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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존감

1657.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2021년 6월 13일)

 

자존감을 갖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길을 다음 책과 함께 생각해 본다. <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 (데이비드 시버리, 김정한 역, 홍익출판사) 이 책의 원어는 <The  Art of Selishness>이다. 나는 이 책 제목에서 나오는 selfishness(이기적임) 를 self-love로 바꾸고 싶다. self-love(자기애)와 self-esteem(자부심)이나 self-worth(자존심) 와는 다르다.  자존감(自尊感, Dignity)과 자존심(自尊心, Pride)는 다른 것처럼 말이다. '자존심'은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하면서 자신을 존중 하는 마음이다. 내 방식대로 이 책을 해석하면 <가끔 이기적이 되는 기술>이다. 번역가는 책 제목을 지나치게 도발적으로 해석했다. 나는 오히려 <우리는 가끔은 이기적이어야 한다>로 했어야 하지 아닐까 자문해 본다. '뻔뻔함'은 인간이기를 그친 모습이다. '뻔뻔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염치 없이 태연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존감, 더 나아가 나를 사랑하는 자기애(自己愛)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끔은 뻔뻔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세상을 향한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다.

'Art'를 우리 말로 하면 '예술"이지만,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오늘날 테크놀로지의 어원) '라는 단어가 로마로 오면서 '아르스(ars)'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art'를 '기술'로 번역해도 된다. 인생은 허약하고 불확실하고 불완전하다. 그런 삶을 연장하는 열쇠가 '기술'이다. 여기서 플라톤의 '테크네'가 나온다. 여기서 '기술'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나온다. '테크네'는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을 하나로 엮어 상상하지도 못한 유용한 것을 만들어내는 솜씨'다. 로마로 와서, 호라티우스는 그리스어 '테크네'를 라틴어 '아르스'로 번역하였다. 예술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아트'(art)의 어원이다. 여기서 예술은 우리가 흔히 아는 예술을 포함한 모든 기술을 의미한다. 예술은 어떤 분야 든지 최선의 경지를 지칭하는 용어다. 예술가는 그 순간에 몰입하여 이질적인 것 들에서 최고를 선택하여 표현하는 사람이다.

훌륭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 "절제하는 일", "탁월성을 따르는 것"에서 남들보다 앞서는 것에서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이 참된 사람이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우선 자신을 기쁘게 하며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탁월함의 수준까지 내 자신을 사랑하되 올바른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또 절제함에 있어서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또 잘 보여주는 이가 에덤 스미스이다. 그의 『도덕감정론』의 인간은 '호의를 베푸는 이기주의자'이고, 『국부론』의 시장은 이런 인간들이 뛰노는 곳으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곳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기심이라는 표현이 'selfishness(제멋대로임, 이기적임- 남의 이익을 침해해서라도 내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아니라, 'self-love(자기애, 자기에 대한 사랑)'라는 점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은 self-love이다. 그 말은 내가 나를 사랑하듯이 남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한다면 남을 대할 때도 다르다. 남이 내게 손해를 입히면 싫은 것처럼, 나도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안 된다. 그건 양심이 충고를 하는 소리이다. 요약하면, 애덤 스미스가 전제한 것은 시장에 나온 인간이 selfishness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self-love를 가진 인간이라는 점이다.

애덤 스미스는 타인에게 호의를 가진 자기 사랑의 인간들이 존재하는 시장이 속임수가 없는 공정한 가격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속에는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때문에 독점도 없고 착취도 없다. 임금이나 이윤이 특정한 사람에게 쏠리는 현상도 제한된다. 그리고 분업으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이것은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들게 한다. 이것이 애덤 스미스가 찾은 신의 질서의 법칙이다. 이 때 국가는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리고 공공기관과 공공사업 운영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좀 복잡하지만, 인문운동가는 잘 구별하고 나누는 사람이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를 했다.

