 다른 사람의 양심을 경청하는 행위가 배려이며 친절이다.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본 적이 없어, 양심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가 무식이며,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언행이 수치(羞恥)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듣는 오늘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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