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0월 15일)


어제는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중 일곱 번째 rule(규칙)인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졌다. 그래 오늘 아침 그 이야기를 이어간다.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한다. 여기서 의미는 혼돈과 질서의 궁극적인 균형이다. 한쪽에는 변화와 가능성으로 충만한 혼돈이 있고, 반대편에는 오염되지 않은 절제된 질서가 있다. 의미는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다. 그런 마음으로 이 가을을 바쁘게 보내고 있다.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찾아 간다. 의미는 한층 풍요로운 삶으로 향하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어제서야 나는 <오징어 게임> 드라마 9회를 다 보았다. 한 번에 볼 수도 있었지만, 감동의 만족 지연을 위해 하루에 한 편 씩 보아 왔다. <오징어 게임>은 인생의 막다른 곳까지 내몰린 이들이 스스로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을 선택하는 이야기이다. 탈락하면 죽음이라는 잔인한 게임 룰은 극한 경쟁으로 내몰린 현대사회를 직설적으로 풍자한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고착화된 우리들의 사회를 꼬집어내 글로벌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오징어 게임>은 기존의 한류 드라마와 결이 다르다. <오징어 게임>을 보면 돈이 없는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은 삶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살아남는다고 해서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좀 자세한 영화 이야기를 따로 한 날을 잡아 <인문 일기>에서 길게 정리해 볼 생각이다.
다시 피터슨의 책으로 돌아 온다. 전통적인 설화나 관습은 희생과 공유의 지혜를 담아 우리에게 전해 오고 있다. 그런 것들이 경전이고 고전이다. 이런 것들은 '성공한 사람은 만족을 뒤로 늦추고 미래와 거래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 가치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 때는 동물이었고, 동물은 행동할 뿐 생각하지 못한다. 함축적이서 인지되지 않는 가치가 먼저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고, 행동보다 가치 판단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이야기는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가?' 그리고 '나중에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있는 중이다. 서양의 기독교 문화에서는 하느님은 단순한 제물이 아닌, 가장 사랑하는 것을 바치길 원한다. 세상사(世上事)는 항상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 말을 얼핏 들으면 현실 세계의 삭막한 속성, 굶주림과 질병, 배신을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현실 세계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현재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곰곰이 생각하니 그런 것 같은데, 왜 그럴까 따져 본다.
사실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눈에 들어오는 세계가 원하는 세계가 아니면 가치관을 점검해 봐야 한다. 지금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을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목표로 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소중한 것을 포기하면 미래의 번영이 보장된다. 원숭이 생포하는 법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를 공유한다.
먼저 목이 좁은 큼직한 항아리를 준비한다. 항아리 입구는 원숭이가 겨우 손을 집어넣은 정도여야 한다. 원숭이가 항아리를 들고 달아나지 못하도록 돌을 넣어 무겁게 만든 다음 항아리를 원숭이가 자주 다니는 길에 둔다. 원숭이가 좋아하는 것을 항아리 안에 충분히 넣고 주변에도 뿌려 원숭이를 항아리 쪽으로 유인한다. 원숭이가 항아리로 다가와 좁은 입구로 손을 넣고 안에 든 것을 움켜쥐면 그것으로 끝이다. 원숭이는 주먹을 빼내지 못한다. 먹을 것을 잔뜩 쥐고 있기 때문이다. 원숭이가 지금 가진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손을 빼낼 수 없다. 하지만 원숭이는 주먹을 펴지 않는다. 이때 항아리와 원숭이를 느긋하게 집어 들면 원숭이 생포 과정은 마무리 된다. 원숭이는 부분을 희생하지 않은 대가로 전체를 잃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고, 최고의 희생물은 무엇일까? 제물이 고기라면 최고급 부위이고, 제물이 동물이라면 무리 중에서 가장 아끼는 동물이 최고의 제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한 부분을 희생하여 인간 전체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피터슨은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조각 <피에타>를 그림으로 보여 주었다.
이는 자식을 세상에 내놓은 어머니의 희생이다. 미켈란젤로는 십자가 못 박혀 죽은 아들을 무릎 위에 올려 두고 바라보는 마리아의 슬픔을 표현했다. 아들의 죽음은 '그녀의 잘못'이었다. 그녀를 통해 그리스도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대에 들어섰다. 우리들의 모든 어머니가 그렇다. 이 험한 세상에 아기를 내놓는 게 옳은 일일까? 주변의 여러 여성들도 이런 질문을 한다. 그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거다. 어쩌면 거의 모든 어머니는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그중 일부는 '아니다' 라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마리아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두 알고서도 '그렇다'라고 답했다. 사실은 아이를 세상에 내놓는 모든 어머니가 그런 결단을 내린다. 자발적인 결정이라면 진정으로 용기 있는 행위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자신의 아이를 낳는 것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하시는 거다. 거룩한 행위이다.
이젠 예수의 이야기를 해본다. 예수는 자신을 제물로 바친다. 그 과정에서 배신과 고문, 죽음이라는 관문을 거친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외쳤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제27장 46절) 이를 아람어로 말하면,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이다. 예수는 당시 유대 근본주의자의 시기와 로마 제국의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짧은 인생을 마친다. 이 이야기는 더 나은 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 즉 큰 뜻을 위해 목숨마저 제물로 바치는 인물의 원형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희생에 관한 원형적인 이야기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희생을 통해 고통과 아픔을 일시적으로 멈출 수 있다. 희생이 클수록 효과는 크다. 사랑이 있는 고생은 힘들지 않다는 말이 기억난다.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라면 최고의 선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 자신의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할 것이다.
(1) 고통을 줄이고 싶은 사람
(2) 존재의 흠결을 바로잡으려는 사람
(3) 능력 범위 안에서 최고의 미래를 끌어내려는 사람
(4)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결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힘들어도 의미 있는 길을 따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고결한 희생은 절망에 찌든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사람들의 부류에 속한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런데 조국 아테네의 이익을 해쳤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그를 고발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에게 고향을 떠나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들의 제안을 거부했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내면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려는 절대적인 의지라면서, 내면의 목소리가 반대하면 말을 멈추고 행동을 중단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을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소크라테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냈다. 자신에게 닥친 모든 사건을 신들에게서 받은 선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쉬운 길을 거부했다. 오히려 최악의 조건에서도 의미 있고, 진실한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의 선택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말하지 않고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산다면 어떤 위협 앞에서도 고결함을 지킬 수 있을 것이란 교훈, 용기 있게 최고의 이상을 추구하면 자신의 안전을 건사하겠다고 아등바등 하는 것보다 결국에는 더 나은 안전과 힘을 얻게 될 것이라는 교훈 그리고 올바른 방향을 추구하며 충만하게 살아가면 죽음의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삶의 깊은 의미를 가르쳐 준다.
10월은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러나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그러는 사이 가을이 깊어 간다. 오늘은 내가 좋아는 <솔로몬의 계절>을 다시 한 번 더 공유한다. 그리고 김현승 시인의 <가을 기도>도 더 한 번 읽어 본다.
솔로몬의 계절/이영균
가을
황금 들녁, 천고 마비
풍요의 계절입니다.
아닙니다.
추풍낙엽, 스산한 산천
슬픔의 계절입니다.
그래요.
희로애락, 풍요와 빈곤
이율배반의 계절입니다.
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삶의 무게를 달리합니다.
그리고 가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가 김현승의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이다. 그가 한 말에 마음이 간다. "사람은 여름과 겨울에 늙고, 봄과 가을에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봄에는 육체적으로, 가을에는 영혼이 성장한다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가을의 기도/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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