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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삼류들/이재무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14일)

현 대통령이 문제라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지난 5일에 나온 이야기이다. '굥' 대통령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낸 이동훈이 SNS에 올린 글에 답이 있다. 그대로 옮긴다. <“나 때문에 이긴 거야. 나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야.”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합니다. 깨알지식을 자랑합니다. 다른 사람 조언 듣지 않습니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냅니다. 옛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양권모 편집인의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철학은 없이 단편 지식을 앞세운 독단, 남의 말을 경청하지도 조언을 듣지도 않는 불통, 거기에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는 자뻑에 사로잡혀 있다면 참으로 위험천만하다. 본디 무능하면서 고집 세고, 부지런한(혹은 게으른) 리더가 최악이라고 했다. 조직을 오도하고 구성원을 고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리더십이라면, '굥' 대통령의 "깊이 없는 정책 인식,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언행, 넉살스러운 태도가 왜 반복되는지 이해가 된다. 지지율 하락에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복합위기에 대해 “열심히 하면 된다”는 대책 없는 낙관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 만하다. 철학이 뒷받침되지 않는 깨알지식을 앞세우니 중요한 정책과 인사에 대한 실언과 혼선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 ‘김건희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것도 ‘쓴소리’가 통하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나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사실 비속어 논란 자체보다 그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이 불통과 독단, 집권 세력의 확증편향이 더 무섭다. 개선되지 않으면 앞으로 4년7개월 동안 국정 운영에서 고비마다 부정적으로 작동할 기제이기 때문에 걱정이다. 감동을 주지는 못해도, 국민이 리더를 걱정하는 꼴은 아니다.

다들 이렇게 걱정한다. "다양한 사회 갈등과 고도의 외교 정책,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의 부족을 보완할, 유능하고 통합적인 인물로 대통령실과 내각을 꾸렸다면 불안이 덜할 터인데 그것도 아니다. 외려 특정 인맥과 ‘검찰 식구’로 구축된 친위 세력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으니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문제는 염치(廉恥,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까지 없다는 거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신영복 교수는 자신의 책,  <<담론>>에서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된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뜨리고 일을 그르친다”고 하면서, 우리들에게 자기 자신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 ‘70%의 자리’를 권하였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주장을 '그릇 론'이라 한다. “30 정도의 여유, 30 정도의 여백이 창조의 공간이 된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 받는 자리에 가면 어떻게 될까? “그 경우 부족한 30을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거나 권위로 채우거나 거짓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난다.” 또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자리와 관련해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은 권력의 자리에 앉아서 그 자리의 권능을 자기 개인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주역>>은 효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경우를 ‘득위’라 하고, 잘못된 자리에 가 있는 경우를 ‘실위’라고 한다. '득위'는 아름답지만 '실위'는 위태롭다. <<주역>>의 핵심은 관계론이다. '길흉화복'의 근원은 잘못된 자리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내가 있는 '자리', 즉 '난 누구, 여긴 어디'를 묵상하며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어떤 '직위(職位)'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우주 속에서 나의 위치까지 확장되는 용어이다. 한문으로 하면 '위(位)'이다. <<주역>>에 따르면, 제자리를 찾는 것을 '득위(得位)', 그렇지 못한 것을 '실위(失位)'라 했다. '득위'는 만사형통이지만, '실위'는 만사 불행의 근원이다. 잘못된 자리는 본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한다.

그리고 '진정성'이란 말이 소환되었다. '진정성'이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와 남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기꾼은 신뢰를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신뢰를 연기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진정한 신뢰는 아니다. 진정성을 지니려면,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존재 이유인 목적의 실로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구성하고 이 정체성을 기반으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숙고하고 성찰하며 반성하는 사람이다.

진정성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돌봄 부족으로 어려운 고비를 만났을 때 일관성이 있는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근력이 없다.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좋은 시절 주장했던 철학과 목적은 사라지고 탐욕스런 생존을 위한 본성을 드러낸다. 그 부부는 진정성이 의심된다. 건들 건들, 도리 도리, 우왕 좌왕. 언젠가 <<정민의 世說新語>>에서 다음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무심한 동작 하나에도 정신이 깃든다." 그리고 정민 교수는 최원오 신부가 번역한 성 암브로시우스의 <<성직자의 의무>> 몇 대목을 소개하였다. "동작과 몸짓과 걸음걸이에서도 염치를 차려야 합니다. 정신 상태는 몸의 자세에서 식별됩니다. 몸동작은 영혼의 소리입니다." "훌륭한 걸음걸이도 있으니, 거기에는 권위 있는 모습과 듬직한 무게가 있고 고요한 발자취가 있습니다. 악착같고 탐욕스러운 모습이 없어야 하고, 움직임이 순수하고 단순해야 합니다."