어제부터 나는 정용철 시인을 만나고 있다. 오늘도 나를 차분하게 해주는, 나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시 한편을 공유한다. 지난 한 주 열심히 산 나에게 휴식을 주는 일요일 아침이다. 사진은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고 있는 푸른 나무를 밑에서 찍은 것이다. 서로 자리를 양보하며, 푸른 잎들이 당당하다.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정용철
내가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합니다
정말 멋있고 예쁜 모습의 나이기를 바랐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으면
나는 지금보다 더 교만하고 외모에 치중하여
겸손과 소박함의
아름다운 삶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 모습에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집의 모든 것에 만족합니다
더 잘 살고 여유 있는 가족이기를 바랐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으면 지금 우리 가족은
화목과 사랑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우리 가족 이대로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지금 나의 직장생활에 만족합니다
환경이 더 좋고 보수가 높은 직장이기를 바랐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나는 노동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모른 채
안일에 젖어 나태해져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직장생활에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에 만족합니다
더 쉽고 빠른 길로 가게 되기를 바랐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으면
지금의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한 채
외롭고
지친 몸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걷고 있는 나의 길에 대하여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는 아니지만
지금 내가 소유한 물질에 만족합니다
더 많은 물질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지만
만약에 그렇게 되었다면
나는 마음의 아름다움보다
물질의 풍요가 더 귀한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만큼의 내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자존심'은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하면서 자신을 존중 하는 마음이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오래 전에 일본 최고의 명문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 학생이 공부를 더하라는 교수와 선배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회사에 취업하기 위하여 '마쓰시다 전기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는 지금까지 수석을 놓친 적이 없고 항상 남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주위 사람들한테서 부러움의 대상인 천재 학생이었기에 공부를 포기하고 취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남들이 이해 못하는 숨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 천만 뜻밖에도 합격자 명단에 천재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그는 몇 번이고 확인하였지만 분명히 자신의 이름이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천재는 분명히 수석으로 합격될 것으로 자신했는데, 수석은 커녕 합격자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것이다.  당당한 모습으로 발표를 기대했던 그는 풀이 죽은 채 환호하는 합격자 와 합격자 가족들을뒤로하고핏기가 없는 얼굴로 힘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돌아온 그는 그날 저녁 평생 처음 맛본 불합격에 따른 좌절감과 자존심이 상한 것을 이기지 못하고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을 하고 잠에 들었다 영원한 잠에 빠지고 말았다.

다음날 가족들은 이미 숨을 거둔 그를 발견하고 큰 슬픔에 빠져 오열하고 있을 때 긴급 전보로 '합격 통지서'가 도착하였다.  그는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실력으로 합격 했던 것이다.수석으로 합격하였기 때문에 일반 합격자 명단에 넣지 않고 별도로 적혀 있는 그의 이름을 실무자 실수로 합격자 명단에서 빠뜨린 것이었다. 

당시에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회사의 실수로 천재를 죽였다고 비난하는 보도가 연일 쏟아졌다.  그 천재 청년은 '자존심' 때문에 '자존감'을 포기한 사람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사건이 잠잠할 무렵 한 기자가 그 회사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을 찾아가 인터뷰하며 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회장은 당시 회사의 실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 하면서 말하였다. “장래가 촉망이 되는 청년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다행 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뜻밖의 말에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총수는 말을 이었다. “단 한 번의 실패를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심약한 사람이라면 다음 중역이 되었을 때 만약 회사가 위기에 봉착한다면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함으로서 회사를 엄청난위기에 빠뜨리고 전 사원의 삶이 걸려 있는 회사를 비극으로 끝을 맺는 우를 범할 수 있었을지 알겠습니까?”

'셰익스피어'는 "달성하겠다 결심한 목적을 단 한 번의 패배 때문에 포기하지 마라"고 하였다.  발명왕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을 하기까지 2천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2번의 실패로 깨끗이 포기했을 일을 말이다. '앤 설리반'은 실패에 대하여 이렇게 충고를 하였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네가 원한 것은 성취하지 못해도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되리라. 시작하는 것과 실패 하는 것을 계속하라.”

자존감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존중해야 남도 존중해줄 수 가 있다는 말이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 에도 좌절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남의 탓이나 남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무시하지 않는다. 자존감 있는 사람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포용하고 양보하며 겸손한 삶을 살아간다.

