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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두더지/이면우


1년  전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 모처럼 산행을 했더니 피곤했지만, 비 갠 아침이라 서둘러 주말농장에 나갔다. 지난 금요일에 다 뽑지 못한 풀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오늘도 깊게 내린 풀들을 뽑고, 채소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그런데 언젠가 읽었던, 이면우 시인의 <두더지>가 생각났다. 이면우 시인은 대전 출신으로 생계를 꾸리는 직업은 보일러공이다. 그의 시 <빵집>을 작년 2월 21일에 공유한 적이 있다. 당분간 몇일 동안 이면우 시인의 시를 공유할 생각이다. 지난 사진, 시 그리고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밭에서 두더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내 밭에는 개미들이 엄청 많다. 내가 풀을 뽑을 때마다 개미들의 평화가 깨진다. 옆 밭 주인은 개미굴에 무슨 약품을 넣으라고 하는 데, 나는 귓등으로 듣고 말곤 한다. 또 다른 옆 밭은 고랑에 검은 비닐을 씌워 풀이 없다. 난 무슨 배짱인지 모르지만, 검은 비닐은 안 쓴다. 어제 저녁에는 내 밭에 고라니 다녀간 것 같다. 고구마 잎과 몇 개의 상추가 잘려 나갔다. 예전에는 고라니가 다녀갔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젠 '고라니의 다녀 감'을 조용이 받아들인다. 다 같이 살자. 나도 이거 수확해서 내 운명이 바뀌는 거 아니니까.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앞산 울리도록 한 번 웃어 젖힌다." 개미도 고라니도 밭 주인의 심성을, 시인의 심성을 알아차리듯이,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시 다음에, 언컨텍트 사회에 대한 글을, 어제에 이어, 정리해 보았다. 어제 고등학교 동문 등반대회를 다녀왔다. 정부는 계속해서 생활 속 거리 두기를 강조하고 있다. 오늘 아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주말 외식할 때 지킬 에티켓을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다른 몇몇 나라는 코로나-19 종식 선언을 앞두고 있다는데, 우리는 수도권 중심으로 확진 자가 늘고 있다. 어제 저녁에 선 후배들과 저녁 식사를 했던 그 식당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다들 방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가 제안하는 (1) 마스크/손위생은 기본 (2) 개인 접시에 덜어 먹기 (3) 술잔 돌리지 않기 (4) 식사 중 대화 자제 등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자고 당부한다. 오늘 아침 사진은 주말 농장에서 집에 오는 길에서 찍은 것인데, 이런 거 하라고 오목 거울 달아 놓은 건 아니다. 나도 안다. 그냥 내 모습이 즐거웠다. 잘 보이지 많지만 내가 들고 있는 봉투 안에는 막 캔 감자 몇 알 그리고 상추 수십 장이 들어 있다.

두더지/이면우

비 갠 아침 밭두둑 올려 붙이는 바로 그 앞에
두더지 저도 팟팟팟 밭고랑 세우며 땅 속을 간다
꼭 꼬마 트랙터가 땅 속 마을을 질주하는 듯하다
야, 이게 약이 된다는데 하며 삽 날 치켜들다 금방 내렸다

땅 아래 살아 있다는 게 저처럼 분명하고 또
앞 뒷발 팔랑개비처럼 놀려 제 앞길 뚫어 나가는 열정에
문득 유쾌해 졌던 거다 그리고 언젠가 깜깜한 데서 내 손 툭 치며
요놈의 두더지 가만 못 있어 하던 아내 말이 귓전을 치고 와
앞산 울리도록 한번 웃어 젖혔다.

이 시를 읽고 덧붙인, 내가 좋아하는 반칠환 시인의 글을 나는 다 같이 읽고 싶다. "내 그럴 줄 알았소. 우린 앞이 안 보이지만 다른 감각이 뛰어나다우. 자랑 같지만 나는 기척만으로도 그 사람 인품과 배짱을 안다우. 당신 삽 날로 밭고랑 올려 붙이는 소리가 고봉밥 다독이는 새색시 숟가락 같더이다. 삽 날에 끊어지는 풀뿌리나 지렁이 허리에도 움찔하더이다. 그런 당신이 나를 약으로 쓴다고? 내가 당신을 잡아 다 굴 파는 머슴 삼아도 답답할 뻔 했수. 우핫핫! 당신이 앞산 울리도록 허세 부리며 웃을 때 나도 웃었소. 아내한테 얻어맞던 그 두더지 손등, 과연 우리 족속을 닮아 용감하오. 사랑은 눈멀수록 정확히 제 짝 찾아가는 법이요. 그게 생명의 릴레이 아니겠수." 두더지의 관점에 이 시를 읽었다. 새벽 아침 피곤이 풀린다. 우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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