외교 현장에서의 ‘비속어 논란'은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환기시킨다. 보도된 영상을 통해 비속어가 확인됨에도, ‘이 ××’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굥' 대통령이 앞장서 거짓과 억지로 잘못을 덮으려 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외교 현장에서 비속어를 썼다는 사실보다 이후 대처 과정에서 뾰족해 진 몰염치한 태도가 더 분노를 불러왔다. 왜 이리 어이없는 대응이 나왔을까? "외교 현장에서 ‘욕설'을 내뱉은 대통령으로부터 느끼는 부끄러움보다, 억지로 잘못을 덮으려는 ‘염치 없음'이 도드라진다. 최소한 민망하고 부끄러운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적반하장이다. 국민 다수가 잘못했다고 비판하는 사안에도 매번 “무얼 잘못했느냐"고 대거리다. 윤 대통령은 숱한 실언과 정책 혼선, 인사 실패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적이 없다. 부끄러움은 반성과 성찰을 통해 개선의 동력을 마련케 하는 힘이다. 지도자가 떳떳함을 잃고 잘못을 덮기에만 급급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신뢰는 땅에 떨어진다. 염치를 잃은 지도자가 정의와 공정을 암만 외쳐봐야 울림이 있을 리 만무하다."(양권모)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의 시인은 일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삼류들을 조롱하지만 실제는 일류라 부르는 인간들의 부도덕성, 그리고 사회 구조의 부조리함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런 사다리 구조의 사회에서는 기득권층이라 불리는 일류들과 거기에 오르고자 하는 이류, 삼류들의 희망 없는 버둥거림이 있을 뿐이다. 어리석은 삼류들은 자신들도 일류가 될 수 있다는 가련한 소망을 품고 오늘도 전쟁터에 나간다. 그리고 일류들이 던져주는 떡고물에 감지덕지한다. 그것이 악한 사회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줄도, 일류들의 음모인 줄도 눈치 채지 못한다. 삼류는 그래서 삼류다. 그들은 가짜 일류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그들은 니체가 말하는 ‘시장의 파리떼'이고 속물들이다. 세상은 소수의 교활한 일류들과 다수의 어리석은 삼류들로 되어 있다.

이 시를 소개한 <먼산바리기>님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란 말을 믿고 싶어 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을 어찌 일류와 삼류로 나눌 수 있을 까마는 그래도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품격은 달라진다고 했다. 한 인간의 기품은 많이 배웠다고, 또는 많이 가졌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앞서 가려는 것도 좋고, 잘나 보이려고 애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어느 때, 어느 자리에 있던지 최소한 인간으로 서의 품위는 잃지 않고 살고 싶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세상이 어두워도 희망을 놓친 않을 생각이다.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on)의 <살아있는 전망대 2021(The Living Obervatory, 2021)>에서 찍은 거다. '아침의 통로(The morning passage)'였다.터널의 벽과 천정에 뚫린 삼각형 모양의 구멍 14개는 각각이 하나의 만화경이었다.

삼류들/이재무

삼류는 자신이 삼류인 줄 모른다
삼류는 간택해준 일류에게, 그것을 영예로 알고
기꺼이 자발적 헌신과 복종을 실천한다
내용 없는 완장 차고 설치는 삼류는
알고 보면 지독하게 열등의식을 앓아온 자이다
삼류가 가방 끈에 끝없이
유난 떨며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이 성희롱인 줄도 모르고
일류가 몸에 대해 던지는 칭찬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우쭐대는 삼류
삼류는 모임을 좋아한다 그곳에서 얻을 게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류와 어울려 사진을 박고 일류와 더불어 밥을 먹고
일류와 섞여 농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일류가 되어간다고 착각하는 삼류
자신이 소모품인 줄도 모르고 까닭 없이 자만에 빠지는
불쌍한 삼류 사교의 지진아
아 그러나, 껍질 없는 알맹이가 없듯
위대하게 천박한 삼류 없이
어찌 일류의 광휘가 있으랴
노래를 마친 삼류가 무대를 내려서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삼류의 얼굴에 꽃물이 든다
삼류는 남몰래 자신이 여간 대견하고 자랑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사실 열렬한 박수갈채는 노래 솜씨보다 월등한
그녀의 미모에게 보낸 것인데 그 사실을 그녀만 모르고 있다
삼류는 일류들이 앉아 있는 맨 앞줄을 겸손하게 지나서
이류들이 앉아 있는 중간을 우아하게 지나서
삼류들이 뭉쳐 있는 후미에 뽐내듯 어깨 세우고 앉는다
삼류는 생각한다 이렇게 열심히 노래 부르다 보면
언젠가 저 중간을 넘어 저 맨 앞줄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날이 올 거야
삼류는 가슴을 내밀어 숨을 크게 마셨다 내뿜는다
그러나 그날은 언제 올 것인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삼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온다
그녀도 세상은 이미 각본대로 연출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 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삼류는 어제 그러하였고 오늘 그러하였듯
내일 또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를 것이다
그러다 자신의 자리와 역할이 일류를 위한 영원한 들러리요, 삐에로요,
악세사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무슨 회한처럼 문득 깨달을 것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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