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8.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오늘은 일년 중에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 하여 음력 5월 5일에 지내는 우리나라의 명절로 단오(端午)이다. 단오는 더운 여름을 맞기 전의 초하(初夏)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일이다. 그네 뛰고 씨름하는 단오는 설날, 한식, 한가위와 더불어 4대 명절 중의 하나이다. 순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 한다. 조상의 묘에 성묘를 가기도 하고,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는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소담하고 윤기가 있으며,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단오 아침에 나는 '지혜경(智慧鏡)'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불교 용어이다. 지혜의 맑고 밝음을 거울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지혜가 맑고 밝게 만물을 비추는 것을 거울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장자> 제5편 "덕충부" 초반에 이런 말을 우리는 만난다. "人莫鑑於流水(인막감어류수) 而鑑於止水(이감어지수) 唯止能止衆止(유지능지중지)" 이 말은 "사람은 흐르는 물에 자신을 비쳐보지 않고, 멈춰 있는 물에 바쳐본다. 이처럼 멈춰 있는 것만이 능히 다른 것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흐르는 물에 제 모습을 비춰 볼 수 없고, 고요한 물에서만 비쳐 볼 수 있다. 고요함만이 고요함을 찾는 뭇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거울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래 우리는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말도 한다. 말 그 대로 하면,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지만, 집념과 가식과 헛된 욕심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말한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가까이 한다. 이런 거울같이 맑은 마음에 자기들의 참모습을 비추어 보기 위해서 이다. 우리가 지혜를 가까이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장자>의 "덕충부"에 나오는 첫 번째 인물 왕태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형벌로 발 하나가 잘린 <장자>에 나오는 불구자 제1호이다. 그는 물론 가공의 인물이다. 그는 생사에 초연한 사람이다. 그는 사물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아 설령 천지개벽 같은 상황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꿈쩍 하지 않는 의연하고 의젓한 사람이다. 그는 운명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간디가 말한 진리파지(眞理把持)를 실현한 사람, 궁극적으로 여실(如實), 진여(眞如), 실상(實相), 살재(實在), 타타타(Tathata)를 실현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의 입장에서 보아 만물에 경계가 사라지므로,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본문의 표현을 쓰면 "마음을 노닐게 하는", "유심(遊心)"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마음이 제1편 소요유의 주제이다. "노닌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발 하나 떨어져 나간 것 쯤은 흙덩어리 하나 떨어져 나간 것"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말하는 자유를 아는 사람이다. "나는 두려워하는 것이 적기를 바란다. 나는 적게 원한다. 그래 나는 자유이다." 묘비명을 내가 다르게 해석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에서 장자는 이런 말도 한다. "聞之曰(문지왈) 鑑明則塵垢不止(감명즉진구부지) 止則不明也(지즉불명야) 久與賢人處(구여현인처) 則無過(즉무과) " 이 말을 해석하면, 듣건 대 거울이 맑음은 먼지가 끼지 않았기 때문이요, 먼지가 끼면 흐려진다고 했네. 또한 어진 이와 오래 사귀면 허물이 없어진다고도 했지"이다. 다시 말하면, 거울이 맑으면 먼지가 끼지 않고, 먼지가 끼면 정말로 맑은 거울이 아니다. 현인과 오래 지내면 잘못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거울을 늘 닦아 맑아야 한다. 그런 사람과 함께 오래 지내면, 내 잘못도 사라진다.
거울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에피소드를 공유한다. 배연국 세계일보 논설위원의 글에서 얻어 왔다. "중국의 당 태종이 좋은 사냥용 매를 얻었다. 매와 장난치며 놀던 황제는 위징이 들어오자 얼른 매를 품속에 감췄다. 낌새를 눈치챈 위징은 일부러 보고시간을 질질 끌었다. 위징이 물러간 뒤 태종이 품속에서 매를 꺼냈으나 이미 질식해 죽었다. 간의대부인 위징은 하루에도 몇 번씩 황제에게 간언을 올렸다. 그가 최고 권력자에게 ‘노(NO)’라고 외친 것은 300번이 넘었다. 이런 명신이 있었기에 태종은 명군이 될 수 있었다. 훗날 위징이 죽자 태종은 사흘 동안 곡기를 끊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구리 거울로써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아 흥망의 이치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알 수 있다. 위징이 없으니 짐은 거울을 잃은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준석 현상'을 인문운동가의 입장에서 정리를 해 본다. 한적한 월요일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나의 '지혜경'이다. "누가 그랬다./'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그저 덜 아픈 사람이/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 그리고 창포를 사진으로 공유한다.
