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낙타는 뛰지 않는다/권순진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은 주말 농장에 가서 달팽이와 놀다 왔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사진이 거기서 찍은 것이다. 몇일 전 배철현 선생의 묵상에서 달팽이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달팽이는 그 순간에 몰입하고 그 어떤 장애물에도 불평하지 않는다. 땅을 한 눈금이라도 건너뛰는 법이 없다. 그리고 성급히 달려가지도 않는다. 순간을 종말론적으로 사는 생물이다. 누가 가는 길을 방해해도 화내는 적이 없다. 혹은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넘어간다. 아우렐리우스도 장애물을, 달팽이처럼, 생각했나 보다. "인간의 마음은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 변화하며 방해물을 빗겨 나갑니다. 주어진 일의 방해는 오히려 그 일을 촉진하는 촉매제입니다.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오히려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명상록』 5권 20행 후반부)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오늘 아침은 '대답을 실천하는 사람'이란 말에 대해 사유를 펼쳐본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말로 '신해행증(信解行證)'이란 것이 있다. 그 뜻은 "믿고(信), 그것에 대해 철저히 공부하여 이해하고(解), 그것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여(行), 그 믿음을 통해 얻은 개념이 실제  경험과 결합하여 정말 내 것이 되는 것(證)을 말한다."

'증'은 내 것이 되어, 삶을 나 답게 주인공으로 살게 하는 경지에 올려준다는 말이다. 그러니 단순히 믿기만 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은 조심해야 할 허구라는 말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이 뭘 얻었을 때는, 그만큼 다 노력한 것이다. 이 세상에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다는 말은 진리이다. 이번 생이건, 어느 생이건 보이지 않는 노력을 끝없이 해서 얻는 것이다.

오늘 아침 시는 권순진 시인의 <낙타는 뛰지 않는다>이다. 아침에 달팽이와 놀고 와서 고른 시이다. 낙타는 달릴 수 있으나 달리지 않는다. 뛸 수 있으나 뛰지 않고 걷는다. 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지혜이다. “함부로 달리지 않고/쓸데없이 헐떡이지 않으며/한 땀 한 땀 /제 페이스는 제가 알아서 꿰매며 간다”. 달려가면 빨리 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 갈 수 없다. 사막을 건너는 험난한 여정에서는 감정에 휘둘려 달리거나 뛰지 말고 낙타처럼 걸을 수 있어야 한다.

낙타는 뛰지 않는다/권순진

날마다 먹고 먹히는
강한 자가 지배하지도
약한 자가 지배당하지도 않는
초원을 떠나 사막으로 갔다

잡아먹을 것 없으니
잡아먹힐 두려움이 없다
먹이를 쫓을 일도
부리나케 몸을 숨길 일도 없다

함부로 달리지 않고
쓸데없이 헐떡이지 않으며
한 땀 한 땀
제 페이스는 제가 알아서 꿰매며 간다

공연히 몸에 열을 올려
명을 재촉할 이유란 없는 것이다
물려받은 달음박질 기술로
한 번쯤 모래바람을 가를 수도 있지만

그저 참아내고 모른 척한다
모래 위의 삶은 그저 긴 여행일 뿐
움푹 팬 발자국에
빗물이라도 고이며 고맙고

가시 돋친 꽃일 망정 예쁘게 피어 주면
큰 눈 한번 끔뻑함으로 그뿐
낙타는 사막을 달리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우리 인간은 모두 무언 가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대답을 구하며 살았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 인가 질문을 하고 대답을 구하지만, 그 대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사는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 대해 많은 문제의식을 갖고 그 대안 찾으려는 질문으로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는 아침이다. 즉 문제를 쫓아가기에만 급급해 정작 중요한 지금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는가 말이다. 미래에 얽매이지 않아야 지금 현재를 살 수 있다.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는 과거도 미래도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대로 함께 녹아 들어 있다. 이게 '대답을 실천하는 삶'이다.

인간과 달리, 모든 생명체들은 서로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생명 공동체 안에서 모든 것은 순환할 뿐, 어느 한 곳을 지향해 가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 있으면서 현재를 살며 삶을 영위해 갈 뿐이다. 거기에는 목적도, 시작도 끝도 없고,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도 없다. 물론 순환의 각 부분 부분에는 '목적-수단-역할'이라는 목적론적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도 많다. 특히 인간은 목적을 설정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강구하고, 수단을 실천하기 위해 역할을 설정하고 그 역할을 수행해 나간다.

옛날 인간들은 질문만 던지며 살았던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실천하며 바로 '지금'이라는 현재를 살았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문제 제기에 대한 대답을 실천하며 살고 있지 않고, 문제만을 제기하고 자신은 그 대답과 괴리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되물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바로 대답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토로나-19의 충격 속에서, 우리는 "삶의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속도를 늦출 때 우리는 세상이 부과한 목표들을 요리조리 살펴 볼 수 있다. 나 아닌 것의 힘에서 풀려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그래야 삶의 아름다움이 스스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어우러져 넉넉한 시공간을 빚어낸다. 인터넷에 <한국인을 고문하는 8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이 떠다닌다.
1. 라면 먹을 때 김치를 안 준다.
2. 인터넷 속도를 10mb이하로 줄인다.
3. 식후에 커피를 못 마시게 한다.
4. 버스가 완전히 정차하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게 한다.
5. 삼겹살에 소주를 못 마시게 한다.
6. 요거트 먹을 때 뚜껑을 핥지 못하게 한다.
7. 화장실에서 대변을 볼 때 핸드폰을 못 갖고 가게 한다.
8. 엘리베이터 문닫기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한다.

산다는 것은 시간이 내는 일이다. 작은 것들을 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인생이란 시간이 걸리는 것 그리고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는 일, 일상에 시간을 투자하여야 한다. 먹고, 배설하고, 자고, 집 주변을 돌보고, 산택하고, 아이들과 놀고, 사랑을 하고, 일을 하고, 주변을 청리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청소를 하고, 목욕을 하고 등등. 모든 일에 있어서, 이처럼 느리게 사는 '슬로 라이프'를 실천하여야, 결국은 지름길을 가려고 애쓰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우리는 살 수 있다. 느리게 간다는 것은 그냥 천천히 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조절하는 속도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오늘 아침 만난 달팽이처럼. 그래야 우리는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지난 월요일 저녁에는 우리들의 4중주단 <혼수상태>가 레슨을 마치고, 연습도 할 겸 집에 안 가고 와인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노래 연습을 했다. 그러다가 <블랙 핑크>라는 우리나라 여성 아이돌 그룹의 동영상을 보았다. 이 그룹이 최근 세계적으로 '크게 떴다'고 한다. 그런데 난 매우 불편했다. 현란한 색깔에 한 시도 멈추지 않고 변하는 화면이 내가 꿈꾸는 '삶의 속도를 늦추자' 것의 반대였기 때문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권순진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복효근  (0) 2023.07.02
경청/정현종  (0) 2023.07.02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김승희  (0) 2023.07.02
비/천양희  (0) 2023.07.02
집착하면 도망간다.  (0) 2023.07.01