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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인문운동가의 시대정신

5년 전 아침에 쓴 글 입니다.

추석에 차례를 지내러 갔더니 조카의 아들과 딸들이 소위 "중 2병"에 걸려 힘들어 했다. 다들 성장통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인문운동가로 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 "만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물 깁는 시간이 필요하다."

언젠가 최진석 교수의  칼럼에서 프랑스의 젊은 마크롱 대통령의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샤를 드골의 대독 항전 연설 78주년 기념식 행사장에 모여 있던 청소년들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10대 남학생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면서 "잘 지내요? 마뉘?"라며 마크롱의 이름(에마뉘엘)을 제멋대로 줄여 불렀다. 이 남학생은 노동해방을 노래한 혁명가요 '랭테르나시오날'(C'est la lutte finale)의 후렴구도 흥얼거렸다. 별다른 악의는 없는 표정이었지만 약간은 빈정거리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이때 마크롱 대통령은 소년과 악수를 한 뒤 곧바로 "아니야 아니야"라고 고개를 저으며 "오늘 공식적인 행사에 왔으면 거기에 맞게 행동해야지"라며 훈계를 시작했다.  그는 "오늘은 '라 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 '샹 데 파르티잔'(레지스탕스의 투쟁가)을 부르는 날이야. 그러면서 나를 '므슈'(성인남성에게 붙이는 경칭)나 '므슈 르 프레지당'(대통령님)으로 불러야 한다. 알겠니?"라고 설명했다.  

이 남학생은 바로 주눅이 들어 "죄송합니다. 대통령님"이라고 말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아주 좋아!"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절도 있게 행동해야 해. 네가 만약 언젠가 혁명을 하고 싶다면 먼저 학교를 마치고 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줄도 알아야 해"라며 팔목을 툭툭 치면서 충고했다.  

저항감 있는 젊은이에게 호응하며 공감해주는 대통령도 멋있지만, 이렇게 훈계하는 대통령도 멋있다.  마크롱은 젊은이의 '혁명'을 부정하지 않았다. '혁명'을 잘하기 위한 방법을 말해주는 방식으로 훈계의 격을 지켰을 뿐이다. '절도 있는 행동'과 '졸업' 그리고 '생계에 대한 책임'이 '혁명'의 성공을 결정한다고 말해주었다.

추석 연휴가 이어지는 하잔한 저녁에 여유롭게 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노자의 이야기 부터 시작한다. "구층지대기어누토九層之臺起於累土: 구 층의 높은 대도 한 줌 흙을 쌓아 올리는 데서 시작되었다." (노자, 『도덕경』)  모든 일은 작은 데에서 비롯하여 큰 데에 이른다는 말이다.

그리고 순자의 "적토성산"("권학편")이라는 말이 곧바로 머리에 떠오른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거기에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물을 쌓아 연못을 이루면, 거기에 물고기들이 생겨나고
산을 쌓고 덕을 이루면, 신명이 저절로 얻어져서 성인의 마음이 거기에 갖춰진다.
적토성산 積土成山, 풍우흥언 風雨興焉
적수성연 積水成淵, 교룡생언 蛟龍生焉
적선성덕 積善成德, 이신명자득 而神明自得 성심비언 聖心備焉"  
물을 쌓아 연못을 만들면 거기에 선물이나 행운처럼 물고기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학문을 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일을 진실하고도 성실하게 해나가면 통찰력이나 성인 수준의 마음을 갖는 행운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부채를 들어 바람을 일으키고,  낚싯대를 들고 물고기를 잡고,  책을 읽어서 성인이  된다.  그러나 손 놓고, 낚싯대 놓고, 책 놓는 순간  아무 것도 남지 않는 '텅빔'만 남게 된다.

'착실한 보폭'이 결여된 경지란 항상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다. 마치 '절도 있는 행동'과 '졸업' 그리고 '생계에 대한 책임'을 배우지 않고 '혁명'을 꿈꾸는 것과 같다. 착실한 보폭만이 일관성과 지속성을 보장한다.  어떤 경지도 일관성과 지속성이 결여된 것은 운이 좋은 것에 불과하다. 품질이 들쭉날쭉 할 수밖에 없다. 어떤 개성도 '착실한 보폭'을 걸은 다음의 것이 아니면 허망하다. 허망하면 설득력이 없고 높은 차원에서 매력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면 많은 일을 그냥 '감(感)'에 맡겨 해버린다. '착실한 보폭'이 없는 높은 경지란 없다.  

도가 철학을 좀 아는 사람들은 '무위(無爲)'를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무슨 일이건 그냥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으로 이해하고는 '착실한 보폭'을 하수의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그건 지적인 게으름일 뿐이다. 우선 『장자』 첫 페이지를 보라. 곤(鯤)이라고 하는 조그만 물고기가 천지(天池)라고 하는 우주의 바다에서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 크기로 자라나자 어느 날 바다가 흔들리는 기운을 타고 하늘로 튀어 올라 붕(鵬)이 되었다.  

『장자』에 나오는 대부분의 얘기는 다 이 대붕의 경지다. 그래서 도가 철학에 우호적인 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붕의 모습만 인정하고 따르려 한다.  그러나 반드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대붕은 조그맣던 곤이 엄청난 축적의 과정을 겪은 후, 몇 천리나 되는지도 모를 정도로 커지고 나서 된 영물(靈物)이라는 것이다.  

매우 두터운 축적의 과정이 영물을 만들었다. 두터운 축적의 공, 즉 적후지공(積厚之功)을 의식하지 않은 채, 대붕의 '자유'나 '소요유'를 흉내 낸다면 다 방종에 가까울 뿐이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착실한 보폭'이 중요하다. 행복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좋은 습관이나 근면성을 기르면 선물이나 행운처럼 행복은 찾아온다.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 때 내면을 두텁게 준비하는 과정이 '적토성산'이다. 카리스마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자신이 이 지구라는 별에서 죽기 전에 하고 가야 하는 자신만이 사명을 발견하고, 거기에 몰두하면 탁월한 내면이 갖추어지고 자연스럽게 향기가 우러나오는데, 그것이 카리스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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