누가 그랬다/이석희
누가 그랬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가끔은 이성과 냉정 사이
미숙한 감정이 터질 것 같아
가슴 조일 때도 있고
감추어둔 감성이 하찮은 갈등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쁜 숨을 쉬기도 한다
특별한 조화의 완벽한 인생
화려한 미래
막연한 동경
누가 그랬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
30대의 젊은 정치인으로 국회의원도 '0'선인 이준석이 야당의 당 대표(1985년 생)가 되었다. 그러써 우리 사회의 정치 문법이 깨졌다. 그 때 솔직하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가 무한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노력'만 외치는 '나쁜 친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거나 '나이가 젊다고 청년은 아니'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정치 판에서 그걸 증명해 보여주었으면 한다. 이따금 TV에서 나오는 젊은 '액세서리' 정치인 말고 진짜 청년의 모습의 기억을 우리들에게 만들어 주면 좋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평소 피력해온 정치적 성향이나 소신이나 태도 등에 거의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당선 자체가 우리 정치에 한 획을 긋는 역사가 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솔직히 나는 당황스럽다. 그리고 잘 헤쳐나갈지 의구심이 든다. 함께 뽑힌 최고 위원들의 면면도 만족하지 못한다. 극우 성향의 그들 사이에서 포위되어 있다. 일종의 '관종'들로, 나는 그들을 '미친 존재'라고 본다. 내뱉는 말들이 늘 상식에서 벗어났던 자들이다. 그래 애처롭지만, 나이에 주눅들지 않는 당당한 정치인으로 자리 매김을 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런 측면에서 이준석 대표가 말하는 공존의 전략은 마음에 든다. 나는 이 정치판에서 그런 모습이 통하는 것을 보고 싶다. 또한 그리고 내 삶의 일상에도 적용하고 싶다. 그는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참신한 화두인 '공존'을 들고나왔다. 공존이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씨이며, 그 다름 가운데, 최선 혹은 차선을 추구하겠다는 결심이다. 그는 그 개념을 누구보다도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그동안 정치인들은 툭하면 '화합의 정치'를 소개하며 '용광로론'을 들먹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깊이 숙고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하고 의견이 다른 사람과 통합을 시도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하다. 배철현 교수가 좋은 예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일본 음식 스시, 이탈리아 음식 스파게티, 그리고 한국의 김치를 갈아 섞는 시도와 같다." 그러면서 그는 "단수는 복수의 어머니이며, 개인은 집단의 핵심이다. 단수와 개인이 지닌 개성은 전체에 시너지를 보태는 원동력이다"이라고 강조했다.
이준석 대표는 '공존'을 '샐러드 볼' 이론으로 쉽게 설명하였다. 양식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야채로 구성된 샐러드의 특징이 있다. 양상추, 콩, 셀러리, 오이, 아보카도, 달걀, 브로콜리 등이 자신의 고유한 모양을 유지한 채 접시 위에 기죽지 않고 올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음식 비빔밥은 '샐러드 볼' 이론에 딱 들어맞는 예다. 비빔밥에 첨가되는 다양한 고명들, 각자가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비빔밥'이라는 훌륭한 음식을 만드는 데 각자 일조한다. 말로만이 아닌, 그런 '비빔밥' 정치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정말 보고 싶다. 나도 내 삶에 적용해 볼 생각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거기서 최선을 끄집어 내는 방식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한 말처럼, 이 대표는 기회의 평등을 위한 차별시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다만 경쟁이 이뤄지고 나면, 그 책임은 어느 정도 개인에게 귀속돼야 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결과의 평등까지 보장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공정을 바라본다.
어쨌든 정치 판에서 이준석 대표가 일종의 "메기' 역할을 했으면 한다. 30대 야당 대표의 등장은 정치 판의 주도권을 청년 정치인들에게 건네야 한다는 여론의 준엄한 명령이다. 더 나아가 청년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고 나아가야 한다는 시대 전환의 신호이다. 이젠 생각이 젊다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생물학적 나이도 젊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까지 기성 세대가 미래 세대의 삶을 결정하는 정치 판의 모순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시대정신의 신호탄이다. 청년들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도록 독려하지는 못할 망정 기성 세대가 그들의 앞길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사실 지금 많은 나라의 총리들이 젊다. 좀 나열해 본다.
• 캐나다 쥐스탱 튀르도 총리는 44세이다.
•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1977년 생)이 당선되었을 때 나이가 39세였다.
• 현 오스트리아 총리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올해 34세이다.
• 5년째 재임 중인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여성 총리가 1980년 생이다.
• 2019년에 당선된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1985년 생으로 이준석 신임 대표와 동갑내기이다.
조선일보를 '계란판' 신문으로 무시하지만, 가끔 좋은 글을 만나기도 한다. 김홍수 논설위원의 칼럼에서 얻은 통계이다. "586 꼰대가 세대가 조직 내 기득권자로 자리 잡고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를 누리고 있다"면서, 김 위원은 다음과 같은 통계를 소개하였다. 실제로 현재 세대간의 임금 격차는 '공정'과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30년 이상 근속 근로자 임금은 1년 미만 근속자의 4,4배에 달한다. 노조가 센 유럽 평균치(1,6배)는 물론이고 호봉제 원조 국가인 일본(2,4배)보다도 훨씬 높다. 반면 우리나라 50대 근로자의 생산성은 2030 직장인의 60%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정치 지형도 마찬가지이다. "국회에서 5060 세대는 너무 많고, 2030 세대는 심하게 적다. 2030 세대의 유권자 비중은 34%에 이르는데, 2030 세대 국회의원은 13명(4,4%)밖에 안 된다. 반면 50대의 유권자 비중은 28%인데, 의원 비중은 59%에 이른다. 60대를 포함한 5060 의원 비중은 무려 83%에 달한다."
이제 586세대는 2030 세대에 자리와 기회를 양보해야 한다. 사실 585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만들어준 산업화 토양 덕분에 취업도 쉽게 하고, 내 집 마련도 어렵지 않게 했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니 586 세대는 2030 세대들이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장애물을 치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준석 대표에게 바란다. 무엇보다도 20-30대 청년들의 지지를 확인한 만큼,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공감하는 친구 같은 정치인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지금 우리의 청년들은 단군 이래 '가방끈'이 가장 길다. 많이 배웠고, 가장 똑똑한 세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 시장에서는 사상 최악의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노력만을 외치는 '나쁜 친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30대 당대표 탄생이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당 전체의 쇄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구 말처럼, 새정치의 시작은 산적한 주요 법안에 쳐 놓은 바리케이트부터 철거하는 것이다.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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