자존감의 기본적인 정신은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고. 고유한 개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이기주의가 아닌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동시에 타인 또한 사랑하며, 다만 세상을 향해 가끔은 뻔뻔해 지는 것이다. 소중한 것은 모두 나에게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지탱할 방법만 있으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뻔뻔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몇 가지만 공유한다. 이런 식이다.

 1. 주위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걱정하기 전에 먼저 다가가 그들에게 가슴 뛰는 느낌을 전해주는 것이다.
 
2.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상대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들에 내가 먼저 귀를 기울인다. 사람은 자기가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얻기 위해 살아간다. 그게 채워지면 막대한 손해에도 웃어 넘길 수 있고, 반대로 존중보다 묵살당하면 사소한 일에도 목을 걸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다른 이로부터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 행복하다. 그러니 나보다는 타인의 만족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배려하기 때문에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동시에 타인으로부터 존중을 받는 최고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3. 자신의 진정한 욕구에 충실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정해준 의무감을 억지로 하면서 괴로워 한다. 해야만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자존감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삶을 최우선으로 사랑한다. 내가 나를 위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해 주겠는가?

 4. '착한' 뻔뻔함을 갖는다.  나를 괴롭히는 일에 저항하지 않고 무조건 고개를 숙이며 회피하는 것은 배려심이 아니다. 인생의 기쁨은 자신이 갖고 있는 감정, 위기, 어려움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이 내 인생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길이 내가 나의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자기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상대의 이기심을 움직이고,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존중하고, 착한 뻔뻔함을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기 훈련이 요구된다. 다시 책을 꺼내 틈 나는 대로 다시 읽어가며 되 돌아 볼 내용이다.

한가한 일요일 아침이다. <인문 일기>를 마치며, 에피쿠로스 철학을 소환하며 마음 공부를 한다. 에피쿠로스 철학에 의하면, 행복은 쾌락이 아니라, '고통의 경감'이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의 좌표를 자연스러움과 필요로 정한다. 인간에게 자연스럽고 삶에 필수적인 것을 즐기는 것이 행복이라고 본다. 그래 우리는 에피쿠로스 철학을 '최소주의'라고 한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기본적인 욕망을 알아내고, 그것 만을 만족시키려는 주의이다. 그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그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마음의 평안, 아타락시아(ataraxia)를 얻는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된다.
-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 의식주이다. 배고품, 목마름, 잠 등이다. 인간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의 해결에 해당한다.
- 자연스럽지만 불필요한 것: 인간의 본성에 자연스럽지만, 고통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성적인 쾌감을 충족시키는 일이 그 예이다. 이런 행위들은 자연스런 욕구이지만, 의식주처럼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조절가능 하다.
- 부자연스럽고 불필요한 것: 인간의 본성에 부자연스럽고 동시에 불필요한 것들이 있다. 과도한 돈, 권력, 명예, 핸드폰, 자동차, 고급 음식, 사치품과 같은 것들이다. 내가 이런 것들을 소유하지 않는다할지라도, 약간의 불편을 끼치겠지만, 자연스럽지도 않고, 꼭 필요한 것들도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이런 것들을 '허영(虛榮)'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허영을 정의하면, 자기 자신에게 필연적인 것을 찾지 못해, 자신이 아닌 것을 엉뚱하게 추구하는 마음가짐이다.
 
허영(虛榮) 이야기를 좀 더 해본다. 나는 어떤 한 단어를 한문으로 바꾸면, 그 단어의 함의(시니피에)가 더 쉽게 들어온다. 사전은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 없이 겉모습 뿐인 영화(榮華)' 또는 필요 이상의 겉치례'라고 정의한다. 나는  그걸 '허세(虛勢)'라고 보기도 한다. 배철현 선생은 허영을 다양하게 묘사한다.
 
자신이 아닌 타인의 모습을 막연히 부러워하기 시작하고 남들의 행위를 부러워하며 자신의 중독으로 만들 때, 허영의 노예가 된다. 특히 허영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사회가 인정하는 그 틀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수정하려는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